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전세계인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얼마전 발생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총기난사 사건은 자칫 미국 전체를 내홍으로 빠트릴 수 있는 참사였다. 백인 인종주의 광신자(狂信者)가 흑인교회에서 무고한 생명들에게 총을 겨눈 일이었다.
희생된 사람들은 말그대로 아무 이유없이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한 봉변이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재임하고 있는 시기에 발생한 각종 인종 갈등이 극에 달한 양상이다. 미국이 놀랐고 전 세계가 분개했다. 자칫 미국이라는 국가가 둘로 쪼개질 것만 같은 위기였다.
이 순간에 오바마 대통령이 있었고 미국 정치인이 있었고 정치(政治)가 있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체없이 에어포스원에 올라타 찰스톤으로 향했다. 이 비행기엔 야당 하원의장 존 베이너도 함께였다. 총기난사 희생자 장례식장에서 30분 남짓 애도연설을 하던 오바마 대통령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온 미국인들의 마음을 적신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대통령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누구랄 것 없이 함께 불렀고 눈물을 흘렸다.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사죄와 용서와 화합의 노래였다.
영국 성공회 존 뉴턴 신부가 이 곡을 만든 배경은 흑인 노예무역을 했던 과거에 대한 사죄와 죄를 용서해 준 신에게 감사하며 모두가 화합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의 갈등이 가장 첨예해질 수 있는 그 순간에 바로 정치(政治)가 있었다.
한국의 갈등 상황 또한 미국 못지않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세대, 지역, 이념 갈등은 둘째 치고 국민들을 이끌어가야 하는 정치권의 갈등이 예사롭지 않다. 메르스로 온 나라가 공포와 불안감으로 그리고 이어진 경기 침체로 고통 받고 있는데 정치권은 이를 아는지 모르겠다. 가뜩이나 메르스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주머니 사정은 각박해지는데 위로 받을 곳이 없다.
여당과 야당 가릴 것 없이 국민들의 신뢰를 받기 힘든 모습이다. 대통령은 얼마전 ‘배신의 정치’를 이야기하며 국정운영에 협력하지 않는 국회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열심히 일하려는 대통령과 일하려는 대통령을 발목잡는 국회의 시각으로만 본다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입장 표명은 단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차원에 그치지 않았다. 비협조적인 국회에 대한 질타와 더불어 가장 협력적이어야할 집권여당의 원내대표를 겨눈 것으로 비쳐졌다.
그 파장은 일파만파로 커졌다. 집권자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원내 사령탑인 유승민 의원간의 정면대결 양상이 되어 버렸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이유가 어쨌든 간에 국민들의 민생현안을 위해 가장 가깝게 머리를 맞대어야할 당사자들이 분란의 대상이 되었으니 말이다. 당장 대통령의 지지율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 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악재(惡材)임에 틀림없다.
새누리당은 어떤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서로 반목하고 불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유권자들은 과연 한 표를 주고 싶은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과 유승민 원내대표 모두 대구와 경북 소위 TK지역을 정치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내홍의 수렁은 깊어 보인다.
지난 6월 27~28일 조원씨앤아이가 CBS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조사(전국1000명 유무선RDD자동응답조사 표본오차95%신뢰수준±3.1%P)에서 ‘유승민 의원의 원내대표직 유지’에 대해 물어본 결과 대구경북 지역에서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과 유지해야 한다는 응답이 각각 47.3%로 똑같았다.
유 원내대표의 지역구인 대구 동구을에서는 대통령과 유 원내대표를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현수막이 연이어 걸리고 있다고 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와 여당 원내대표의 행동 하나가 애꿎은 지역구 주민들마저 편을 갈라놓고 있다. 말그대로 정치(政治)가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를 비롯해 야권 인사들은 대통령과 새누리당의 당청갈등을 바라보며 연일 성토하기 바쁘다. 마땅히 비판해야할 것을 비판한다는 식의 야당 입장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렇지만 국민들에게는 특히 지지층들에게는 막말과 분열의 정치가 해소되지 않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실망 또한 적지 않다.
정치인들에게서 정치(政治)를 찾을 수 없다. 아주 쉬운 이해를 위해 어린이 백과에서 정치의 뜻을 되돌아본다. 정치는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나 이해관계를 둘러싼 다툼을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또 다른 사전의 해석을 소개한다. 정치는 ‘여러 권력이나 집단 사이에 생기는 이해관계의 대립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일’이라고 한다. 정치는 또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과정이어야 할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보여준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분명 정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는 정치(政治)가 없다.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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