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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순문학의 쇠퇴와 서브컬처의 부상
2015-06-30 06:00:00 2015-06-30 06:00:00
6월 16일 소설가 이응준이 '허핑턴포스트'에 발표한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라는 글이 발표된 다음 날인 17일 창비문학팀은 보도자료를 돌렸다. 이 보도자료를 통해 작가 신경숙은 "오래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우국')은 알지 못한다"며 한 마디로 표절 사실을 부인했으며, 창비의 문학팀은 "유사한 점이라곤 신혼부부가 등장한다는 정도"뿐이라고 한술 더 떴다.
 
이응준이 제시한 표절 사례는 누가 보아도 한눈에 표절이 확실해 보였다. 그러니 어설픈 부인은 즉각 많은 이의 분노를 샀다. 신경숙과 창비를 비난하는 글이 걷잡을 수 없이 쇄도하자 창비는 18일 "지적된 일부 문장들에 대해 표절의 혐의를 충분히 제기할 법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독자들이 느끼실 심려와 실망에 대해 죄송스러운 마음을 담아야 했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사과문을 강일우 대표 명의로 다시 내놓아야 했다.
 
여론은 더 들끓었다. 결국 신경숙은 6월 23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거론된 일본 소설과 자신의 작품 문장을 대조해본 결과 "표절이란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사실상 표절 사실을 인정했다. 또 "문학상 심사위원을 비롯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숙하는 시간을 갖겠다"고도 했다.
 
'유체이탈화법'을 통해서라도 작가가 표절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니 이제 모든 문제는 끝난 것인가? 나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본다. 2010년대 한국의 순(본격)문학 소설은 한 손가락에 꼽을 수 있는 팔리는 작가들이 시장을 주도해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나마도 여의치 않아 2014년에 가장 많이 팔린 우리 작가의 소설은 고작 5만 부가 팔린 성석제의 '투명인간'(창비) 정도이다. 몇 만부가 팔린 소설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소설이 몇 만부만 팔리면 출판사는 망조가 들 수 밖에 없다. 이 정도의 소설은 광고나 홍보 등 마케팅에 크게 힘을 쏟아야 하는데 몇 만부로는 절대로 손익분기점을 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소설은 순문학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있는 사이에 처절하게 추락했다. 소설만 써서 먹고사는 작가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지만 로맨스를 비롯한 장르소설을 써서 1억 원 이상의 연봉을 받는 이는 적어도 1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또 순문학시장을 주도하는 문학동네와 창비의 순문학 소설 매출은 자사 전체 매출의 5~10%에 불과할 것으로 추정된다. 절대 그럴 리야 없겠지만 두 출판사가 순문학 소설 출간을 포기하면 아마도 이 시장은 고사상태로 빠져들 수도 있다.
 
상황을 이렇게까지 몰고 온 것은 해당 출판사들이 팔리는 작가들의 작품을 상찬만 해대는 '주례사 비평'을 일관한 데다 새로운 감성의 작가를 키우지 못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정보를 스마트폰으로 소비하는 독자들이 '문체'나 '문장'보다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에 더욱 목말라하고 있음에도 그런 욕구를 채워주는 작품을 생산하지 못한 것이다. 웹툰(앱툰), 게임, 로맨스, 판타지, 애니메이션 등의 서브컬처는 이제 주류문화로 올라설 태세다. 지나치게 '문체미학'만 추구해온 작가와 평론가들이 이 사실을 제대로 유념해야 하지 않을까.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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