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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양권 거래 8년만 최대치…다운계약서 판친다
위례·광교·미사·동탄·마곡 부동산중개소 100곳 설문…78.2% "다운계약서 경험"
2015-06-30 16:00:00 2015-06-30 16:35:15
◇6월8일 일산 킨텍스 꿈에그린 오피스텔 청약 전경. 기사와 직접적 관련이 없습니다.(사진/한화건설)
 
치솟는 전세난에 이곳저곳 옮겨 다니던 차정남씨(39세·가명)는 아이의 학교 적응 문제로 결국 아파트를 사기로 했다. 올 9월 입주하는 이 아파트는 인근 교육환경과 주거환경이 좋아 수요자들 사이에서 제법 입소문이 난 곳이다.
 
차씨는 이런 점들을 고려해 프리미엄 3000만원을 얹어 분양권을 거래했다. 웃돈의 10%인 가계약금 300만원을 입금한 차씨는 부동산 중개업자로부터 황당한 제안을 받는다.
 
중개업자는 "다운계약서를 쓰는 조건으로 매매가 이뤄진 것”이라며 “(분양권은) 양도소득세가 절반에 가까워서 이곳에선 관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분양권의 경우 시세차익의 변동 폭이 커 국세청에 적발되지 않을뿐더러, 강남처럼 2~3억원씩 큰 차익도 남는 게 아니므로 조사대상에서 제외된다”고 매수자를 안심시켰다.
 
결국 차씨는 불법인 줄 알면서도 구미에 당기는 아파트를 저렴한 가격에 매매할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계약을 체결하고 말았다.
 
이처럼 최근 전매 제한이 풀린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분양권 다운계약서’가 급속도로 퍼지고 있다. 정부가 지난해 7·24 대책에 9·1 대책까지 연이어 발표하면서 대형 건설사들은 분양 물량을 폭발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지난 수년간 극심한 침체를 겪던 건설사들은 이참에 물량을 털어내기라도 하듯 호의적으로 변한 시장 상황을 즐기고 있다.  
 
◇분양권 거래 8년만 최대치…하반기 쏟아진다
 
이런 분위기는 모델하우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달 31일 서울의 마지막 신도시로 꼽히는 위례의 한 모델하우스에는 입장을 위한 대기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전국이 메르스 공포에 휩싸였음에도 모델하우스 안에는 방문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분양권 매매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달 서울의 분양권 거래량은 714건으로, 지난 2007년 6월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달 369건과 비교해도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특히 위례, 미사, 동탄2, 김포한강 등 수도권 신도시들의 경우 올 하반기부터 대다수 아파트 전매 제한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분양권 거래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양도 차익에 대한 소득세는 ▲1년 미만 보유시 40% ▲2년 미만 보유시 6~38% ▲2년 이상 보유시 6~38%의 세율을 적용받고 있다. 1가구 1주택자가 경우 2년 이상 보유하면 비과세를 적용받는다.  
 
 
온나라부동산정보에 따르면 경기도 분양권 거래는 지난해 11월 3128건, 12월 3761건에 이어, 올 1월 4016건, 2월 3892건, 3월 6318건, 4월 6119건으로 매월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정부의 고강도 부동산 대책으로 분양시장이 살아나자 단기 차익을 노린 투기수요도 덩달아 늘어났고, 더 큰 차익을 실현하기 위해 ‘다운계약서’ 작성도 빈번하다는 게 일선 부동산중개소들의 설명이다.
 
◇위례·광교·미사·동탄·마곡 "다운계약서 없이 매매 없다"
 
취재팀은 불법 다운계약서 작성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지난 8일부터 12일까지 5일간 분양권 전매 제한이 풀렸거나, 풀리는 지역의 부동산중개소들을 중심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우선 전문가들 조언을 얻어 지난해 분양 열기가 뜨거웠던 지역 5곳(위례·광교·미사·동탄2·마곡)을 선정한 뒤 지역별로 20곳, 총 100여곳의 부동산중개소를 찾았다. 절반이 넘는 중개소가 응답을 회피하면서 설문지 회수율은 23%에 그쳤다. 
 
하지만 인터뷰에 응한 대부분의 부동산에서 지난 2006년 ‘실거래가 신고제’가 도입된 이후에도 여전히 다운계약서 등 부동산 탈세는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다고 귀띔했다. 불법이 관행으로 포장되면서 다운계약서를 모르거나 거부하면 재테크 문외한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최근 1년간 매도자로부터 분양권 거래 시 다운계약서 작성을 직·간접적으로 요구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응답자의 78.2%(18명)가 '있다'고 답했다. 다운계약서 작성 시 실거래가 차익 규모는 '기타'가 가장 많았고, '3000만원 이하'가 뒤를 이었다.
 
위례의 공인중개사 A씨는 “소위 말하는 떴다방과 분양대행사를 중심으로 거의 100% (다운계약서를)하고 있다”면서 “당연한 걸 왜 물어보냐”고 되레 핀잔을 줬다. 그는 "분양권 다운계약서 10건 중 1건이 적발된다고 가정하면 9건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더 크다”면서 “다운계약서를 안 써주면 다른 곳에 가서 계약을 해버리니, 양심 있는 공인중개사는 설 자리가 없다”고 했다.
 
하남 미사지역 공인중개사 B씨는 다운계약서 작성 사례를 상세히 들려줬다. 그는 "분양권에 당첨되는 순간 바로 프리미엄(P)을 얹어서 팔 수 있다. A가 B에게 팔고, B가 C에게 팔고 그렇게 여러 사람이 팔 때마다 P를 붙여 남겨 먹는 장사를 할 수 있으니 매도자의 양도세를 매수자가 내주는 게 요즘 관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게 실거주자 Z가 최종으로 등기를 치기 전까지 다운계약서를 쓴다. 이러면 양도세를 제대로 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는 셈"이라며 "분양권 당첨된 것 들고 오면 바로 팔아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무엇보다 떴다방, 분양대행사 등 단속이 어려운 곳을 통해 작성되는 다운계약서가 부동산중개소를 통해 이뤄지는 거래보다 훨씬 많고, 적발하기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중개소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광교의 공인중개사 C씨는 "떴다방, 분양대행사가 얼마나 많은지, 중간에서 일을 다 해버리기 때문에 요즘에는 다운계약서를 작성할 일도 없다"면서 "중간에서 장난을 치는 사람들이 많아 호가만 높아졌을 뿐 매매는 주춤하다"고 말했다. 다운계약서가 빈번하고 잡히지 않는 탓에 부동산 가격만 비정상적으로 치솟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기, 부동산 탈세 전국 최대…다운계약서 작성에 차익까지
 
 
취재팀이 최근 국토부로부터 입수한 ‘최근 4년간 전국 부동산 실거래신고 정밀조사 결과’를 분석한 결과, 국토부는 2011년 1461건(77억6832만원), 2012년 1800건(125억8502만원), 2013년 1905건(159억1403만원), 2014년 2317건(214억8145만원)의 불법행위를 적발해 과태료를 부과했다.
 
거짓신고, 업·다운계약, 계약일 허위신고 등이 주요 적발사례로 지적됐으며, 그 수 또한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특이한 점은 지난해 기준 전체 과태료 214억8145만원 가운데, 경기도에서 부과된 과태료가 113억5388만원으로 절반에 육박했다. 경기도는 2013년 582건(57억6072만원)에서 2014년 604건으로 건수는 소폭 늘었지만, 과태료는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이에 대해 안진애 국토부 토지정책과 사무관은 “부동산 다운계약서를 통한 차익이 클 경우 과태료가 증가하는데, 경기도의 경우 건수 대비 과태료가 많이 증가했다”면서 “위례, 동탄2 등 인기 입주 예정지역의 전매제한 기간이 만료되면서 다운계약서 작성 등 불법행위가 많아졌고 차익도 커졌다”고 설명했다.
 
향후 대책에 대해서는 "위례, 광교, 미사, 동탄2, 김포한강 등 인기 입주 예정지역을 중심으로 지자체, 국세청과 함께 협업해 불법행위 단속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답했다.
 
김영택·김동훈 기자 ykim9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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