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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츠Go,Go)낙동정맥트레일, 청정자연의 산숲길을 걷다
낙동정맥트레일 봉화 2구간
2015-05-28 06:00:00 2015-05-28 06:00:00
◇낙동정맥트레일. (사진=이강)
 
봉화 분천역까지 중부내륙테마열차인 O트레인을 타고 달린다. 산골 오지마을의 작은 간이역인 분척역에는 지난 겨울부터 산타가 살고 있다고 했다. 낙동정맥트레일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의 두 산줄기가 솟구친 하늘 아래의 봉화 승부역에서 출발한다. 백두대간의 힘찬 협곡과 낙동정맥이 실핏줄처럼 도드라진 산숲길을 걷는다. 산길의 느림과 삶으로 흐르던 강, 그 터에 삶을 꾸린 이들의 강인한 기운을 느끼며 걷는다.
 
◇분천역 산타마을. (사진=이강)
 
◇산타가 사는 봉화 분천역 오지마을
 
경북의 최고 오지였던 봉화의 분천역에 산타가 산다. 낡은 간이역에 세를 든 산타와 원주민들의 동거는 낯설고 생경하다. 지난 겨울부터 이곳 마을에 자리를 잡은 산타는 여름이 비수기다. 역 앞에서 여름 땡볕에 사진 모델을 하여 월세도 내고, 겨울 성수기를 대비해 선물을 사재기해 놓을 것이 뻔하다. 보통 날의 산골오지는 권태로운데, 산타는 간이역의 역장이 틀어놓은 뽕짝 메들리의 네 박자 리듬에 큰 엉덩이를 실룩거릴 만큼 산골생활에 이골이 났다. 동리 사람 역시 이국적인 산타의 동거가 싫지만은 않다.
 
산타의 유명세 덕으로 역전 삼거리를 십 수 년 지켜온 향수네 슈퍼 앞에도 아메리카노 향기가 은은한 카페가 들어섰다. 사람구경 힘든 산골 사람들은 이제 객지에서 몰려온 사람 구경이 제일 재미있는 볼거리다. 사시사철 알록달록 아웃도어를 갖춰 입은 관광객들은 왁자지껄한 걸음으로 한 여름 매미소리를 잠재울 기세다. 내내 조용하던 산골의 고즈넉함과 평상적 풍경은 줄었지만, 어찌하든 관광객들이 드나드니 살림이 좀 나아지는 맛에 시비를 걸 것도 없다.
 
봉화 분천역까지 사람들을 태우고 오는 철도관광열차의 이름이 ‘O트레인(중부내륙순환열차)’이고, 이와 연계되어 태백과 봉화의 협곡을 오르내리는 열차가 백두대간열차, V 트레인이다.
 
이 V트레인을 타러 온 이들도 산골마을 사람들도 모두 승리의 V자를 그릴 만하다. 본래 승부역에 기차가 다니기 시작한 것은 60년도 넘은 오래전 일이지만, 이렇듯 사람이 물밀듯 들어 온 것은 백발 성성한 원주민들도 눈을 비비고 다시 볼 만큼 신기한 일이다. 산골에서 평생을 산 할매 할배들에게는 심봉사 눈 뜬 것처럼 당황스럽지만, 할 일 없던 산골살이에 이 만한 구경거리도 없다. 특히 주말이나 봄가을에 산골 풍경이 때깔 나는 철이면 객지 사람들이 열차를 타고 들어와 온 동리를 봄바람처럼, 가을 바람처럼 휩쓸고 지나간다. 신바람인지 그저 지나는 몹쓸 바람인 지 알 사이 없이만 그렇게 사람이 스쳐지나가는 게 싫지는 않다.
 
산골의 낡은 간이역은 본래부터 마을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기차가 철길 위를 달리때면 열차들은 공중을 달리는 듯한데,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열차가 역에 멈추면 관광객과 트레킹을 즐기려는 길꾼들의 역 앞으로 한 무더기 쏟아진다. 열차에서 내린 이들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한 무리는 백두대간협곡열차를 타고 연신 V자를 그리는 관광객들이고, 한 무리는 봉화의 낙동정맥트레일을 걷는 길꾼들이다. 대게의 길꾼들은 분천역에서 승부역으로 일반 무궁화호 기차로 갈아타고 승부역으로 향한다. 승부역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간이역으로 낙동정맥트레일 봉화 2구간의 기점이다.
 
◇낙동정맥트레일 승부역 기점. (사진=이강)
 
◇민족의 정기 어린 낙동정맥트레일
 
낙동정맥(洛東正脈)은 강원도 태백시의 구봉산에서 부산광역시 다대포의 몰운대에 이르는 산줄기를 말한다. 한반도 13정맥 중 하나로 모든 정맥은 민족의 산줄기인 백두대간에서 뻗쳐나온 작은 산줄기다. 조선 영조때의 지리학자인 신경준의 산경표(山經表)에서 우리민족의 산맥을 민족의 정기를 품고 한반도의 지맥을 깨우며 뻗어 나아간다고 보고 있다. 뻗치고 솟구치는 낙동정맥트레일은 민족의 정신을 깨우는 정맥(精脈)을 따라 이어진 길이다.
 
열차에서 내려선 길꾼들이 계곡 위에 걸쳐진 출렁다리 승부현수교를 건넌다. 붉은 색의 승부현수교를 건너 계곡길을 따라 걸으면 장승이 길목을 지키고 있는 낙동정맥트레일 2구간의 출발점에 다다른다. 낙동정맥트레일은 경북의 봉화에서 청도에 이르기까지 10개 시군의 산을 넘는 전체 구간인 594km 코스다. 낙동정맥을 따라 주변의 산과 강, 마을과 삶을 모두 하나로 잇고 역사와 문화를 연계하였다. 그 중 봉화 구간은 산골의 삶과 청정한 자연의 숨길을 느끼며 걷는 코스로 모두 3코스다. 봉화 2구간은 10.1km 코스이다. 승부역을 기점으로 배넘이 고개에 올라 바람에 맞고, 비봉마을로 내려서 강길을 곁에 두고 분천역까지 걷는 코스다. 소요시간은 대략 4시간 전후이다.
 
한 무리의 트레킹족을 따라 산숲길로 접어들니 강건한 여름산의 청량한 기운이 느껴진다. 배넘이 고개까지의 구간은 오르막 구간으로 약 3Km의 오르막 구간이다. 숲으로 오르는 길은 다소 경사가 있고 계단이 이어지지만 호흡에 넘치지 않는다. 옛사람들이 순한 발걸음으로 가파르지 않은 산굽이를 골라 숨에 맞는 길을 내었을 것이다. 첩첩산중의 길을 열 때에도 헛자리를 더듬어 길을 내었기 때문이다.
 
배넘이 고개의 전망대에 이르니 협곡으로 상승하는 바람의 기운이 좋다. 잠시 쉬고 길을 내려선다. 이제부터는 내리막 숲길과 낙동강을 따라 걷는 7km 남짓의 길이다. 울창하고 빽빽한 나무들이 건강하고 힘찬 기운으로 하늘을 가려주는 숲길은 편안하다.
 
숲길이 끝나면 강변길이 이어진다. 아스팔트길이 아쉽지 않으나, 강 건너로 보이는 숲의 푸르름으로 이내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낙동강이 힘차게 흐르고 백년이고 이백 년은 훌쩍 넘었을 금강송들이 붉은 몸통을 드러내고 여름볕을 즐긴다. 강을 너머 조금 걸으니 비봉마을이 나타난다. 옛 화전민들이 살던 마을은 토지가 기름지다고 해서 비동마을이라 불리었다. 예전에는 마을사람들이 이 길로 소를 팔러다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저기 먼 산과 강을 너머 이 길을 걸었을 옛 사람들의 느리며 질긴 삶이 그려진다. 어둑어둑 해질 무렵, 분천역에 이르니 마을보다 높은 철길 위로 늦은 열차가 스치어 달려간다.
 
이강 뉴스토마토 여행문화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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