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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성 소리 집어삼킨 전창진 감독의 '승부조작'
함성 소리 집어삼킨 전창진 감독의 '승부조작'…'블랙 코미디로' 끝나버린 과거의 '스토리텔링'
2015-05-26 14:08:06 2015-05-26 14:08:06
"저 정도면 인정 좀 해주셔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도 10년 넘게 농구판에서 감독 하고 있잖아요. 신문사도 경력 좀 쌓이면 대우해주고 그렇잖습니까."
 
지난 시즌 초반에 전창진 감독은 경기 전 대기실에서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매년 감독이 잘려나가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 살면서도 밑바닥부터 지금까지 버텨왔다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나 전 감독은 지난 25일 승부조작 혐의를 받으며 하루아침에 전혀 다른 인물이 됐다. 당시를 돌이켜보면 이 모든 것이 취재진과 팬들을 기만한 행위였다.
 
승부조작 같은 사건 발표는 보통 일정 수준 이상의 증거가 확보된 뒤 알려진다. 농구팬들은 이런 사실을 이미 배웠다. 2년 전 2013년 3월에 강동희 전 감독의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면서 똑똑히 봤다. 이제 다시 신문 사회면에서나 볼 수 있었던 단어와 설명들이 농구계 이슈를 뒤덮을 참이다.
 
분명 전창진 감독은 상징성 있는 인물이었다. 부상 때문에 농구를 일찍 그만둔 그는 25살부터 구단 프런트 말단 직원으로 경력을 쌓았다. 구단 잡일을 담당하는 프런트 업무부터 시작해 명장 반열에 오른 '프런트 신화'를 쓴 사람이다. 14시즌 동안 4번의 정규리그 우승과 3번의 플레이오프 우승을 차지하면서 5번의 감독상도 거머쥐었다. 이 때문에 그가 강조한 경력과 버텨낸 삶은 자랑거리로 충분했다.
 
농구 인기 회복을 위한 전 감독의 노력도 높게 평가받았다. 평소 그는 프로농구 발전을 위한 쓴소리도 마다치 않았다. 코트 위에선 호랑이 감독으로 통했지만 나머지 시간에는 팬들과 선수를 위한 '스토리텔링'에도 앞장섰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면 이 모든 게 그렇고 그런 '쇼'로 점철될 위기다. 감독이 이미 경기에서 지려고 마음먹은 순간에 농구장을 찾았던 팬들은 허공에 대고 응원한 셈이다.
 
공교롭게도 전 감독의 승부조작 혐의가 터지던 날 오전에는 FA(자유계약) 최대어로 꼽힌 이승준(SK), 문태영(삼성), 전태풍(KCC)이 구단 계약서에 서명했다. 이들은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취재진과 인터뷰하며 침체한 프로농구를 위해 많은 이야깃거리를 만들고자 노력했다. 모두 전 감독이 했던 팬들을 위한 일이다.
 
그러나 같은 날 오후에 승부조작 사태가 터지면서 이 모든 것이 씁쓸한 '블랙 코미디'로 마무리됐다. 아무것도 모르다 뒤통수 맞은 프로농구연맹(KBL)의 한숨 소리가 커졌으며 전 감독을 새로 선임해 시즌을 준비하던 KGC인삼공사도 날벼락을 맞았다. 이제는 승부조작의 마수가 어디까지 뻗쳤는지 지켜보자는 '괘씸죄' 가득한 시선이 뻗어 나가고 있다.
 
임정혁 스포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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