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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한 산재 은폐, 산재공화국 오명을 낳다
'또 하나의 약속'은 현재진행형…산재협의회 구성 등 제도 보완 절실
2015-05-26 10:00:00 2015-05-26 10:00:00
"산업재해 통계가 제 각각인 것은 사고 은폐와 개연성이 높다. 정부는 산재보험 처리된 것만 통계로 잡는다. 공상처리 등은 포함이 안 된다. 각 기업 하청지회도 집계가 부실한 측면이 있다."(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본지 26일자 '인터뷰' 中)
 
작업 중 사고로 죽어도, 부상과 직업병을 당해도 산업재해 보상을 받지 못한다.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산재 은폐는 원청의 규모와 작업장 상태를 가리지 않고 만연했다. 하지만 산재 처리를 주관하는 정부는 이 같은 사실을 알고도 적절한 조치에 나서지 않고 있다. 기업이 은폐에 앞장서고, 정부가 눈 감는 사이 '산재공화국'의 오명이 만들어졌다.
 
산재 은폐는 의외로 간단하다. 하청 노동자가 산재를 당해도 산재보험 신청을 안 하면 된다. 정부의 산재 통계는 근로복지공단에 접수된 산재보험만 집계되므로 사측이 공상처리(公傷處理: 노동자가 산재보험을 신청하지 않는 대신 사측과 민법상 손해배상을 명목으로 합의하는 것)하거나, 노동자가 자비를 들여 치료한 것은 공식 산재에 포함되지 않는다.
 
취재팀이 5월 한 달 간 노동자 51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봐도 산재 은폐는 매우 광범위했다. 본인이나 동료의 산재 보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묻는 질문(중복응답 허용)에 대해 '산재보험 처리'는 25.1%에 그쳤다. 반면 '공상처리'(49.4%)가 가장 많았고, '개인비용 부담'(23.0%) 비율도 높았다. '치료 없음'도 5.5%로 집계됐다.
 
산재 10건 중 7건 이상이 산재 보험을 거치지 않고 숨겨지는 셈인데,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로 일하다 사망한 고(故) 정범식씨 사례처럼 사측이 산재로 인정하지 않고 합의도 거부하는 경우까지 더하면 실제 산재 은폐는 알려진 것보다 더 많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 등 불치병을 얻은 근로자들도 회사에서 산재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오랜 기간 법정 투쟁을 해야만 했다. 고 황유미씨의 실화를 다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통해 여론을 환기시킨 끝에야 삼성전자의 공식사과를 받아낼 수 있었다.
 
기업이 산재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점도 문제다. 전수경 노동건강연대 연구원은 "A기업은 원청이든 하청이든 사고가 나면 원청에서 이를 다 파악하지만, 한 번도 정보를 알리지 않았다"며 "원청이 공개를 안 하는데 정부가 집계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전문가들은 노사협의회와 비슷한 형태의 산재협의회를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산재가 발생하면 노사 양측이 모두 참가한 가운데 사고 원인 규명, 보상방법 논의, 보상 후 작업장 복귀 등을 토의할 기구를 만들자는 주장이다.
 
은수미 의원은 "노사협의회와 같은 산재협의회를 구성해 사람 목숨이 오가는 산재에 관해서는 원·하청과 정규직·비정규직 노동자와 사측이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3월14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안전한 사회와 건설현장을 위한 안전기원제에서 참가자들이 산재사망 노동자들의 추모와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안전을 기원하며 절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영택·최병호·이순민 기자 choib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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