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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5월이면 생각나는 연극
연극 '푸르른 날에'
2015-05-03 01:34:05 2015-05-03 01:34:23
여러 번 보게 되는 영화, 가끔씩 다시 들춰보고 싶은 책, 다들 하나씩은 있으실 겁니다. 공연에도 관객들이 보고 또 보고 싶어하는 스테디셀러가 있습니다. 관객 성원에 힘입어 매진 행렬을 잇다가 해를 거듭하며 무대에 다시 오르곤 하는 작품들이죠. 오늘 소개드릴 공연은 2011년 초연 이후 매해 남산예술센터 무대에 오른 연극 '푸르른 날에'입니다. 초연 때 80%의 객석점유율을 기록하며 입소문을 탄 이후 2012, 2013, 2014년 공연 전회 매진을 기록한 '히트작'입니다.
 
5월 광주민주화항쟁을 다룬 이 작품이 올해 5월 다시 관객을 만납니다. 그간 꾸준히 공연됐지만 이번의 경우 조금 특별합니다. 초연 무대에 섰던 배우들이 함께 하는 마지막 해이기 때문입니다. 공연에선 웬만큼 화제를 모으지 않는 한 초연 캐스팅 그대로 무대에 오르는 게 쉽지 않습니다. 바쁜 배우들의 스케줄을 맞추기가 쉽지 않거든요. 오리지널 멤버 김학선, 정재은, 정승길, 이영석, 호산, 이명행, 조윤미 등의 배우가 함께 하는 이번 공연을 놓치지 말아야할 이유입니다.
 
(사진제공=남산예술센터)
 
5.18이라는 역사적 소재를 다룸에도 불구하고 극은 무겁지 않습니다. 플레이팩토리 마방진 대표를 맡고 있는 고선웅 연출가 특유의 감각 덕분입니다. 만화적 상상력으로 무장한 연극 '락희맨쇼', 셰익스피어 희곡 '맥베스'를 한국적 정서로 재해석한 '칼로막베스', 액션과 신파, 개그를 한 데 버무린 듯한 연극 '뜨거운 바다' 등에서 이미 검증된 '고선웅표' 활력을 이 극에서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극의 줄거리는 애달프기 짝이 없습니다. 암자에서 수행 중인 승려 여산(과거 오민호)은 자신의 딸이지만 '조카'로 삼은 운화의 결혼 소식을 듣습니다. 이 소식을 계기로 여산의 기억은 30여 년 전 야학 선생 시절로 돌아가게 되는데요. 5월18일 광주민주화항쟁이 발생하면서 민호는 당시 연인 윤정혜와 어긋난 운명의 길을 걷게 됩니다. 시위 당시 살아남기 위해 비겁함을 선택했던 민호는 죄책감에 못 이겨 불교에 귀의했던 것이죠. 그리고 30년. 홀로 운화를 키운 정혜가 운화의 결혼식에 즈음해 마침내 민호에게 연락을 합니다. 
 
눈물 콧물 쏟게 하는 극임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평단의 호평도 받아왔습니다. 연극 '푸르른 날에'의 저력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인데요. 이 연극의 가장 큰 장점은 '오늘'과 '과거'의 만남이라는 당위를 계몽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입니다. 슬픈데 기쁜 척, 사랑하지만 아닌 척, 힘들지만 담담한 척 그날의 이야기를 꺼내 놓는 배우들의 모습이 자연스레 웃음과 눈물 사이를 오가게 합니다. 특히 과장된 연기와 건조한 대사 처리 방식이 무대와 객석 간 거리를 어느 정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는데요. 1980년 5월 광주를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모두를 향한 소통의지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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