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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만에 아빠 만난 여섯살 딸, '이음누리'에서 마음 열었어요"
'이음누리' 면접교섭센터…이혼 가정 '만남의 끈'
'아이의 권리'에 방점…이혼 후 가정풍경 바꿔
2015-05-03 09:00:00 2015-05-03 09:00:00
아빠를 만난 지은이(6·여·가명)는 한참이나 엄마 뒤에 숨었다. "지은아 이리 오렴. 아빠야" 눈시울을 붉히며 아빠가 불렀지만 선뜻 손을 내주지 않았다. 1년 동안 보지 못한 아빠는 그렇게 어색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자 지은이는 아빠와 눈을 마주치고 먼저 말을 걸기도 했다. 2주 뒤 다시 만난 지은이는 아빠와 자연스럽게 포옹도 하고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등 눈에 띄게 마음의 문을 열었다.
 
지은이 아빠 김동진씨(36·가명)씨와 엄마 정은호(32·가명)씨는 2012년 이혼했다. 양육권을 가진 정씨는 매월 둘째·넷째 토요일 오후부터 1박2일로 김씨에게 아이를 맡기기로 합의하면서 이혼 소송은 조정으로 끝이 났지만, 날짜를 정하는 과정에서 또 다툼이 벌어졌고 결국 김씨는 아이를 1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김씨는 지은이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정씨 역시 그런 김씨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그러나 아이의 면접교섭을 두고 시간이나 장소, 방식 등에서 입장차가 컸던 두 사람은 얘기를 꺼낼 때마다 상처만 늘어갔다.
 
결국 김씨와 정씨는 서울가정법원이 법원 내에서 운영 중인 '이음누리' 면접교섭센터를 만남의 장소로 정했다. 중립적이고 안전했기 때문에 더 이상 좋은 곳은 없었다. 아빠 엄마가 이혼했지만 지은이는 한 달에 두 번 '이음누리'에서 아빠를 만나고 있다.
 
이혼을 경험하면서 두 번 다시 오고 싶지 않았던 법원을 아이와 함께 다시 찾는 부모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혼 후 풍경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서울 양재동 서울가정법원 1층에 있는 '이음누리' 면접교섭센터는 110㎡(33평) 넓이의 센터 안에는 놀이방처럼 꾸며놓은 면접교섭실 2개와 관찰실, 당사자 대기실 등이 있다. 
 
영·유아를 위한 이음방에는 '뽀로로'와 '코코몽'이, 7세 이상 어린이를 위한 누리방에는 볼풀장과 피규어, 장난감 주방놀이 등이 갖춰져 있다. 비양육 부모(이혼 후 양육권이 없는 부모)는 이 방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내며 그동안 나누지 못한 정을 쌓는다. 이 과정에는 전문가 조정위원이 함께 들어와 즐겁고 자연스러운 분위기 조성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바로 옆방 관찰실에서는 면접교섭위원이 한방향거울(매직미러)을 통해 부모와 아이의 모습을 지켜본다.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폭언이나 폭행, 탈취 시도 등을 막기 위해서다. 법원은 원활한 면접교섭을 위해 엄격한 규칙을 요구하는 한편, 양쪽 부모가 사용하는 출입구를 다르게 두고 방문 시간대에 차이를 둬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하는 등 배려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은 2007년 7월 '면접교섭실'을 설치해 이혼 소송 중인 부모가 자녀 양육 문제를 놓고 다투는 경우 아이들의 내면 상태나 부모와의 심리적 교감을 관찰·조사해왔다. 
 
하지만 이혼 소송이 끝난 후 "양육비를 제때 안주면 아이를 안보여주겠다"고 다투거나 면접교섭권을 박탈당한 부모가 앙심을 품고 중범죄를 저지르는 등 아이를 둘러싼 분쟁이 계속 일어나자, 법원은 아이가 비양육친과 안정적으로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지난해 11월 면접교섭센터 '이음누리'를 설립했다. 
 
이음누리의 설치는 '부부의 해체'가 곧 '가정의 해체'로 이어지면서 아이들이 부모와 적절한 관계를 정립하지 못한 채 성장하게 된다는 고민에서 시작됐다. 어릴 때 부모와 적절한 애착관계를 갖지 못한 아이는 발달지연·가출·우울증 등을 겪을 가능성이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높고, 성장 후 다시 결혼했을 때 이혼의 당사자가 되는 경우도 비교적 많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가정법원은 민법상의 면접교섭권을 '부모의 권리' 보다는 '아이의 권리'라는 데 방점을 찍었다. 면접교섭센터장인 서울가정법원 이수영 부장판사는 "과거 위자료와 재산분할을 중점적으로 다퉜다면 지금은 소송이나 합의 초기부터 양육권 및 양육비를 먼저 정하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지난해 발생한 이혼은 11만5500여건, 그 가운데 미성년의 아이가 있는 부부의 이혼은 50%를 넘는 5만7200여건에 달한다. 지난해 한해 동안에 8만8300여명의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을 경험했다. 사실혼 관계에서 헤어지는 경우를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열두살 때 꿈을 꾸었지. 식구들과 놀이동산에 갔던 온종일 뛰놀던 행복한 꿈을. 너무 외로워서 나도 몰래 웃는 법을 배웠지. 남들 앞에 늘 과장된 나의 몸짓으로 내 슬픔을 감추며 살아왔던 걸…." 이혼 가정의 아이를 위로하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아이들은 부모를 그리워하고 있다.
 
서울가정법원은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아이들이 좀 더 행복해지는 것을 돕기 위해 문을 활짝 열고 기다리고 있다. 누구나 무료로 1년까지 이용 가능하다. 문의 02-2055-7490
 
조승희 기자 beyond@etomato.com
 
'이음누리' 면접교섭센터. 가정법원 황해순 조사관의 제안으로 '이음누리'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좌측의 한방향거울(매직미러)로 면접교섭위원이 비양육 부모와 아이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사진 / 서울가정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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