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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미학자가 캐낸 예술가의 비밀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 진중권 지음 | 창비 펴냄
2015-04-25 10:16:43 2015-04-25 10:16:43
인터뷰에서 인터뷰이는 인터뷰어 만큼이나 중요하다. 대화의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대화의 내용과 결, 깊이가 확연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은 그런 점에서 안심하고 읽을 만한 책이다. 각 분야의 대표적 예술가들과 그들의 예술세계가 미학자 진중권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속 시원히 해부된다.
 
책은 2014년부터 진중권이 진행한 창비 라디오 팟캐스트 '진중권의 문화다방'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수많은 인터뷰이 중 8명과 나눈 대화가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이들 예술가가 몸 담고 있는 분야는 건축, 회화, 사진, 미디어아트, 디자인 등 가지각색이다. 책을 읽으면 예술가 개인뿐만 아니라 해당 장르에 대한 궁금증을 어느 정도 풀 수 있다는 점이 반갑다. 
 
예술가만큼이나 흥미로운 것은 인터뷰이가 예술장르와 예술가를 향해 품은 각각의 질문이다. 창작의 원리를 캐내 미학을 세우고자 하는 인터뷰이의 입장이 책의 곳곳에서 감지된다. 예술창작의 비밀이 궁금한 이들에게 특히 유용한 인터뷰집이다. 
 
▶ 전문성 : 미학자다운 해박한 지식이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때로는 인터뷰이의 대답보다 인터뷰어의 질문과 해설이 더 길 정도.
 
▶ 대중성 : 어려운 미학 개념을 알기 쉽게 전달하는 진중권 특유의 장점이 이 책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 참신성 : 각 챕터마다 인트로를 통해 앞으로 소개될 인터뷰의 핵심 화두를 전한다. 인터뷰어의 예술세계를 속속들이 전달하면서도 인터뷰이의 개성 또한 놓치지 않았다는 점이 참신하다.
 
  
■요약
 
시간을 박제하다 / 사진가 구본창
 
진중권은 사진가 구본창과의 인터뷰를 소개하기 전 독자에게 질문부터 던진다. 사진과 사진가를 다루면서 진중권이 끌어온 미학적 개념은 롤랑 바르트의 푼크툼(punctum, 본질적이고 주관적인 경험)이다. '사진의 본질이 푼크툼에 있다면 예술가는 그 본질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가?'가 이번 인터뷰의 중심 화두다.
 
질문에 대한 답은 직접적으로 제시되지 않는다. 하지만 곳곳에 힌트가 숨어 있다. 사진가들이 초현실주의 미학을 자주 활용한다는 것, 구본창 작가의 경우 작품을 만들 때 어떻게 낯설게 만들었는지 바로는 안 보이지만 어딘지 묘한 느낌이 나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내용 등이 그것이다.
 
이 같은 '창작의 비밀'은 작품과 함께 보다 구체적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구본창은 '탈(1998~2009)' 연작의 경우 상투적 해석의 바탕에 숨어 있는 느낌들을 포착하려 했다고 말하고, 2004년부터 작업한 '백자' 연작에서는 그것을 만든 도공이나 사용한 선비가 그 옛날에 느꼈을 느낌을 백자 안에서 찾아내려고 노력했다고 전한다.
 
여기서 인터뷰이가 그저 질문하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미학적 해석까지 곁들인다는 점이 흥미롭다. 가령 '백자가 입체적으로 두드러져 나오지 않고 자기가 속한 공간에 들어가버린 것이 외려 우리를 그 안으로 더 끌어들이는 것 아닐까' 하는 설명이 따라 붙는 식이다. 미학자 진중권의 해석적 시각이 더해지면서 독자는 창작의 비밀에 보다 근접해졌다는 느낌을 얻게 된다.
  
전복과 반전의 대중음악 / 대중음악평론가 강헌
 
진중권은 먼저 '대중음악의 역사는 민중사의 가장 내밀한 층위를 드러내는 미시사의 중요한 부분이 된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이후 이어지는 강헌 대중음악평론가와의 인터뷰는 이 명제에 대한 일종의 증명이 되는 셈이다.
 
인터뷰에서는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까지 한국 대중음악 신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먼저 1990년대, 최근 작고한 신해철에 대해 강헌은 사회적 발언력, 철학적 표현력, 새로운 사운드를 고민하는 영원한 음악감독이었다고 평가한다. 서태지에 대해서는 뮤지션으로서 음반산업의 자본으로부터 독립하며 최고의 혁명을 이뤘다 말한다. 서태지의 등장 이후로 사실상 수많은 봉기가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가 의도하든 그렇지 않았든 시장을 이른바 승자독식의 판으로 몰아감으로써 음악시장의 다양성을 사실상 교살한 면도 있다고 평한다.
 
2000년대 이후 음악 신의 변화도 살핀다. 진중권은 이 시기 음반회사와 레코드점이 모두 무너졌지만 기획사는 살아남았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강헌은 1997년 외환위기 때가 한국 음반산업의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기였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케이팝(K-Pop)의 의의와 한계를 균형 있게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음악상품으로서 아이돌 그룹은 음악 선진국들에선 오래 전에 사라진 콘텐츠인데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인터넷을 위시로 해 새로운 환경이 조성되면서 비주얼적 요소를 앞세운 K-Pop이 득세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다시 역으로 1970년대로 돌아가 통기타 혁명과 김민기 이야기를 다룬다. 강헌은 한국에서 새 세대의 새로운 문화지형도를 만든 것은 로큰롤이 아니라 신 포크 음악이었고, 이는 지극히 한국적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서구의 도구로 민족주의적 감정을 지식인적 방식으로 풀어낸 정답이 김민기였다고 말한다. 한국 록의 아버지, 신중현에 대한 이야기도 다룬다. 전쟁통에 부모를 다 잃고 중학교를 중퇴한 해외동포 난민 출신의 낙오자 소년이 최악의 생존 조건에서 어떻게 서구의 악기를 통해 진정한 미학적, 예술적 독립을 이뤄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신중현에 대해 강헌은 독자적인 한국적 표현의 방법을 끊임 없이 연구해냈으며 국가권력의 음악을 거부한 음악가라 평한다.
 
1980년대 가수로는 조용필을 다루는데 강헌은 조용필을 로커로 규정한다. 조용필이 트로트로 데뷔하긴 했지만 신중현과 청년문화가 맹폭을 받고 화면에서 사라지는 시점, 로커들이 전부 다 기성세대의 문법을 가지고 데뷔하던 시기였기 때문이고 기실은 로커라는 설명이다. 그리고 조용필이 장르의 문법을 완성하고, 또 주류시장에서 앨범 자체의 완성도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기준을 만들었다고 평가한다. 사운드 테크놀로지의 비약적 혁신을 이뤄내고 이를 통해 연주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결정적으로 바꿨다는 설명도 곁들여진다. 또 어른 취향의 음악을 40대 세대의 새로운 좌표로 설정한 점도 높이 평가한다.
 
마지막은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의 이야기로 수렴된다. 2000년대 이후 활동이 뜸한 이유로 강헌은 몸이 아팠다는 점, 그리고 이제는 음악과 음악가의 시대가 아니라 자본과 상품의 시대라는 점을 꼽는다. ‘음악이 아닌 이미지와 트렌드를 파는 시대. 과연 이런 시대에도 비평가라는 게 필요할까요?’라는 강헌의 질문이 꽤나 씁쓸하다. '비평가는 음악의 질서를 꿈꾸는 사람'이며 '다시 음악과 음악가의 시대가 돌아온다면 비평가는 그와 함께 돌아올 것으로 생각한다'는 말로 인터뷰는 마무리된다.
 
이 밖에도 책에서는 건축가 승효상, 배우 문성근, 미술가 임옥상, 소설가 이외수, 시각디자이너 안상수, 미디어아티스트 박찬경 등 총 8인의 인터뷰가 펼쳐진다.
 
■책 속 밑줄 긋기
 
"예술을 살아 있는 상태로 접하는 방법 중 하나는
지금 이 순간 예술의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가장 창의적인 사람들의 얘기를
직접 들어보는 것이리라.(진중권)"
 
"찍는 것도 중요하고 고르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결국은 시각과 경험, 그리고 자기가 뭘 이야기하고자 하는지를
분명히 하는 훈련이 필요하겠죠.(사진가 구본창)"
 
■별점 ★★★★
 
■연관 책 추천
 
'예술가란 무엇인가' 베레나 크리커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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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볏 문화체육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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