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것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건 기적이었음을'. 이선희의 15집 타이틀 곡 <그 중에 그대를 만나>를 작사한 이의 책이라기에 우선 눈에 띄었다. 김이나 작사가는 아이유의 <좋은 날>, 토이의 <좋은 사람> 등 대중의 인기를 받은 곡을 포함해 300여곡을 통해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는 일상을 노랫말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해냈다. 눈으로 보는 글이 아니라 '입으로 부르고 귀로 듣는 글'을 만든다는 점에서 '작사'라는 일의 고됨과 즐거움을 함께 엿볼 수 있다. 멜로디에 앞서 가사에 음미하게 되는 이들에게 특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 전문성: 작사가의 삶과 기술적인 조언이 책 서두에 자세히 소개돼 전문 작사가를 지망하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돼 준다.
▶ 대중성: 인기 가요의 작사가가 저자인 만큼 '이 노래가 이렇게 만들어졌구나'하며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작사법과 함께 소개된 다양한 노랫말이 읽는 재미를 더한다.
▶ 참신성: A&R(창작자들엑서 최대치를 뽑아내는 숨은 조련사)과 작가가 나눈 이야기가 인터뷰 형식으로 수록돼 있다. '음반업계의 꽃'이라고 불리는 그들의 시각을 담아 좋은 작사란 무엇인지를 다른 방향으로 짚어본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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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책은 크게 4부로 나뉘어진다. 감정의 언어를 적어내는 '작사의 기본기', 좋은 사람들의 삶을 노래로 담아내는 법에 관한 '소통과 관찰의 기록', 합당하지 않은 이별 후의 감정 '어떻게 사랑을 노래할까', 망상과 공상도 소중한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는 '나의 아이디어 사냥법'이다.
어떻게 사랑을 노래할까
가사에 가장 깊이 공감하는 감정이 있다면 아마도 이별 후에 대한 것일테다. 작가는 부처, 망부석, 거머리, 저주, 논개 유형 등 하나의 이별 앞에 각기 다른 리액션을 가사로 승화시키는 법을 소개한다. 사랑과 이별 이야기는 어떤 시각을 가지느냐의 문제로, 결코 한정적이지 않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부처 캐릭터는 박정현의 <서두르지 마요>에 사용했으며, 가인의 <돌이킬 수 없는>은 거머리 유형의 끝판왕이라는 설명이다. 브라운아이드걸스 <아브라카다브라>는 저주 유형, 김형중의 <그녀가 웃잖아>나 토이 <좋은 사람>은 호구 유형의 대표작이다. 다음은 <좋은 사람>의 한 소절이다.
'나는 혼자여도 괜찮아 널 볼 수만 있다면 난
늘 너의 뒤에서, 늘 널 바라보는 그게 내가 가진 몫인것만 같아'
당신의 망상과 공상은 소중하다
'어떤 날에든 저녁하늘은 못 올려보는 습관이 있어
온 세상이 날 떠나는 듯한 이상한 그 기분이 싫어'
에일리의 <저녁하늘> 도입부 가사다. 작가는 어렸을 때 엄마와의 이별에 대한 트라우마로 저녁하늘을 싫어하는 감정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개인사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저녁하늘을 이별과 연결시킴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에 닿을 수 있었다. 누구에게나 하나쯤은 있는 트라우마를 진솔하게 표현해내는 것이야 말로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책 속 밑줄 긋기
"결국 문제는 사랑과 이별이라는 소재가 아니다.
이걸 어떤 화법으로 풀어내느냐가 곡의 개성을 좌우한다.
늘 같은 테마를 다룬다고 '죽도록 사랑해, 돌아와줘'라는 문장만
반복되는 가사를 쓰면서 '전문 작사가'가 될 순 없다.
주제의 한계를 극복하려면 캐릭터에 개성을 불어넣어야 한다."
"발라드에서는 튀는 발음을 최소화할 수록 좋다.
말이 부드럽게 귀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
가수가 매끄럽게 소리를 뱉어낼 수 있도록 작사가가 세밀하게 발음을 재단해주어야 한다.
특히 고음을 길게 끄는 부분에서는 받침이 없을수록 좋고,
'아'나 '어' 등 목을 최대한 열 수 있는 발음을 넣어야 한다."
"나의 세계관이 조금씩 묻어나긴 하겠지만,
최대한 가수에 대한 검색과 관찰을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별점 ★★★★☆
김보선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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