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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마주쳤던 당신을 다시 만나기 위하여
'마주침' | 한은원 지음 | 문학의전당 펴냄
2015-03-27 17:08:22 2015-03-27 17:08:22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마주친다'는 말에서 '마주하다'와 '치다'를 분리해 내고, '마주친다는 행위에는 서로 멀어져감이 내포돼 있다'고 말하는 작가가 있습니다. 수많은 마주침을 겪은 자가 홀로 남겨진 채 느꼈던 그리움, 그리고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을 담아낸 책 '마주침'이 오늘 '뒷북' 코너의 주인공입니다.
 
작가라는 호칭을 무척이나 어색해 하는 한은원 작가는 사실 대학에서 영시를 가르치는 교수님입니다. '마주침'은 그의 첫 책입니다. 에세이 형식으로 가볍게 써서 친구나 지인들에게 건넸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엮여 나왔습니다.
 
◇49편의 시를 통해 인생을 묵상하다
 
"원래 출판하려고 쓴 게 아니라 쓰다 보니 어떻게 나온 책이에요. 보통 일상에서는 대부분 소소한 이야기들만 나누지 그렇게 깊은 얘기를 하진 않잖아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그렇죠. 남편도 '차라리 글을 써서 보여줘'라고 해서 글을 계속 쓰게 됐고, 어찌하다보니 어느 시인에게 출판사를 소개 받아 책까지 내게 됐어요."
 
공강 시간, 잠시 짬을 내어 만난 한은원 작가는 5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습니다. 작가는 '마주침'에 대해 '어차피 안 팔릴 거 같으니 내 맘대로 쓴 책'이라고 소개했는데,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 같습니다. 영문학을 전공했는데 영시가 아닌 한국시를 바탕으로 글을 짠 것부터 사실 파격적이라면 파격적입니다.
 
책에는 49편의 시를 바탕으로 쓴 글들이 수록됐는데 실제로는 150편이나 되는 글 중에서 추려낸 것이라고 하네요. 특정 시를 소개하고자 한 게 아니라 자신의 글을 쓰다가 문득문득 떠오른 시들을 글에 녹여냈습니다. 영문학과 교수이지만 국내 시에 대한 애정과 지식이 담뿍 담겨 있는 걸 보니, 시를 어루만져온 세월이 보통 오래된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은 마냥 자유롭게만 쓰여진 책은 아닙니다. '마주침'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글이 잘 분류되어 있거든요. 그리고 글들은 하나같이, 헤어짐을 내포하고 있는 '마주침'이라는 단어의 이분법을 깨뜨려 나가고 있습니다. 만남과 헤어짐, 육체와 영혼, 혼돈과 질서, 우연과 필연, 현실과 상상, 떠남과 돌아옴 등이 그렇게 꼭 무 자르듯 분명히 갈리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책 전반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마음 속에 늘 이분법에 관한 생각이 있긴 했어요. 상당히 서양적인 사고라고 여겨졌고, 굉장히 불편했거든요. 시간도 그렇고, 영원도 그렇고... 이 정도 나이가 되다보니 주변에 잃어버린 사람도 많고, 그 사람은 어디에 가 있을까, 뭐 이런 생각들이 들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그들이 안 없어진 게 아닐까요? 그립다보니 장난으로라도 글을 썼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가슴 속, 머리 속에 가득 차올라 있던 생각들이 어느 한 순간 마주침이라는 단어로 꿰어졌다는 게 작가의 설명입니다.
 
책 속으로 조금 더 들어가 볼까요. 첫 챕터 '만남과 헤어짐'에서 작가는 '첫사랑'을 떠올리며 첫사랑을 잃고 나서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라나려는 기도를 시작했다는 고백을 한 뒤, 황동규 시인의  '어린 시절 애인의 죽음'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한 없이 아픈 실패의 여정이 아름답기도 하다는 것을 이 시가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지요.
 
또 두번째 챕터인 '육체와 영혼'에서는 '영혼의 존재'라는 글을 통해 '육체를 벗어난 영혼의 존재를 믿지는 않지만 영혼이라는 화두에서 쉽게 벗어나기는 힘들다'고 운을 떼고, 데카르트 읽기에서 실패했던 경험을 털어놓습니다. 그리고 '당신에 대한 끈질긴 기억은 마치 당신의 영혼처럼 남아 있다'면서 이성복의 시 '환청 일기'를 소개한 후, 이런 쓰디쓴 시를 읽으면 다시금 영혼의 존재를 믿고 싶어진다고 덧붙이지요. 시 속에 깊이 빠져들 때쯤 이윽고 '내가 알 수 없는 다른 존재로라도 당신이 평안히 머물고 있다는 것을 믿고 싶어진다'는 작가의 고백이 덧붙여지는데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책의 가치는?
 
이 책은 단순하게 감상적으로만 흐르는 게 아니라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까지 담담히 담아낸다는 점이 돋보입니다.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실은 내용이 어렵다기 보다는 독자 각자가 현재 처한 상황이 어려울 경우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을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진정한 감상을 위해서는 삶에 대한 사유로 깊이 침잠해 들어갈 만한 시간적 여유, 마음의 여유가 반드시 요구되는 책입니다. 특히 삶 속에서 이별, 갈라짐, 분리됨의 아픔을 겪어본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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