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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명소에 시심을 더하다
2015-03-22 09:20:50 2015-03-22 09:20:50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시정(詩情)을 더듬는 한국의 명소' 김시운 지음 | 시선사 펴냄 | 1만원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김시운 작가가 정년 이후 전국을 여행하며 한국의 명소를 카메라에 담아 글과 함께 풀어냈다. 작가는 기행산문집이라는 형식을 십분 살려 한국의 명소를 찾아다니며 옛 선인들의 풍류와 정취를 만끽하고 그들이 느꼈을 행복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이 책은 계간 종합문예지 '시선'에 '한국의 명소를 찾아서'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글을 묶어 펴낸 것이기도 하다. 책에 등장하는 30개의 명소는 이미 한국인이라면 한번쯤 이름을 들어봤을 법한 곳들이다. 익숙한 '관광명소'이지만 시적 정취가 더해진 까닭에 새롭게 다가온다. 명소와 관련이 있는 한시와 시조, 현대시를 함께 감상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책은 총 3부로 이뤄져 있다. 1부에서는 반구정, 화석정, 다산초당, 수어장대, 남한산성 행궁, 죽서루, 경포대, 오죽헌, 의상대, 청간정, 도산서원, 하조대, 2부에서는 용주사, 화성행궁, 심곡서원, 병산서원, 청량사, 면앙정, 영주 부석사무량수전, 양신정, 묵계서원, 3부에서는 봉은사, 영금정, 낙안읍성, 담양 식영정, 속리산 법주사, 환벽당, 송강정, 자운서원, 마곡사 등이 소개된다.
 
▶ 전문성 : 문화유적지에서 떠오른 시적 감흥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춘 책. 그러나 단순한 시흥만을 전달하는 것은 아니고 역사와 시문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 대중성 : 익숙한 명소들을 다룸으로써 독자가 가벼운 마음으로 글을 통한 여행에 동참하도록 이끈다.
 
▶ 참신성 : 시인의 주관적인 상상력이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준다. 이런 방식의 글쓰기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시인의 개성이 한껏 드러난 덕분에 장소를 새롭게 바라보게끔 한다.
 
 
■요약
 
반구정, 화석정
 
작가는 임진강 강기슭에 세워진 정자 반구정을 찾아 황희 정승의 심정이 되어본다. 87세인 황희가 쓴 시를 인용하며 그 나이쯤이면 여유 있게 삶을 돌아볼 것이라 생각했건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고 내려온다. 이어 화석정으로 발걸음을 옮긴 저자는 이곳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떠올린다. 이곳 화석정은 서울이 함락되기 전의 정황을 모두 보고 있었을 것이라며, 10만 양병설을 주장하며 상소를 올렸던 이이가 이곳에서 말년을 보냈다는 점도 상기한다. 결국 작가는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우리네 인생이 아닌가 하는 상념에 잠긴다.
 
다산초당
 
강진 정약용 유배지인 다산초당에서 작가는 정약용의 편지를 떠올리며 그의 사상에 심취해본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뜨거운 의지가 담긴 편지를 보다가 시인은 문득 ‘지금 무엇을 위해 시를 쓰는가’에 대한 생각에 잠긴다.
 
수어장대, 남한산성 행궁
 
인조 2년에 군사적 목적으로 지어진 수어장대에서 작가는 이곳을 오르내렸을 장수들의 흔적을 찾아나선다. 또한 청에게 굴욕적으로 항복한 이후 청의 감시가 심해지면서 요주의 인물로 찍힌 최명길과 김상헌의 우정을 떠올리기도 한다. 둘은 척화론과 화이론으로 대립각을 세웠지만 결국 나라 사랑하는 마음은 같았기에 화해를 할 수 있었다. 작가는 자기 욕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보통의 사람들에 대해 잠시 묵상한다. 이어 남한산성 행궁으로 이동한다. 이곳은 인조가 지은 곳으로 병자호란 때 농성 45일 만에 굴욕적인 맹약을 한 옛 싸움터다. 작가는 이곳의 한남루에 걸려 있는 결연한 시구를 읽으며 눈길을 빼앗긴다.
 
죽서루
 
죽서루에 올라 숙종, 정조, 율곡 이이, 정철 등 시인 묵객의 흔적을 발견한다. 정철의 시를 읽다가 문득 자신 역시 낯선 곳으로 발길을 자주 옮겨도 언제나 풍진에 쌓인 먼지가 있음을 깨달으며 세상을 느리게 바라보는 연습을 하기를 희망한다.
 
경포대, 오죽헌, 의상대
 
작가는 강릉 경포대 뜨락을 거닐며 조선 숙종과 좌찬성을 지낸 구사맹, 이조참판을 지낸 김세필의 시를 읊으며 시정의 불길에 사로잡힌다. 오죽헌 뒤뜰에서는 신사임당의 시를 읊으며 다시금 조선시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기암절벽 위에 서 있는 의상대 마루에 오르자 시흥은 절정에 달한다.
 
청간정, 도산서원, 하조대
 
과거 여행했던 강원도 고성의 청간정으로 발걸음을 뗀 작가는 죽서루와 망해정 등 옛 여행지들을 떠올리며 발길 가는 대로 여행하고 싶은 심정을 읊는다. 다음 행선지는 퇴계 이황이 독서 수양 저술에 전념하며 제자를 길러낸 도산서원이다. 저자는 퇴계의 시를 떠올리며 산수자연을 노래하며 마음을 달랬던 조선 사대부의 심정을 짐작해본다. 홀로 여행하면서 따라 붙은 외로움과 고독함을 뒤로 하고 다음 여행지를 모색한다.
 
작가는 이번에는 조선 개국 공신이던 하륜과 조준의 성을 따서 불리게 된 하조대에 올라 도심에 그을린 마음을 씻는다. 굳건하게 버텨온 애국송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노년을 보낸 하륜과 조준이 아마도 이 소나무를 부러워하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책 속 밑줄 긋기
 
먼 길까지 와 있어도 아직 길은 멀리만 남아 있는 것 같다.
정자 주변에 있는 높은 느티나무에 그네를 메어 놓고 바람을 세차게 차며 그네를 뛰던 옛 선인들의 일을
옛날의 일로만 스쳐 지나쳐야겠는가?
 
과거와 현재, 미래를 이어주는 문화의 연속성의 실마리를 찾고 싶다.

세상을 느리게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싶다.
 
■연관 책 추천
 
'최옥선의 여행' 최옥선 지음 | 시선사 펴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7' 유홍준 지음 | 창비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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