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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수의 부동산퍼즐)개포에선 무슨 일이.."강남이여 안녕"
2015-03-04 16:05:12 2015-03-04 16:05:12
[뉴스토마토 한승수기자] 쌀쌀한 바람이 불던 지난달 28일 오후 3시쯤. 이성진씨(가명)는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를 한바퀴 둘러보면서 여러 고민에 잠깁니다. 6년정도 살면서 정이 많이 든 것도 있지만 이사를 앞두고 산더미 처럼 쌓인 걱정 때문입니다.
 
전셋값을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를 따르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인상액은 2000만원. 누군가에게는 큰 돈이 아닐지 몰라도 넉넉지 않은 형편의 이씨에게는 부담이 큽니다. 이씨는 역삼동에서 안마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계약만료 6개월 전 통보하게 돼 있는 임대차보호법을 내밀어 2년 더 눌러앉고도 싶지만, 6년간 전세금 한번 올리지 않고 여러 편의를 봐줬던 것이 고마워 도의상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7000만원의 전세금으로 지금과 같은 방 2개짜리 전세를 구한다는 것이 쉽지 않아 속이 답답한 모양입니다. 개포3·4단지도 알아보고, 가까운 성남쪽에도 찾고 있지만 물건이 없는데다 가격이 맞으면 집상태나 입지가 마음에 너무 안듭니다. 이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한 집은 역시나 가격이 맞지 않습니다.
 
이씨가 살고 있는 개포주공1단지 103동은 준공한지 30년이 훌쩍 넘은 아파트입니다. 벽에는 균열이 발생했는지 방안 벽지 넘어로 뒤틀림이 보일 정도입니다. 단지를 꽉 채운 은행나무는 가을, 겨울 열매가 떨어지고 나면 고약한 냄새를 뿜어냅니다. 지하주차장이 없어 지상에는 차가 넘쳐납니다.
 
◇1982년 입주한 개포주공1단지. 단지 외벽에 균열이 선명히 보인다(사진=한승수)
 
그래도 이씨는 단지가 크고, 인근에 대모산도 있어 쾌적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근처에 이렇다할 유흥가도 없어 조용하고, 관리사무소 아저씨들도 친절해 더 살고 싶지만 이씨는 어쩔 수 없이 떠날 채비를 하고 있습니다.
 
전세난의 무풍지대였던 개포주공에도 전세난이 휘몰아치고 있습니다. 개포주공1단지는 1982년 입주한 아파트인데요. 노후화가 너무 진행돼 저렴한 가격에도 불구하고 전세난에서 살짝 벗어난 곳이었습니다.
 
최근 전셋값은 9000만~2억원 정도. 강남에서 방 두 개짜리 아파트를 이 가격에 구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것도 강남에서. 작고 낡디 낡은 개포주공이나 되니까 가능하지 하늘의 별을 따는 수준일겁니다.
 
개포주공1단지의 전셋값이 급등한 것은 최근 진행된 개포주공2단지의 이주때문인데요. 재건축이 진행되며 인근 1단지로 이사를 하며 전월세값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날 찾은 중개업소에서는 집주인과 예비세입자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는데요. 이달 중 월세로 입주하기로 하고 2주전 계약금을 지불했는데 집주인이 갑자기 월세를 올려야한다고 하며 가벼운 마찰이 생긴 것입니다.
 
집주인은 "요즘 월세가 많이 올랐으니까 현 시세로 다시 계약해야 한다"고 말하는 반면 세입자는 "벌써 계약금까지 받아놓고 이제와서 그러면 어떻게 하냐"고 답답해 합니다. 중간에서 중개업자는 난처한 표정입니다.
 
중개업소 관계자는 "2단지가 이주를 시작하면서 전월세가가 갑자기 올랐어요. 전세는 2000만~3000만원 정도 오르고, 월세도 비례해서 올랐어요. 전에는 월세는 남아돌았는데 요즘은 월세도 없네요. 갑자기 임대료가 오르니까 이런 일도 생기네요"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1400가구 규모의 개포주공2단지가 가장 빠른 재건축 추진 속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개포주공1단지도 현재 재건축을 위한 절차가 진행 중에 있습니다. 현장에서는 2~3년안에 이주가 시작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는데요.
 
서울에서 가장 싼 전세아파트인 개포주공. 그 중에서도 개포주공1단지는 가장 오래된 아파트로 최저가 전세아파트입니다. 5040가구가 이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가장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재건축 속도가 늦은건 조합원이 너무 많아서 생긴 일인데요. 이 5040가구 중 상당수가 세입자입니다.
 
언젠가 개포주공1단지도 재건축이 시작되면 이들은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요즘같은 때라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중개업소에서는 "여기 전세금으로는 서울에서도 갈 곳 찾는게 쉽지 않아요. 빌라나 대세대주택 찾아보겠죠. 그것도 쉽지 않을거에요. 경기도로 넘어가는 수 밖에 없어요. 아파트는 낡아도 강남에서 이 전세금을 살 수 있는 곳이 없었는데. 여기 계신 분들 만족도는 높았아요. 아쉽겠죠"라고 말을 하더군요.
 
집은 하나. 집주인의 조건에 맞는 새로운 세입자가 오면 누군가는 그 자리를 비워야 합니다. 그림이 맞는 퍼즐은 자리를 채우고, 맞지 않는 퍼즐은 다른 자리를 찾아야 하는 것처럼..
 
어쩌면 강남과 맞지 않는 퍼즐과도 같았던 이씨는 아쉬움이 담긴 얼굴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남 집값 정말 비싸잖아요. 아마도 이번에 강남을 떠나게 되면 다시는 강남으로 돌아올 수 없겠죠?. 그래도 형편에 안맞게 강남에서도 살아보고 좋은 추억 만들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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