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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임사유는 혼인취소 사유 안돼"..대법 첫 판결
"성기능 문제 없으면 부부생활 못할 '악질' 아니야"
2015-03-03 12:00:00 2015-03-03 12:00:00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자녀를 가질 수 없는 성염색체 이상과 불임 등의 문제는 혼인취소의 사유가 될 수 없다는 대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A씨(33·여)가 남편 B씨(39)를 상대로 낸 혼인취소 등 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혼인취소를 인정한 원심을 깨고, 이 부분에 대한 패소 취지로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는 불임검사 이후 자신의 무정자증과 성염색체 이상을 알게 됐고 특별한 의료적 시술 없이 통상적인 방법으로 여러번 정액검사를 받은 결과 발기능력과 사정능력이 문제되지 않았다"며 "이같은 사정을 종합하면 원고의 부부생활과 피고의 성기능 장애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밝혔다.
 
이어 "그렇다면 피고에게는 민법 816조 2호에서 정한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가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할 것임에도 이와 달리 판단해 원고와 피고의 혼인관계에 취소사유가 있다고 판결한 원심은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판시했다.
 
교사인 A씨는 의사인 B씨를 중매로 만나 2011년 1월 결혼했으나 아이가 생기지 않자 불임 검사를 받은 결과 B씨에게 무정자증과 염색체에 선천적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크게 낙심한 두 사람은 갈등에 점점 휩싸이다가 B씨가 형의 정자를 이용해 인공수정을 권한 이후 불신과 갈등이 깊어졌다.
 
결국 A씨는 B씨가 의사인 점 등에 비춰 처음부터 본인이 불임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를 감추고 자신과 결혼했다고 생각하게 됐고, B씨는 그런 A씨에게 실망과 분노를 느껴 다투는 일이 많아지다가 A씨를 폭행까지 했다. 결국 두 사람은 2012년 6월부터 별거를 시작했다.
 
이후 A씨는 B씨를 상대로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이 있음을 알면서도 속이고 결혼했거나, 적어도 자신은 이를 알지 못한 채 혼인했다"며 혼인취소와 함께 위자료 1억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혼인취소가 인정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예비적으로 이혼을 청구했다.
 
B씨도 자신이 무정자증임을 알게된 뒤부터 A씨가 모욕적 언사와 폭행을 행사했고 장모도 병원까지 찾아와 업무를 방해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며 이혼과 함께 위자료 3000만원을 지급하라며 반소를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생식불능 증세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혼인취소 사유인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A씨의 혼인취소 청구를 기각했다. 다만 두 사람의 혼인생활이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파탄됐고 그 원인은 상대적으로 관계회복에 적극 나서지 않은 B씨에게 있다고 판단, 재산분할과 함께 "두 사람은 이혼하고 피고는 원고에게 위자료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피고에게 혼인 당시부터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었음에도, 원고는 이를 알지 못한 채 결혼한 것이 인정된다"며 A씨의 혼인취소 청구를 받아들였다. 다만 재산분할과 위자료 5000만원 지급 부분은 1심을 유지했다. 이에 두 사람 모두 상고했다.
 
◇대법원 전경(사진제공=대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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