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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전문 출판사, 없으면 서운해 만들었어요"
김해리 자큰북스 대표
2015-01-28 17:07:56 2015-01-28 17:58:07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손바닥 크기의 책으로 세상을 담아내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지닌 출판사가 있다. 희곡전문 포켓북출판사 자큰북스다.
 
희곡 출판만 하는 게 아니다. 출판된 대본을 바탕으로 공연까지 지원한다. 지난해만 해도 봄소리카페극장 ‘봄봄 희곡전’, 봄꽃무대 ‘두 덩치’, 토요낭독극장 ‘여름키스 희곡전’ 등 세 차례나 공연을 올렸다. 28일부터 2월 1일까지는 대학로 선돌극장에서 ‘눈꽃무대’를 마련, 두 작품을 무대화한다.
 
아직은 미생이다. 자큰북스는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관한 2013년 소셜벤처 경연대회 우선선발되면서 본격 출범했고, 2014년에는 사회적기업 육성사업에 선정됐다. 본격적인 사회적기업으로 가는 단계를 착실히 밟고 있는 중이라 보면 된다.
 
‘작지만 큰 책’을 만들겠다는 이 출판사 대표는 연극연출가로도 활동 중인 김해리(사진)씨다. 올해로 30살, 아직도 연극계에선 막내다. 대책 없는(?) 행보에도 불구하고 긍정적 기운과 아이디어가 넘치는 김 대표에게 연극계는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희곡전문 출판사가 없어 서운한 마음에 ‘자큰북스’를 만들었다"는 김해리를 서울 동숭동에서 만났다.
 
김해리 자큰북스 대표(사진=김나볏기자)
 
-희곡전문 출판사 자큰북스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2013년에 소셜벤처 경연대회에서 우선선발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전에는 '이런 거 하고 싶으니까 혼자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연출 작업을 했었으니까 이 판의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연극은 내 돈으로 하는 거지. 희곡출판도 하고 싶으면 내 돈으로 해야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답답해 하는 친구가 있었다. '언제까지 그럴 거냐'면서. 그러면서 소셜벤처 경연대회를 소개해줬다. ‘메트로 극장’이라는 포맷으로 지원했는데 지난해 사회적 기업 육성사업에 선정이 돼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메트로 극장'이라. 어떤 개념인가?
 
▲제일 처음에는 지하철 선반에 희곡을 비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잡아당기면 늘어나는 줄을 달아서 사람들이 앉아서 볼 수 있게끔 하는 콘셉트다. 그 아이디어로 시작을 했는데 일단 콘텐트부터 마련해야 하니 아직까지는 손을 못대고 있다. 서울메트로와 연계도 해야할텐데 그러기에는 우리가 너무 신생이라 일단 출판부터 하기로 했다. 그래도 지하철과 연계된 무언가를 하려고 계속 궁리 중이다. 지하철은 서울의 주요 대중교통수단이니까. 지하철 역세권 내에 있는 카페에서 자큰북스의 희곡책을 바탕으로 공연을 하기도 했다.
 
-지하철 역세권이면 비싸지 않나?
 
▲안 비싼 곳도 있다(웃음). 지난해 6월 봄소리카페극장 ‘봄봄 희곡전’이 그 경우다. 남부터미널에 ‘카페 50’이라는 공간이 있다. 알고보니 사회적기업 육성사업 선배 기수가 낸 공간이더라. 사람들은 별로 안 왔다(웃음). 홍보도 안 됐고, 유동인구도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 거기 다니는 사람들은 그냥 터미널을 이용하지, 그 공간을 향유하지는 않아서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다시 대학로로 왔다. '대학로에서 좀 더 해 보고 다시 가 보자', 뭐 그런 단계다.
 
-연출가인데?
 
▲한양대에서 연출과 연기를 했었다. 
 
-자큰북스는 출판사다. 연출가가 왜 출판사를 한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작연출이다(웃음)
 
-책은 어디서 만날 수 있나?
 
▲처음에 겁을 먹어서 유통을 넓히지 못했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 팔고, 공연할 때 팔고, 인터넷으로 연락 받아서 팔고 했다. 대전에 있는 서점 하나에 비치하기도 했다. 출판유통을 잘 모르는데다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문화재단 산하 서울연극센터와 함께 '10분 희곡 릴레이'를 하게 됐다. 제목은 ‘수요일엔 빠알간 희곡을’이다. 이걸 계기로 전국으로 유통을 다 하려고 한다. 이번에 총판 계약을 해 판매를 위탁할 것 같다.
 
-책 가격은?
 
▲3000원이다.
 
-이제까지 총 6권 나온 것 맞나?
 
▲그렇다. 3월 쯤 한권 더 나온다. 2월에 하는 '수요일엔 빠알간 희곡을'도 책으로 나온다.
 
자큰북스에서 출간한 포켓북(사진제공=자큰북스)
 
-함께 하는 직원 혹은 동료는 몇 명인가?
 
▲3명 이상이 모여야 기금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1년 정도 같이 하다가 하나둘씩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지난해 초 우리가 자체적으로 선발했던 '청년연극인'들이 함께 하게 됐다. 작가 1명, 연출 4명, 배우 1명을 나름 선발을 했었다. 같이 창업했던 친구들은 오히려 빠져나가고 그때 청년연극인으로 선발된 분들이 남아서 함께 일하게 됐다.
 
지금으로서는 수익을 낼 구조가 전혀 없어서 차라리 1인 기업형으로 바꾸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출판을 하자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벌어서 출판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맘을 먹고 있었는데(웃음). 생각지도 않게 서울연극센터와 함께 하게 됐고 지금은 청년연극인 분들이 많이 도와주신다.
 
-'청년연극인'은 누구인가?
 
▲입봉하지 않은 사람들을 기준으로 우리가 선발한 이들이다. 연출가 정현, 조성현, 장재원, 배우 박준성, 그리고 우두머리 격의 윤혜진 연출가가 있다. 윤혜진 연출가의 경우 멘토처럼 역할을 해줬으면 해서 섭외를 따로 했다.
 
-책 값이 워낙 싸서 장사가 안 될 것 같은데 연습실과 사무실이 다 있더라.
 
▲사무실은 1년 간 지원 받은 것이다. 곧 나가야 한다. 연습실은 실은 내가 연출 작업할 때 쓰는 연습실이다. 근데 그냥 쓰라고 한다.
 
-무료로 빌려주나?
 
▲지금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작업하는 예술가들이 겨울이니 보일러값 정도는 내겠다고 하길래 그러시라고 했다(웃음). 
 
-책이 보기에도 예쁘고 의미도 있고 한데, 한편으로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걸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개인작업도 하고 있는데 대책 없이 일을 벌린 것 아닐까 싶기도 한데?
 
▲정확하다(웃음). 원래 연출작업을 꾸준히 하고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처음에는 '책을 조금 만들고 싶다', 이 정도였다. 요새 1인출판사가 많으니까. 근데 지원을 받고 하면서 점점 일이 커져갔고 지금은 연출 작업을 많이 못하고 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1년에 한 작품만 하자는 마음을 먹고 있고, 그 외에는 자큰북스에 많이 투자하고 있다.
 
2월1일까지 열리는 자큰북스 '눈꽃무대'. 위부터 <해맞이>와 <옥상 위 카우보이>(사진제공=자큰북스)
  
-젊은 연극인들이 희곡 출판의 대상자다. 특별한 이유나 계기가 있나?
 
▲개인적인 경험 때문이다. 처음에 입봉을 <광염소나타>라는 작품으로 했다. 그 때 연습실이나 극장을 연우무대에서 지원해줬었다. 물론 제작비는 내가 대야 했지만 '누가 이 정도 도와주면 그래도 할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진입장벽이 높다고 생각했다. '왜 연극은 나이 먹어서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청년들이 만든 연극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젊은 연극인들에게 버틸 시간이 좀 주어져야 될텐데.
 
▲버티는 건 둘째치고 시작조차 못하니까 문제다. 버티는 건 알아서 하더라도 시작이라도 좀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또 내가 받았던 걸 돌려주고 싶은 마음에 봄꽃무대, 눈꽃무대를 제작했다. 사실 우리가 연극인들에게 제작비를 많이 지원해주지는 못하고 극장을 대관해주고, 소정의 제작비를 조금 지원하고, 기획홍보를 조금 해주고 하는 정도다. 그래도 그 정도만 해도.. '나는 이 정도만 해주면 진짜 연출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이 정도 해줄 수 있는데 공연을 하겠냐'고 예술가들에게 물었더니 생각보다 좋아하더라. 
 
-돈이 모자라지 않나?
 
▲많이 모자란다.
 
-그럼 어떻게 하나?
 
▲예산 잡아 놓은 것까지는 우리가 감당하고 그 나머지는 연출이 내기도 한다. 근데 뭐, 거의 사비를 썼다(웃음). 내가 공연하려고 모았던 사비를, 어떻게 하다보니 넣었다. 그래서 내 공연비는 없는 상태인데 다행히 두산아트센터와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공동 선정하는 '빅보이'에 당선돼서 이번에 두산 아트랩에서 작업한다. 거기에 기대 제작을 하려 한다. 다행이다(웃음).
   
-포켓북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학사를 여러가지 했는데(웃음). 그중 다전공으로 국문과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포켓북은 익숙하다. 포켓북을 잘 읽고, 안 읽을 것 같으면 어디다 놓고 오기도 한다. 그리고 미국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 보니 포켓북 희곡이 정말 많더라. 아주 조악한 소재로 만든, 무가지에 가까운 느낌의 책들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희곡을 찾기가 좀 어렵지 않나. 전집으로 나오고 하니 접근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또 문학장르 중 시를 굉장히 좋아했다. 시는 한 페이지에 세계를 담는다. 희곡도 시와 비슷하다. 그렇게 길지 않은데 한 세계를 담아내고, 무대언어도 시적이다. 그 한 세계를 좀 작게 보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무엇보다 휴대하기 편하고 저가라는 게 매력적이었다(웃음). 
 
-원래의 포부대로 지하철에 희곡 포켓북이 배치된다고 상상해보자. 사람들이 어떻게 이 책을 소비할 지 궁금해진다. 읽을까?
 
▲나도 그게 제일 궁금하다. 과연 읽을까? 스마트폰이 널리 퍼져 있는데다 다들 바쁜데 굳이 그걸 꺼내서 읽을까. 라는 생각은 든다. 그래서 맨날 사람들한테 물어본다. 이거 하면 볼 거 같아? 라고. (웃음). 그냥 일단 흥미는 갈 거 같다,라고들 한다. 그래서 그 책을 좀더 흥미 있게 만들기 위해 책 안에 QR코드 같은 거 넣어서. 예를 들어 낭독공연을 하면 녹음파일을 QR코드로 넣는 거다. 그래서 그 녹음파일을 들으면서 볼 수 있게끔. 읽는 문화가 많이 죽었으니까. 들으면서 읽을 수 있는 그런 식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아직 설치를 못하고 있는 게 저 자신도 과연 그걸 한다고 읽을까?라는 거에 대한 의구심 때문인 것 같다. 그것에 대한 확신이 좀더 생기면 아마 진행하지 않을까.
   
-요즘 희곡 중심에서 탈피하는 연극이나 다원예술장르들이 많다. 젊은 사람들은 이런 쪽에 관심 갖는 경우가 많은데 희곡에 방점을 찍었다는 게 특이하다.
 
▲일단은 없는 게 창피했다. 희곡 전문 출판사가 없는 게 싫었다. 막상 내 연출 작업은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바탕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이번 작업도 희곡 없이 공동창작으로 작업하고 있다. '난 희곡 없이 작업도 하는데 왜 자큰북스를 하고 있지?' 라는 생각이 들어 한편으로는 웃기다. 그러나 여전히 난 희곡 읽는 게 좋다. 없는 거에 대해서 서운하고 속상하고 창피해서 시작을 했던 것 같다.
    
-멋있고 좋은 생각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진다. 유복한 집안의 자제인가(웃음)?
 
▲유복한 것까지는 아니고 생활비를 벌어 보태야 하는 건 없다. 어머니가 전폭적으로 지원해주신다. 사실 자큰북스에 어머니 돈도 좀 들어갔다(웃음). 돈이 없을 때 '100만원만' 하고 바로 꾸고 또 갚고(웃음). 후원에도 가끔 어머니 이름 들어간다.
 
어렸을 때부터 나누고 돕는 일에 익숙한 환경에서 자랐다. 아버지가 생전에 복지, 나눔에 대해 열성을 가지셨고 심지어 대통령 표창도 받으셨다(웃음). 대전에서 노숙자들 대상으로 컵라면 급식을 하셨고, 노인잔치도 한달에 한 번씩 열고 많이 하셨다. 하여간 온갖 사람을 도우셨다. 그래서 '뭐, 돈 있으면 쓰는 거지' 라는 생각을 한다. 엄마도 그러신다. '있으면 좋은 일에 쓰는 게 좋지' 라고 생각하신다. 물론 나도 돈을 벌긴 한다. 대전에서 연기레슨도 했었고. 100만원 정도 벌어서 거의 다 여기다 박고 그랬다(웃음).
  
-올해 지나면 지원이 종료되지 않나? 그럼 향후 어떻게 갈 지에 대해 고민이 될 것 같은데 계획이 있는지?
 
▲2~3월에 지원금 공고가 다 뜬다. 그때 열심히 지원을 하고(웃음). 또 우리 취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 몰랐는데 생각보다 많더라. '이런 거 있는데 지원해봐라' 라면서 연락을 주시는 분들도 계시다. 일단은 낭독공연 형식으로 좀 짧게 지속적으로 해보려 한다.
 
-앞으로의 포부는?
 
▲계속 출판하고 싶다. 내 돈을 넣든 뭐 어떻게 하든 간에 매년 두권씩 출판을 하고 싶다. 한번에 두세 작품이라도 꾸준히 말이다. 실은 이걸로 돈을 벌 수는 없다. 1인 기업형태로 바꾼 것도 이걸로 내가 돈을 지불할 수 없는데, 지불할 수 없음에 대한 부담감이 너무 커서다. '그럼 내가 혼자 안고 가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출판할 수 있는 만큼만 출판을 계속 꾸준히 할 생각이다. 어쨌든 계속 출판해서 한국 연극을 기록하고 싶다는 게 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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