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의 배경인 나미야 잡화점은 고민 상담점이다. 원래 주인이었던 할아버지가 고민 상담을 해오는 편지에 일일이 답장을 해주던 소중한 추억이 깃든 곳이다.
몇 십 년이 흐른 후 낡고 아무도 찾지 않는 나미야 잡화점에 도둑 세 명이 숨어들어갔다가 기이한 체험을 하게 된다. 잡화점은 과거와 현재가 이어지는 공간이었다. 도둑들은 잡화점으로 온 고민상담 편지를 우연히 읽게 되면서 편지에 답장을 하기 시작한다.
도둑들은 자신들이 쓰는 답장이 과거로 전해지는 편지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에게 솔직하면서도 꼭 필요한 조언자 역할을 한다. 그들은 고아로 자라다가 자신을 돌봐준 이모할머니를 위해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여성의 고민편지를 보게 된다. 그 여성은 돈을 벌기 위해 클럽에 나가고 있었다. 도둑들은 그 여성에게 이렇게 답장한다.
"경제 관련 공부를 철저히 하십시오. 증권 거래와 부동산 매매에 대한 공부를 하세요. 저금을 해서 부동산 매입을 하세요. 최대한 도쿄 중심부와 가까운 곳이 좋습니다. 어떻게든 1985년 이전에 부동산을 매입해야 합니다. 1986년 이후 일본은 사상 유례없는 호경기로 부동산 가격이 급등합니다. 1985년부터 1989년까지 어떤 종목의 주식을 사도 손해 보는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해요. '투자로 돈을 벌 수 있는 건 기껏해야 1989년까지입니다.' 가격이 더 뛸 것 같더라도 1989년 이전에 모든 투자에서 손을 떼세요."
도둑들이 여성에게 조언한 내용은 '3차 환율전쟁' 이야기이다. 일본 황금기와 '잃어버린 20년'의 시작을 정확히 짚고 있다. '약한 달러'의 공격에 '강한 엔'이 패배한, 사실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일본 경제불황의 근본적인 원인이기도 한,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환율전쟁의 패배담이다.
<환율전쟁 이야기>는 교묘한 달러 곡예의 역사와 환율전쟁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미국이 금융시장과 통화정책의 주도권을 지금까지 어떻게 유지해 왔는지 세 차례에 걸친 환율전쟁을 누가 주도해 왔는지 세밀하게 파헤친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양적완화 정책을 도입하면서 시작된 현재 진행중인 '4차 환율전쟁'을 우려하고 있다. 저자는 과거의 환율전쟁들이 모두 미국의 경제상황이 힘들 때마다 주기적으로 평가절하를 시도해 온 사실을 환기시킨다. 그리고 그 환율전쟁이 영토전쟁보다 더 격렬하고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다는 것. 미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이 이유도 없이 지는 건 물론이요, 지고도 진 줄 모른다고 지적한다.
가장 가까운 3차 환율전쟁의 결과를 보자. <나마야 잡화점의 기적>의 도둑들이 답장을 통해 알려준 시기는 이 때다. 일본은 사상 유례없는 호황기를 보낸다. 주가가 뛰고 부동산 값이 솟아올라 잔치판이 벌어진 일본의 황금기. 바로 '3차 환율전쟁'으로 불리는 '플라자 합의' 직후 시기이다.
1985년 미국,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 등 다섯 나라의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엔화에 대한 달러가치를 떨어뜨리기로 합의했다. 미국이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곧 쌍둥이적자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무역흑자로 경상수지 흑자행진을 이어가는 일본을 손 볼 필요가 있었다. '달러 가치를 하락시키고 엔화 가치를 높이는' 우격다짐을 한 셈이다.
플라자합의 이후 엔화절상으로 일본은 '일억총중류'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한 마디로 1억의 일본인 모두가 중류 이상이라는 의미이다. 수출로 먹고살던 일본은 플라자 합의로 엔고가 심해지자 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저금리정책으로 전환한다. 문제는 금리를 내리면 엔화가 약세로 돌아서야 하는데 유동성만 늘었다. 엔화 강세로 수입품 가격이 떨어지고 물가가 안정되면서 니케이지수를 강하게 끌어올렸다. 도쿄 증시는 3년 새 300%나 뛰었다. 부동산도 뛰어 거품을 키웠다.
일본 경제의 버블이 빠지기 시작하자 일본 경제는 버블 전보다 더 악화됐다. 수많은 사람들이 파산하고 부도 도미노가 이어지며 일본 경제는 침체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이 모든 것이 환율에서 시작됐다. 약한 달러의 공격에 강한 엔이 패배한 것이다.
환율전쟁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 양적완화 정책을 도입하면서 시작된 '4차 환율전쟁'이 진행중이다. 미국의 완화적인 통화정책으로 미국 정책금리는 2008년 12월 이후 6년 넘게 0%가 유지됐고 Fed의 자산규모도 3배 이상 확대됐다. 하지만 최근 미국 경제가 다른 국가와 달리 차별화된 회복세에 힘입어 양적완화 종료 뿐 아니라 올 하반기에 금리를 인상할 전망이다. 이번엔 강한 달러의 공격이다.
문제는 비동조화 현상이다. 미국과 달리 유럽과 일본은 양적완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추가 금리 인하 뿐 아니라 추가적인 통화정책 완화가 예상된다. 이렇게 선진국들의 통화정책 비동조화는 금융시장의 변동폭을 키운다.
유럽과 일본이 제로금리인 상황과 미국 정책금리가 6년 만에 인상된다는 것이 변동성을 더 키울 것으로 보여 국제자금흐름과 환율 불안이 크게 나타날 수 있다. 한국의 경우 글로벌 달러강세는 원화가치 하락과 자본유출에 따른 금융불안 확대를 줄 수 있다. 미 연준 금리 인상이 시장의 기대보다 급격하게 이뤄지거나 취약 신흥국에서의 자본유출로 외환위기가 발생하면 한국 금융시장도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자 그렇다면 4차 환율전쟁의 피해자는 누가될까.
김하늬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