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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변호사들이여 분노하라!
2015-01-08 19:24:53 2015-01-12 19:57:55
대한변호사협회장은 협회를 대표하고, 협회의 업무를 총괄한다. 내부적인 권한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변호사 2만여명의 수장으로서 대외적인 권한이 막강하다.
 
우선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와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의 당연직을 맡을 법적권한이 있다. 법조계를 이른바 ‘법조3륜’으로 구분할 때 사법부와 검찰을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 권한이 그에게 보장되어 있다.
 
이 외에도 선거방송심의위원회, 채권금융기관 조정위원회, 변호사등록심사위원회, 검찰인사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게 된다.
 
제1대 회장은 최병석 변호사다. 그는 한국전쟁 막바지이던 1953년 4월 취임했다. 당시는 변호사 수가 극히 적었으니 이렇다 할 선거의 모양새도 없었다. 이후 상당한 기간 동안에도 원로들이 변협회장을 돌아가면서 했다. 그로부터 62년이 흘렀다.
 
필자가 처음 기자생활을 할 때만 해도 변협회장 선출 과정을 두고 속설이 있었다. 법조계 원로들이 낙점을 하면 그가 다음 변협회장이 된다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실제로 누군가가 낙점을 받았다는 소문이 서초동에 돌면 대부분 그가 당선됐다.
 
또 역대 협회장 중에는 서울지방변호사회장 출신이 적지 않았다. 다소 시간 차이는 있더라도 서울회장 출신들이 나중에 협회장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 일종의 전관예우다.
 
법적으로는 제한이 없었지만 서울회장이 된 뒤 2년간은 변협회장으로 출마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면 미덕이었다.
 
그러나 이면을 보면 서울회장의 전력을 세로 몰아 변협회장에 오르려 한다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트릭이라는 비판도 많았다.
 
이같은 ‘전관예우’는 45대 김평우 협회장이 당선되면서 깨졌다. 김 회장은 서울회 섭외이사나 조사위원, 광고심사위원, 외국법연수원장 등 회무를 맡았지만 회장 출신은 아니었다. 이후 서울회장 출신들의 변협회장 출마가 이어졌지만 모두 고배를 마셨다.
 
이 때부터 전통적인 변협회장 선거의 관행은 본격적으로 무너졌다. 김 회장의 뒤를 이은 신영무 46대 협회장은 첫 대형로펌 출신 협회장이다. 그는 근 30여년간 법무법인 세종의 대표와 고문으로 일하다가 협회장 선거에 뛰어들어 당선됐다.
 
신 회장 때 변협회장 선거는 또 한 번 변신한다. 신 회장 본인까지는 대의원 선거였다. 전국 지방변호사회 회원 수에 비례해 대의원을 뽑고 그 대의원들이 협회장 선거의 유권자가 됐다. 전국 변호사 중 70~80%가 몰린 서울회 출신 변호사가 협회장이 되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47대 변협회장 선거 때부터는 직선제로 바뀌었다. 그 직선 1기 협회장이 바로 수원지방변호사회장 출신의 위철환 변호사다. 그는 본선 투표에서는 김현 전 서울회장에게 뒤졌지만 결선투표에서 역전했다.
 
선거 때마다 지역과 학연주의, 네거티브 등 부작용이 있었지만 변협회장 선거가 진화한 것은 분명했다.
 
유권자들의 참여도 활발했다. 변호사 사무소가 밀집한 서초동은 물론이고 '율담'이라는 젊은 변호사들의 온라인상의 광장에서는 연일 토론이 이어졌다. 재조의 판검사들도 누가 변협회장이 될 것인가가 사석에서의 빼놓을 수 없는 화제였다. 과열양상도 있었지만 변협회장 선거는 그렇게 법조계의 큰 행사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나라 변호사들은 이제 마흔 여덟 번째 회장을 맞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예의 변협회장 선거 열기를 찾아볼 수 없다. 지방까지 선거전 범위가 넓어졌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정작 지방변호사들은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율담을 대신해 온라인상에 나타난 이른바 '사시사랑'이라는 인터넷카페 정도가 선거전의 불씨를 이어갈 뿐이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 7일 열린 서울지방변호사회 후보자 합동연설회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서울회 유권자는 총 1만1488명이다. 그러나 서울지방변호사회관 지하 1층에서 개최된 이날 행사에 참석한 변호사는 50명 안팎이었다. 2000년대 이후 역대 최소 규모가 아닐까 싶다. 그나마 취재기자와 각 후보캠프의 참모들을 빼면 참여 변호사는 민망한 숫자다. “후보들의 연설 후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한 사회자의 말이 머쓱할 정도였다.
 
이날 서울지역 변호사들 상당수는 당일 합동유세가 있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관심도 없고 누가 되든 상관없다는 변호사들도 적지 않았다. 후보들의 이름을 다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들의 무덤덤한 대답에서 역대 집행부의 무능함이 느껴졌다. 반감을 지난 무관심이다.
 
그러나 변호사 본인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공급과잉에 직역 침탈까지 겹쳐 유례없는 불경기를 보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본인들의 수장을 뽑는 데에는 최소한의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번에 출마한 후보들은 하창우, 소순무, 박영수, 차철순(이상 기호순) 변호사 등 4명이다. 모두 변호사들의 위기를 극복해보겠다고 나온 사람들이다. 이들이 내세운 공약 중 일부는 참신하지만 허황되고 뜬구름 잡는 공약도 없지 않다. 그러나 유권자들인 변호사들 중에는 누가 어떤 공약을 내세웠는지 조차도 모르는 사람이 허다하다. 그러면서 변협이 해주는 것이 무어냐고 분노한다.
 
그래서는 안 된다. 변호사들 스스로가 그들과 직접 부딪혀보고 옥석을 가려야 한다. 그리고 뽑아 놓은 협회장에게는 힘을 실어줘야 한다. "무엇을 해줬느냐"고 묻지 말고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묻고 감시해야 하며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응징해야 한다.
 
변호사들은 이른바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이다. 법률가로서 무엇보다 민주적 정당성 부여의 귀중함과 엄중함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다. 필자가 법률가들을 동경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점에서 만큼은 법률가들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을 볼 때 이런 신념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재야 법조계의 고질적인 병폐와 불황, 부조리함의 책임은 변호사들 자신에게 있다. 변협 선거를 두고 '그들만의 리그'라고 비판하고 있지만 그렇게 만든 것 역시 변호사들 자신이다.
 
그에 대한 분노를 속으로 삭이지 말고, 뒤에서 돌이나 던지지 말고 사무실에서 쏟아져 나와 마음껏 분노하라. 그것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저항이다.
  
최기철 정치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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