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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몰락과 부활)②'보신주의' 뭇매..더 강력한 채찍에 '전전긍긍'
朴대통령, 금융 보신주의 또 질책..`정부 vs. 금융권` 엇박자 계속
2014-12-23 16:29:02 2014-12-23 16:29:09
[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올 한 해 금융권 고위직에서 '신(新)관치금융' 유령이 떠돌았다면 영업 일선은 보신주의로 뭇매를 맞았다. 대통령부터 금융당국 수장들까지 '금융 보신주의'를 실물 경제의 걸림돌로 규정하고 한 목소리로 꾸짖었다.
 
몸 사리기냐 위험 관리냐 등 보신주의에 대한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매질'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을 일주일 앞두고 다시 한번 '금융 보신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더 가혹한 채찍이 '혁신'의 이름을 달고 나올 것으로 보여 금융권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유례없는 기술금융 등수 매기기..순위싸움 진풍경
 
"결전을 앞두고 탈영병의 목을 벤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기술금융에 동조하지 않은 금융사는 아웃(out)"
 
지난 8월 신제윤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첫 기술금융 현장방문에 나서면서 금융권에 던진 경고 메시지다. '관련기사: ☞신제윤 "앞으론 독한 금융위원장..기술금융 동참하지 않으면 아웃"'
 
그로부터 이틀 전 박근혜 대통령이 '금융 보신주의'가 실물경제를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고 질타했던 참이다. 기술금융 대출 확대의 서막이 열렸다.
 
이후 보신주의를 타개하고 기술금융을 확대하기 위한 갖가지 채찍이 쏟아졌다.
 
금융당국은 은행별 기술금융 대출 실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기술금융 상황판'을 내걸었다. 또한 기술금융 취급 실적을 매일 혹은 매주 은행권으로 보고 받는다.
 
기술금융 실적이 포함된 '혁신평가지표' 점수가 낮을 경우에는 정책자금 등을 차등하는 것은 물론이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겠다고 강조했다. 실적을 은행장, 임원 평가에도 반영하기로 했다.
 
채찍 전략은 효과를 발휘했다.
 
정책 시행 5개월만에 기술금융 대출 실적은 유례없는 실적을 기록했다. 기술금융현황판에 따르면 기술금융 실적은 올해 7월 486건 1922억원에서 11월말 9921건 5조8848억원으로 급증했다. 금액기준으로는 약 30배 늘었다.
 
특히, 국내 시중은행들이 기술신용평가기관(TCB)를 통해 실행한 대출은 지난 7월말 54건에서 지난달말 5355건으로 늘었고 금액은 1조8892억원이 증가했다.
 
은행별 기술금융 순위가 매겨지면서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어느 국책은행장은 시중은행에 기술금융 실적 1위 자리를 빼앗기자 자존심을 구겼다며 임원들을 질책하기도 했다. 정작 임원들은 기존 대출 정책과 기술금융 대출 확대가 부딪힌다고 토로한다.
 
물론 금융권도 기술금융 확대의 취지에는 이견을 달고 있지는 않다. 기존에 담보나 보증에 의존에 왔던 대출 관행으로는 초기 창업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지난 10월 중견가전업체인 모뉴엘이 쓰러졌다. 모뉴엘은 로봇청소기와 홈시어터 PC생산에 주력하며 급성장했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가 주목할 회사로 소개한 혁신기업이었다.
 
모뉴엘에 수천억원대의 여신이 물려 있는 은행들은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법원이 모뉴엘에 파산을 선고하면서 은행권 신용대출액 수천억원은 그대로 날릴게 생겼다. '관련기사: ☞금감원 "모뉴엘 은행권 신용대출 약 3000억원"'
 
은행권 관계자들은 모뉴엘 대출근거가 된 수출보증서나 기술금융의 기술평가서가 판박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 관계자는 "기술금융대출 역시 신용대출로 분류된다"며 "훗날 기업 도산에 따른 부실 대출을 은행들이 뒤집어 쓰는 것이 아니냐"고 토로했다.
 
◇'금융 보신주의' 또 질책..더 강력한 압박?
 
박 대통령은 전날 청와대에서 열린 국민경제자문회의 겸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금융 보신주의'를 또 다시 거론했다.
 
"우리 금융은 보신적 행태로 현실에 안주한 결과 생산성과 고용창출 능력이 낮아지고 실물경제 지원 역할도 미흡한 상황"이라며 "기존 담보 대출 위주와 전혀 다른 새 규제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경환 경제부총리도 잇따라 보신주의를 질타하자 금융권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내년에는 정부의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우선 기술금융의 전면적인 확대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금리 정책을 압박하는 케이스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이후 은행들이 대출금리 인하에 인색하다는 비판이 공론화되기도 했다.
 
정부가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금융부문에서는 경쟁촉진과 모험자본 활성화를 통해 자금순환을 촉진하는 '돈맥경화' 해소에 초점이 맞춰졌다.
 
또 핀테크 활성화 방안을 포함한 IT·금융융합지원방안을 내년 1월 중 마련하고 인터넷 전문은행 도입 여건도 검토하기로 했다.
 
특히 자금순환을 촉진하겠다고 했지만 은행들은 가계대출 위주로 대출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은행들은 6~12%에 이르는 가계대출 증가율을 내년에는 목표치를 절반 가량으로 낮춰잡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 보신주의를 강조한 것도 금융 역동성을 살려서 돈을 돌게하겠다는 것"이라며 "하지만 은행들은 내수 활성화에 의문을 품고 가계부채를 줄이겠다는 방침"이라고 말했다.
 
한 민간연구소 연구위원은 "정부가 내놓은 경제정책방향은 당초 경제팀이 강조했던 가계소득 증대 등에 관한 조치들은 힘이 빠지고 각종 구조개혁에 역점이 맞춰졌다"며 "내수 체력 회복에 중점을 두지 않으면 보수적인 금융권과 엇박자를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뉴스토마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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