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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산업 10대뉴스)적합업종 '퇴색'..대기업에 고개숙인 동반위
2014-12-23 11:00:00 2014-12-23 11:00:00
[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중소기업 적합업종제도 도입 취지가 크게 퇴색했다. 동반성장위원회가 제 기능을 포기하면서다. 배경에는 대기업의 '힘(자본)의 논리'가 작동했다. 규제개혁을 천명한 청와대에 대한 눈치도 한몫 했다.
 
때문에 시민사회와 중소기업계를 중심으로 동반위의 무용론마저 나오고 있다. 지난 이명박 정부 야심차게 출범했던 동반위는 초대 위원장인 정운찬 전 총리가 대통령에 항거, 사퇴하면서 급속도로 힘이 위축됐다. 이제는 적합업종 제도의 법제화 요구마저 묵살하면서 존폐의 기로에 놓였다.  
 
◇대기업 vs 중소기업, 적합업종 둘러싼 팽팽한 줄다리기
 
적합업종 제도는 골목상권 보호 명분 하에 대기업은 3년 동안 시장 진입을 자제하고 중소기업은 유예기간 동안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지난 2011년 도입됐다. 인위적 조정을 통해서라도 대·중소기업 간 상생을 이뤄내겠다는 취지였다.
 
이 제도는 도입 당시부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기업은 외국계 기업의 시장 확대, 대기업에 대한 역차별 등이 야기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하며 강력히 반대한 반면 중소기업계는 대기업의 무차별적인 시장 진출을 제한해 체급에 맞는 경쟁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들며 제도의 필요성을 요구했다.
 
도입 이후에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힘겨루기는 여전했다.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내건 적합업종 제도가 실효성을 잃었다며 산업경쟁력 약화를 이유로 적합업종 폐지를 요구해왔다. 반면 중소기업계는 적합업종 제도가 실효성을 잃었다는 데는 동의하면서도 대안으로 법제화를 들고 나왔다. 진단은 같으면서도 대안을 달랐다.  
 
올해 적합업종 재지정 여부를 결정짓는 시점에 이르러서 대기업과 중소기업계의 신경전은 극에 달했다.
 
2011년 이후 3년간 동반위가 지정한 적합업종은 총 101개 품목으로, 등록기간 3년이 지난 품목은 82개다. 기간이 만료되는 82개 품목에 대해서는 '재지정' 혹은 '해제'를 결정지어야 한다. 중소기업은 82개 품목 가운데 77개 품목에 대해 재합의를 신청했으며, 대기업은 50개 품목의 해제를 신청했다. 제도 시행 3년이 지났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입장 차는 여전히 평행선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동반성장 포기하고 출범한 안충영號
 
동반위는 그간 적합업종 재지정에 있어 낙관론만 펴왔다. 올 8월 새로 수장에 오른 안충영 동반위원장은 당시 3기 체제 출범을 알리는 취임식에서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법으로 울타리를 치는 것보다 대기업, 중소기업, 공익 대표들이 모여 민간 자율로 합의점을 유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자율 합의'를 강조했다.
 
법제화의 반대였다. 이는 대기업의 요구를 사실상 그대로 옮긴 것으로, 동반위가 적합업종 제도를 포기한 것이라는 비난을 불러 일으켰다. 법의 강제적 규제 없이 실효성 있는 이행이 이뤄질 수 없다는 한계는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던 터다. 동반위가 개혁의 칼을 스스로 내려 놓음으로써 더 이상 동반위에 기대할 게 없다는 목소리도 터져나왔다.
 
이에 중소기업계와 소상공인들이 적합업종제도의 법제화를 직접 추진하고 나섰다. 동반위가 주장하는 '자율 합의'에 의한 적합업종제도로는 중소기업 보호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국회에서 2년째 계류 중인 '중소기업, 중소상인 적합업종 보호에 관한 특별법'은 여전히 재계와 여당의 반대에 막혀있는 상태다. 전국유통상인연합회와 한국산업용재협회 등 9개 단체는 지난 10월 ‘중소기업·중소상인 적합업종 특별법 제정 추진본부’를 발족, 법제화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동반위, 대기업 눈치보기 급급
 
동반위가 23일 현재까지 재지정 여부를 결정한 품목은 26개. 이중 12개 품목은 '재지정'으로 다시 3년간 보호를 받게 된다. 나머지 3개 품목은 '시장감시'로, 11개 품목은 '상생협약'을 맺기로 결론 지었다. 재지정 여부를 확정한 26개 품목 가운데 14개 품목은 사실상 적합업종에서 해제됐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자율적 합의에 의한 결정이라는 게 동반위의 주장이다. 하지만 힘의 논리를 감안했을 때 애초에 시장에 자율적 합의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고 있다. 결국 '상생'이란 포장으로 대기업의 시장 진출을 열어준 꼴이 됐다.
 
재지정 여부가 결정된 26개 품목 가운데 대기업의 해제 신청과 중소기업의 재지정 신청이 겹친 품목은 19개. 이 가운데 9개 품목을 재지정으로 합의, 대기업은 9개 품목을 중소기업에 내주는 대신 나머지 10개 품목은 다시 그들의 사업영역으로 가져왔다.
 
 
아직 합의에 이르지 않은 품목만 51개에 달한다. 안충영 동반성장위원장은 지난 9월 간담회를 통해 "적합업종의 운영이 대기업의 양보와 중소기업의 보호라는 이분법적 틀에서 벗어나겠다"며 "법제화보다는 자율합의를 우선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대기업의 양보와 중소기업의 보호는 동반위 탄생의 배경이었다. 이를 벗어나겠다며 또 다시 자기부정을 한 셈이다.
 
동반위가 기대한 자율합의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두부, 발광다이오드(LED) 등 29개 품목에 대해 양측의 이견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적합업종 해제 품목은 더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다. 중소기업을 위한 보호장치가 무용지물로 전락할 위기에 놓인 셈이다.
 
동반위의 주 업무인 적합업종제도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위원회 역시 존폐의 기로에 섰다. 대통령 직속기구로 출범한 동반위는 대기업의 절대적인 지원으로 운영되며 스스로 덫에 갇혔다. 동반위의 한해 예산 가운데 절반 이상은 대기업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적합업종 재지정을 둘러싼 혼선이 끊이질 않는 상황에서 동반위가 중소기업의 손을 들어주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지적이다.
 
대기업을 대변하는 단체는 전경련과 경총 등 이미 수없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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