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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눈)효성, 진정성에서 답을 찾아라
2014-12-19 10:18:25 2014-12-19 12:47:57
[뉴스토마토 양지윤기자] "탄소섬유 분야는 40년 전 10곳의 구미 업체들이 개발에 참여했지만, 시장성이 보이지 않아 거의 대부분이 철수했습니다. 우리는 소재가 진화하지 않으면, 완제품 역시 바뀔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탄소섬유 분야는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를 진행해 왔고, 앞으로도 전개해 나갈 것입니다."
 
지난 7월 도레이그룹의 중기 경영전략 및 도레이케미칼 비전 선포기념식. 행사 참석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닛카쿠 아키히로 도레이 사장은 탄소섬유 시장 점유율 세계 1위를 달성한 비결로 '끈기'를 꼽았다.
 
탄소섬유는 여전히 연구대상이고, 성장시켜야 할 사업분야라고 강조하는 대목에서 도레이의 강한 집념과 확신을 엿볼 수 있었다. 인내심과 지구력을 요구하는 마라톤 선수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집념의 결과일까. 도레이는 지난달 17일 '잭팟'을 터트렸다. 미국 보잉에서 1조엔(한화 9조5000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수주를 따냈다. 항공기 분야 수주금액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로, 도레이는 앞으로 10년 간 보잉의 항공기 동체 제작에 쓰이는 탄소섬유를 독점 공급하게 된다. 매년 우리돈 9000억원 정도를 꼬박꼬박 벌게 되는 셈이다.
 
지난달 24일. 한국도 탄소섬유로 떠들썩했다. "국내 '최초'로 고기능성" 탄소섬유를 개발한 회사가 "세계 '최고'의 탄소 클러스터를 만들겠다"고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주인공은 효성이다. 효성은 탄소섬유 클러스터 조성을 통해 전북지역의 산업 생태계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제시하며 기대감에 한껏 부풀었다.
 
하지만 이를 대하는 업계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 없었다. 발표 내용이 지나치게 포장됐다는 이유에서였다. 효성은 2011년 국내 최초로 '탄섬' 개발에 성공해 국내 '최초'라는 타이틀을 앞세우고 있지만, 기술개발과 양산 모두 태광산업이 앞선다.
 
태광산업은 지난 2009년 탄소섬유 기술을 개발하고, 2012년 3월 양산에 나섰다. 지난해 5월 전북 전주공장에서 생산을 시작한 효성보다 기술 개발은 2년, 양산은 1년3개월 정도 먼저 앞선다. 이에 대해 효성은 "경쟁사가 먼저 개발했지만, 저가형 제품이다. 저가 기술을 개발해 놓고, 국내 최초라고 하는 건 맞지 않는다"면서 "고기능성 기술을 개발한 우리야말로 최초"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효성이 양산 중인 제품은 고기능성일까.
 
효성 측 설명에 따르면, 중성능 탄소섬유는 주로 골프채와 낚시대·스노우보드에 이용되고, 항공기와 로켓 등 군사용 제품에는 고성능 탄소섬유가 쓰인다. 효성 역시 중성능 제품이라고 평가절하했던 골프채와 낚시대용 제품만 생산하고 있다. 비행기는커녕 콘셉트카의 힘을 빌려 차량에 프레임을 공급한 것 외에는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이다.
 
사실 전 세계에서 탄소섬유를 만드는 기업은 효성, 태광산업을 비롯해 40여 곳이나 된다. 그 중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가지고선 명함을 내밀 수 없다. 품질 경쟁력에 따라 시장점유율이 철저하게 갈리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국내외 탄소섬유 생산 업체들은 굉장히 많지만, 결국 '품질'이 문제"라고 말했다. 탄소섬유를 활용해 자동차, 산업용 부품을 만드는 복합재료 기술을 얼마나 확보한지가 더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업계의 분위기에도 아랑곳 않고, 심지어 경쟁사를 깎아내면서까지 효성이 탄소섬유 띄우기에 혈안이 되자 관련 업계는 씁쓸하다는 반응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재판 중인 조석래 회장을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마저 보내고 있다. 과도한 실적 띄우기와 장밋빛 전망에서 조급함이 느껴진다는 것. 
 
"끈질기게, 장기적이라는 키워드에 힌트가 숨어있다."
 
지난달 보잉과 공동 기자회견 자리에서의 닛카쿠 도레이 사장의 발언을 옮겨본다. 그는 경쟁 업체들을 제치고 왜 도레이만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느냐는 현지 언론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넉달 전 국내에서 한 발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꾸밈없는 담백한 발언이지만, 고개가 끄덕여진다. 효성이 제시한 탄소산업에 대한 청사진에서 좀 더 진정성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은 비단 기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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