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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러시아 디폴트 위기 급증..세계 금융권도 '흔들'
달러·루블 장중 한때 80.10루블..중앙은행 금리 인상 안 먹혀
신흥국 금융권 불안 '가중'..통화가치·증시 동반 '하락'
2014-12-17 13:15:46 2014-12-17 13:15:48
[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대폭 인상했음에도 루블화 약세가 이어져 러시아 경제를 둘러싼 근심이 깊어졌다.
 
러시아와 비슷한 경제 구조를 지닌 산유국과 경제 위기에 취약한 신흥국 금융권도 덩달아 흔들리는 모습을 연출했다.
 
국제 유가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는 데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 조치도 예정돼 있어 신흥국 경기는 당분간 하방 압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루블 약세 심각..중앙은행 금리 인상 안 통해  
 
16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즈(FT)는 러시아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대폭 인상했음에도 루블화 약세가 심화됐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이날 뉴욕외환시장에서 달러˙루블 환율은 장중 한때 전거래일보다 19% 오른 80.10루블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 1998년 디폴트 때 이후 최고치다.
 
◇달러·루블 환율 추이 2013년 6월~2014년 12월16일 (자료=트레이딩이코노믹스)
 
이후 달러˙루블은 68루블 선으로 낮아졌으나, 러시아 통화정책에 대한 불신감이 급증했다. 금리를 16년래 최대치로 올렸는데도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기 때문이다. 루블화 가치는 올 들어서만 48%나 낙하했다.
 
이런 루블화 약세로 시장 전반에 공포감이 확산되자 러시아 금융권은 엄청난 매도 분위기에 휩싸였다. 이날 러시아 증시 대표지수인 미섹스는 장중 한 때 8.0% 넘게 추락했고 달러로 환산되는 모스크바 RTS지수는 전장대비 12.0% 폭락했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전 거래일 대비 2.0% 오른 15.36%를 기록하며 지난 2007년 이후 최고점을 찍었다.
 
알렉산더 모슬리 슈로더 펀드매니저는 "러시아가 전면적인 외환위기에 빠졌다"며 "위기를 유발한 원인이 해소되기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 러시아 경제 문제 여전..유가 하락·서방 경제 제재 
 
기준금리 인하에도 루블화 약세가 이어지고 있는 이유는 러시아 경제를 둘러싼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제 유가 폭락, 우크라이나 사태에 따른 서방의 경제 제재, 지정학적 불안, 연방준비 제도(Fed)의 기준금리 인상 예감 등이 러시아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특히, 국가 수입의 절반이 에너지 수출에서 발생하는 러시아에 유가 하락은 재앙이나 다름없다. 러시아 정부가 내년 예산을 운용하려면 브렌트유 값이 적어도 90달러 정도는 나와줘야 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가 무산되고 원유 생산량이 늘면서 유가는 지난 몇 달 간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브렌트유는 지난해 말부터 지금까지 무려 47%나 하락했다.
 
이날 브렌트유 내년 1월 인도분 가격은 59.94달러로 지난 2009년 7월 이후 처음으로 60달러를 밑돌았다. 
 
◇브렌트유 가격 추이 7월_12월16일 (자료=인베스팅닷컴)
 
서방의 각종 경제 제재로 러시아 기업의 자금줄이 막힌 것도 문제다.
 
러시아 정부는 국가 복지기금을 동원해 가즈프롬 같은 국경기업에 수백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이 계획은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올 해 한 해 동안에만 러시아는 루블화 약세를 막느라 800억달러를 넘게섰다. 그 바람에 외환 보유고가 급격하게 위축됐다. 
 
러시아 중앙은행의 외환 보유고는 현재 약 4200억달러(470조원) 수준이다. 지난 2008년의 6000억달러(672조원)에서 급감한 수치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대로 루블화 약세가 지속되면 러시아가 디폴트(체무불이행)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페이덤 이코노믹스는 "루블화가 지금과 같은 낮은 수준을 이어간다면 국가부도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며 "지난 1998년 디폴트 때보다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루블 약세, 신흥국 금융권에 '치명상'..통화가치·증시, 곤두박질  
 
러시아 경제 문제는 다른 산유국과 신흥국에까지 무더기로 영향을 미쳤다. 유가 하락과 세계 경기둔화, 루불 약세가 맞물리면서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신흥국 자금이탈이 가속화됐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러시아 금융 위기가 신흥국으로 전이됐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닐 셰어링 캐피탈이코노믹스 신흥시장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유가는 계속 떨어지고 러시아 경제 문제는 더욱 악화될 것"이라며 "이런 경제 위기는 다른 나라로 확산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러시아처럼 원유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들이 크게 요동쳤는데, 베네수엘라의 2027년 만기 국채 가격은 이날 8.5%나 떨어져 지난 1998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22개국 신흥시장을 대상으로 한 MSCI EMI 지수는 1.2% 내린 913.20을 기록했고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두바이 증시는 나란히 7.3%가량 곤두박질 쳤다. 두바이 증시는 지난 며칠간 무려 20%나 떨어졌다.
 
원유를 수입해다 쓰는 신흥국들도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만만치 않은 피해를 봤다. 터키 리라화 가치는 장중 달러 당 2.41리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고 남아프라카 공화국의 랜드화 가치는 이틀 동안 달러대비 5.8%나 빠졌다.
 
브라질 레알화 가치는 전일보다 1.6% 내리며 지난 2005년 이후 최저치로 몰락했고 인도 루피화도 0.9% 하락해 13개월래 최저점을 찍었다.
 
신흥국 금융권 불안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연준이 내년 중에 기준금리를 인상하면 시중에 달러 유동성이 줄어들면서 신흥국 통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베노이트 안네 소시에테제네랄 신흥시장 수석 전략가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은 달러 강세를 가속화 할 것"이라며 "이는 신흥국 통화에 더 큰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안전자산으로 평가받는 엔화는 강세를 나타내 달러·엔 환율은 전일보다 1.2% 하락한 116.41엔을 기록했고 한국의 원화도 엔화 강세로 수출 기업이 경쟁 우위에 설 것이란 전망에 강세를 띠었다.
 
아울러 독일 국채 10년물 금리는 이날 사상처음으로 0.56%까지 낮아졌고, 일본 10년만기 국채 금리 역시 사상최저치인 0.36%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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