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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장그래의 정규직 전환은 불가능할까
2014-11-27 12:50:36 2014-11-27 16:25:51
장안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드라마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고졸 계약직 신분이다. 인턴 시절 남다른 열정과 업무능력을 보였지만, 대졸 동기들이 정규직 발령을 받은 반면 자신은 2년 계약직에 머물렀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바둑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고, 프로기사 일보 직전까지 갔지만 프로의 문턱을 넘는데는 실패했다.
 
바둑에 쏟은 열정과 노력을 따지면 결코 프로기사에 뒤지지 않았지만, 장그래는 "열심히 하지 않아서 세상에 나온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잡고 낯설은 사회생활에 적응하려 발버둥 친다.
 
아직 방영되지 않은 웹툰 원작에서는, 장그래가 마음 앓이를 하는 대목이 나온다. 계약기간 종료는 점점 다가오건만, 정규직 전환 가능성은 좀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저 앞에 낭떠러지가 눈에 들어오는데 피해갈 길은 없다. 그저 새로운 길이 생겨서 낭떠러지를 넘어갈 수 있기를 마음 속으로 빌 뿐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을 극복해보고자 어떻게든 발버둥치는 장그래의 고군분투에 웹툰 독자들은 함께 마음 아파하기도 했다.
 
故 신해철은 유작이 되어버린 JTBC 프로그램 '속사정 쌀롱'에서 청년 백수에 대해 "젊은이들의 정신력 문제가 아니다. 꿈꿀 수 있는 상황에서 흘리는 땀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흘리는 땀은 다르다"며 제도적 개선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년들의 일자리 마련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조속히 사회로 진출해야 할 젊은 인력들이 비생산적인 스펙쌓기에 골몰하고 있는 현상은 정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다 보니 정부에서도 묘안 찾기에 골머리를 썩히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방향이 이상하다. 정규직에 대한 해고요건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는가 하면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직접 나서서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이 감당을 못하고 있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번 뽑으면 60세까지 정년을 보장하기 때문에 기업이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년을 60세로 의무화한 것은 다름아닌 박근혜 정부다. 한국 사회의 고령화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방안에서 나온 대책이었다.
 
그런 정부가 불과 1년여 만에 정년 의무화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정년을 50대로 낮춰야 한다는 뜻일까. 어느 장단에 발을 맞춰야 하는 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정규직 해고요건을 완화해서 손쉽게 정리해고를 할 수 있게 한다면, 강력한 노조가 버티고 있는 대기업보다는 힘없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먼저 쫓겨날 것이다. 고용 양극화는 한층 심화될 것이 불보듯 뻔하다.
 
평균 수명은 높아지고, 퇴직 후 일자리는 막막하다. 아파트 경비원 일자리를 둘러싼 작금의 사회적 논란은 비정규직 노동시장의 불안정성을 단적으로 반영한다. 그런 가운데 해고요건을 완화한다는 것은 그나마 얼마 남지 않은 사회적 완충장치를 흔드는 행위다.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용주의 생리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손쉽게 해고는 하고 싶고 고용은 부담스럽다. 고용을 하더라도 저렴한 가격에 말 잘듣는 사람을 쓰고 싶다. 기업문화를 약육강식의 정글과 구분짓는 것은 법적, 제도적 장치다.
 
최 부총리는 정규직 개혁과 함께 비정규직 처우개선을 병행 추진하겠다고 말했지만, '비정규직 처우'보다는 '정규직 개혁'에 방점이 찍힐 것이라는 우려를 감출 수 없다.
 
우선 순위를 확실히 해야 한다. 비정규직 처우 개선과 정규직 전환 확대가 정규직 개혁에 선행돼야 한다. 그래야만 정리해고에 대한 불안이 해소될 수 있다.
 
장그래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소망이라고 많은 직장인들은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이같은 통념을 바꾸는 것이야 말로 정부의 최우선 과제다.
 
손정협 문화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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