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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형 금융' 밀어 붙이기..부실 대출 양산?
부실책임 은행만?..구체적 가이드라인·철저한 사후관리 동반돼야
2014-11-21 09:30:00 2014-11-21 15:08:55
[뉴스토마토 유지승기자] 금융감독원이 오는 24일부터 '관계형 금융'을 추진할 예정인 가운데 실효성에 대한 의문 뿐 아니라 은행권에 부담만 가중시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관계형 금융은 신용등급이 낮거나 담보가 없어도 장기적인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은행이 사업전망이나 평판이 좋은 중소기업에 대해 3년 이상 장기대출 및 지분투자 등을 해주도록 한 제도다.
 
금감원은 관계형 금융 도입으로 사업성이 유망한 중소기업은 안정적인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은행은 지분 투자 등으로 새로운 수익기반 구축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융 전문가들도 독일, 일본 등 외국의 사례처럼 기존의 서류상 자료에만 의존하지 않고 기업의 역량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대출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매우 효율적이고 안전한 방법이라는데는 공감했지만 현실적 부분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가뜩이나 은행권에 중소기업 부실 대출 규모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은행의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
 
(사진=뉴스토마토)
 
◇실효성 의문..부실 발생하면 결국 은행 부담
 
오윤해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은행들과 오랜 기간 신뢰 관계를 쌓아 놓은 중소기업들이 있어 관계형 금융의 효과가 날 수 있는 부분"이라면서도 "이로 인해 부실 대출 문제가 발생할 경우 결국 그 책임은 은행이 전적으로 져야 해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조영모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전망 있는 중소기업들을 돕기 위한 취지는 좋지만 금융당국에서 다양한 중소기업 자금 조달 방법 중 가장 손쉽게 움직일 수 있는 은행을 내세운 것이라는 비판적 시각도 있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담보나 제무재표 등 명확한 수치상 기록이 뒷받침되지 않고 대출을 해주려면 은행원의 주관적인 평가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서 "리스크 부담 때문에 은행들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부정적 전망을 내놨다
 
기업의 성장 가능성을 담보로 평가하려면 오랜 기간의 노하우가 쌓여야 되는데 국내 은행들이 불과 몇개월 만에 이러한 기반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지역기반 저축은행 등에 더 적합할 수도
 
따라서 제도의 성격상 대형 은행보다 저축은행등 지역에 기반한 은행들에 더 적합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실제로 관계형금융의 전형으로 인식되고 있는 독일의 경우에도 저축은행 등 지역에 기반한 은행들을 중심으로 제도가 발달돼 있다. 그러나 현재 국내 저축은행들은 부동산 경기침체 등의 여파로 구조조정이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김동환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대형 은행들은 찾아가는 금융 서비스를 하기 어려운 구조이기 때문에 지역 밀착형 금융이 가능한 곳에서 관계형 금융이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기존에 장기간 은행과 교류가 있는 비교적 안정적인 중소기업에만 추가로 혜택이 돌아가 중소기업 대출의 양극화 현상을 초래할 수 있다고 조 연구위원은 지적했다.
 
당장 가시적인 성과가 나기 어려운 환경에서 은행의 실적 경쟁이 가열되면 결국 비우량기업, 창업기업이 아닌 우량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대출이 늘어 당초 제도 도입 방향에서 엇나가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리한 성과 요구..부실 부추길 수도
 
금감원이 관계형 금융 취급실적을 은행 혁신성 평가지표와 영업점 성과평가지표 등에 반영키로 한 것에 대해서도 무리한 대출 영업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부실 여신에 따른 책임소재도 문제다. 금감원은 가이드라인 등 관련 절차를 준수해 취급한 관계형 금융 대출에 대해서는 훗날 부실화돼도 은행이 담당 직원을 면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부실화에 대한 책임은 은행이 져야할 수밖에 없어 현실성이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관계형 금융이 제대로 정착하고 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금융당국의 세심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동환 연구위원은 "제도의 도입이 아니라 관행의 정착이 중요하다"며 금융당국은 관계형금융이 활성화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관계형 금융을 (중소기업)의무대출비율제도와 같은 형태로 만들어 이행을 강제하면 은행의 경영 자율성을 제약하고 부실채권을 양산하는 등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금융당국이 양보다 질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지적인 것.
 
오윤해 연구위원은 "모뉴엘 사태와 같이 큰 문제가 터졌을 때 누가 책임을 질 것인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은행의 부실 심사도 문제지만 금감원의 책임도 완전히 면할 수 없는 만큼 제도에 대한 면밀한 검토와 철저한 사후 관리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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