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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어닝쇼크로 더 아쉬워진 현대차의 한전부지 베팅
2014-10-24 18:30:21 2014-10-24 18:30:21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News1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현대차그룹의 한국전력 본사부지 매입 '오버 베팅'이 두고두고 곱씹히고 있다. 그룹 미래를 위한 과감한 결단으로 포장하기에는 땅값만 10조5500억원에 달하는 데다, 최근의 실적 부진과 악화된 경영환경을 감안하면 아쉬움이 짙게 묻어 나온다.
 
배당 확대 약속이라는 고육지책으로 일부 만회했지만 현대차 주가는 한달 새 12조원이나 빠졌고, 급기야 실적 부진까지 겹치면서 시장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현대차, 기아차가 나란히 3분기 악화된 수익성을 보인 데다, 현대모비스도 주춤하며 그룹 사령탑을 곤혹케 했다.
 
지난 23일 현대차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8%와 28.3% 급감한 영업이익과 순이익 등 초라한 3분기 성적표를 공개한 데 이어 24일에는 기아차가 18.6%와 27.2% 내려앉은 영업이익과 순이익을 공시했다.
 
신차출시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매출액이 꾸준히 늘고는 있지만, 원화강세가 계속되고 임단협에 따른 파업 등의 내부적 요인까지 더해지면서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바닥을 쳤다. 문제는 장사의 실속이 없다는 데 있다.
 
같은 날 현대모비스가 전년 동기 대비 5.5% 증가한 7234억원의 양호한 영업이익을 나타내며 현대차그룹 3인방 중 유일하게 선방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마저 전 분기 대비로는 수익성이 악화된 터라 흐름은 좋지 않다. 
 
투자에 대한 판단을 사후에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지만 이쯤 되면 지난달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한전 부지 입찰에서 현대차가 베팅한 10조원대의 입찰가에 대한 아쉬움이 후회의 수준까지 거론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차도 이를 의식한 듯 실적발표 당일 한전부지의 개발비용 조달계획을 함께 공개했다. 현대차는 한전 부지 개발사업과 관련해 부지매입 외에 추가 개발비용만 최대 5조원이 필요할 것이라면서도 호텔과 쇼핑몰을 분양하거나 임대하는 방식으로 2~3조원을 외부에서 충당 가능하다고 장담했다.
 
이원희 현대차 재경본부 사장은 "현재 건설 계획안을 위해 컨설팅을 받고 있으며, 서울시와도 협의를 이어나가고 있다"면서 "현재 전체 그룹사가 보유하고 있는 현금 및 현금등가물은 25조원이 넘는다. 한전부지 인수에 따른 재무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러나 현대차의 3분기 실적과 향후 전망을 감안하면 한전부지 인수가격은 너무나도 안타까운 규모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입찰 경쟁자였던 삼성전자가 4조7500억원을 써낸 것으로 <뉴스토마토> 취재 결과 확인되면서 결과적으로 현대차는 5조원 이상을 허비하게 됐다. 
 
3분기 현대차의 영업이익이 1조6487억원, 기아차의 영업이익은 5665억원에 그쳤다. 그나마 상대적으로 선전한 현대모비스의 영업이익이 7234억원이다. 한전부지 입찰에 컨소시엄으로 참여한 현대차 3사의 3분기 영업이익을 다 합쳐도 3조원이 채 안 된다.
 
현대차와 기아차, 현대모비스는 한전 부지 매입을 끝내기 위해 내년 1월과 5월, 9월 각각 3조1650억원씩 총 9조4950억원의 잔금을 현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내년 3분기까지 매 분기 벌어들이는 영업이익보다 많은 금액을 땅값으로만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실적 부진에 직격탄이 된 환율은 당분간 크게 개선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오히려 엔화 약세를 바탕으로 한 일본차 업체들이 인센티브를 늘리며 판매가를 인하하는 등 마케팅의 공세만 매서워졌다. 
 
특히 글로벌 경쟁사들이 현대차의 한전 부지 매입자금보다 훨씬 적은 금액으로 본업 확장에 나선 점을 감안하면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인도의 타타는 럭셔리브랜드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23억달러에 인수했고, 중국의 체리는 볼보 인수를 위해 인수대금 18억달러와 캐피탈비용 9억달러를 썼다. 한전부지 매입에 쓴 10조5500억원은 그 4배가 넘는 100억달러에 달하는 수준이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기업분석팀장은 "이탈리아 피아트가 크라이슬러를 인수할 때도, 중국 체리가 볼보를 인수할 때도, 인도 타타가 재규어와 랜드로버를 인수할 때도 이 정도 큰 돈을 쏟아붓지는 않았다"면서 "현대차가 부지 매입에 쓴 10조원이 넘는 천문학적 돈을 본업과 관련된 해외 브랜드 인수·합병(M&A)이나 친환경 기술 연구개발(R&D)에 들였다면 미래에 큰 성장동력이 됐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너무 크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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