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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교육평가원, 학생들에게 사과부터 하세요"
"학생들 눈 보면 포기할 수 없었다"
"평가원, 지인 통해 회유·압박도"
2014-10-21 16:59:33 2014-10-21 16:59:33
[뉴스토마토 박남숙기자] "끝난 게 아니잖아요. 교육과정평가원이나 교육당국이 고의는 아니더라도 부주의 했던 게 맞잖아요. 그럼 학생들에게 사과를 해야죠. 상고 검토가 먼저인가요?" 
 
20일 '수능 오류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한 뒤 서울 흑석동에 만난 박대훈 강사(사진)는 차분하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게 돼" 
 
그는 "일찍 바로 잡을 수 있었던 문제인데,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전 EBS 사회탐구 강사이자, 현 입시학원 강사이기도 한 그는 2014학년도 수능 세계지리 8번 문제의 오류를 첫 공식 제기하고 피해 학생들을 도와 소송을 진행해온 장본인이다. 
 
지난 16일 서울고법은 2014학년도 수능 응시생 김 모씨 등 4명이 "8번 문제가 오류이니 세계지리 과목의 등급 결정을 취소하라"며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법원에서 수능 문제가 오류가 있다고 판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승소 판결이 나고 아이들은 평균 이하의 학생이 아니라는 명예 회복과 구제 가능성에 잠시 기쁘기도 했어요. 하지만 불과 몇 시간 뒤에 평가원이 상고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더라고요. 평가원은 소송, 항소, 상고로 세 번이나 아이들 마음을 다치게 할 셈이랍니까?"
 
박 강사는 "소송에 참여한 학생들은 손해배상이 목적이 아니다"라며 "이미 학생들은 평가원이 평균 이하의 학생으로 몰고 간 것에 대해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12월 201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세계지리 8번 문항을 출제 오류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질문이 다소 애매하더라도 평균 수준의 수험생이 풀 수 없을 정도는 아니며 문제 자체가 틀렸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피해학생들 재수에 하향지원
 
박 강사는 "팩트(fact)의 차이라 1심에서 당연히 승소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패소한 후, 소송에 참여한 학생 59명 중 22명만이 항소했다"며 "그들 중에는 이미 대학에 하향 지원해 들어갔거나 재수하는 학생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소송 진행 중 지쳐서 포기한 37명 중 몇몇이 이번 항소심 승소로 자기도 구제될 수 있는지 문의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안타까워했다. 
 
그 역시 1심에서 패소한 뒤 단념하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자신만을 믿고 따라와 준 학생들의 눈을 보면 그럴 수 없었다. 
 
"입시강사인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주고 매달리는 학생들에게 창피하고 오기도 생겨서 계속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는 그러면서 "지난해 평가원에서 출제 문제에 오류 없음으로 발표하고 지인을 통해 평가원의 회유 내지는 압박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박 강사는 세계지리 영역의 출제 오류는 지난해 수능이 처음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2년 전 2012년 9월 평가원에서 모의평가에서 세계지리 9번에서도 오류가 있었다"며 "'미국의 흑인인구 비중이 감소한다'가 맞은 걸로 됐는데, 사실은 '근소한 차이로 늘어나고 있다'는 게 맞다"고 말했다. 미국 인구조사국의 추정치와 실제 조사치의 혼동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박 강사는 "그때도 평가원에 이의심사를 제기했는데 반박 데이터 자료도 제시하지 않고 묵살했고 그 사건은 묻혀 지나갔다"고 주장했다.
 
◇비상대책 EBS 연계 재고해야 
 
그는 최근 발생하고 있는 수능 출제 오류의 원인으로 정부의 EBS 연계 정책을 꼽았다.
 
EBS 교재만 믿고 검증을 소홀히 해 허술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분명 사교육 경감대책으로 나온 EBS 연계 정책이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비상대책격인 이 정책이 한 두 해는 가능하지만 현재까지 5년째"라며 "지금은 새로운 대책을 재고해야할 때"라고 지적했다. 
 
박 강사는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구체적인 손해배상 청구는 지금까지 소송을 도와준 변호사와 상의할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수능오류로 피해 입은 학생들 중 단 몇 명이라도 구제될 수 있으면 좋겠고 나도 생업에 얼른 복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대훈 전 EBS 강사(사진 제공=박대훈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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