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공연+)사랑도 고독도 포기 못하는, 모순덩어리 인간
2014-09-30 08:04:11 2014-09-30 08:04:11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연극 <반신>
 
언제부터인가 국내에서 일본 연극을 볼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1994년부터 한중일 3국 간 연극 교류 차원에서 매해 열리고 있는 베세토연극제, 2003년부터 격년으로 한일연극교류협의회를 통해 진행해온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 등이 초기 산파 역할을 했지요. 국내에서의 일본 연극 상연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하나의 분명한 흐름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일본 연극 특유의 장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지나치게 꽉 짜여 있다 할 만큼) 탄탄한 극 구조, 형식미를 갖춘 연출력이 한일 간의 두터운 문화의 벽을 허물 수 있게 해준 셈이지요. 스즈키 타다시, 히라타 오리자 등은 이제 연극 좀 본다 하는 한국 관객에게는 이름만으로도 믿음을 주는 일본의 스타 연출가, 극작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도쿄예술극장의 예술감독인 노다 히데키도 그런 극작가 겸 연출가 중 하나입니다. 2005년 <빨간 도깨비> 내한 공연으로 단번에 국내 열성 팬들을 양산해낸 노다는 지난해 <더 비(The Bee)>로 내한해 매진 행렬을 이끌어내며 다시 한 번 존재감을 과시한 바 있지요. 올해는 연극 <반신(Half Gods)>으로 국내 관객과 만나고 있습니다. 특히 모처럼 길게 공연한다는 점이 반갑네요. 지난해 <더 비>의 경우 티켓이 일찍 동 나는 바람에 못 본 분들이 많았거든요. 명동예술극장 공연 뒤 도쿄예술극장에서 8회 공연이 예정되어 있기도 합니다. <빨간 도깨비>에 이어 다시 한 번 노다 히데키 무대의 주역 중 하나를 맡게 된 배우 오용을 비롯해 서주희, 주인영 등 연극계의 스타 배우들이 한일 양국을 오가는 이 동행에 함께 합니다.
 
◇샴쌍둥이 통해 보는 인간존재의 불완전함
 
<반신>의 초연은 노다 히데키가 극단 유메노유민샤(꿈꾸는 유목민이라는 뜻)에 몸 담고 있던 시절인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현재 노다가 몸 담고 있는 제작사 노다 맵에서도 1999년에 공연했지요. 원작은 일본의 만화가 하기오 모토의 동명 단편만화입니다. 이 작품은 샴쌍둥이의 이야기를 통해 생명의 존엄성과 더불어 인간 존재의 불완전성과 고독을 탐색합니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못생겼지만 뛰어난 머리를 지닌 언니 수라와 아름답지만 지능이 떨어지는 동생 마리아가 주인공인데요. 이 둘은 몸이 붙은 채 태어난 샴쌍둥입니다. 수라는 혼자서는 아무 것도 못하는 마리아를 보살피지만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랑 받는 것은 언제나 마리아입니다. 수라에게 온갖 불평불만, 혼자 있고 싶다는 열망이 쌓여가던 중 어느덧 이들은 열 살이 되고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옵니다. 한쪽이라도 살아남기 위해 분리수술을 감행해야 하는 때가 도래하는 것이지요.
 
(사진제공=명동예술극장)
 
극은 이처럼 갈등의 극한 상황 속으로 관객을 끌고 갑니다. 수라로 대변되는 고독과 마리아로 대변되는 사랑, 이 중 어느 것을 택하느냐 그것이 문제인 상황이랄까요. 노다 히데키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은 본 작품의 의미층을 더욱 두텁게 합니다. 그 자체로도 충분히 심란한 원작에다 노다는 이들 샴쌍둥이를 노리는 요물들을 더해 놓았습니다. 요물들은 자신들이 사는 벤젠나라 별자리 중 한 꼭짓점을 차지해야 할 한 명이 수라인데 인간 세상에 잘못 떨어졌다고 주장합니다. 무대 위에는 DNA의 이중나선모형을 형상화한 거대한 구조물이 놓여 있는데, 그 중앙에 수라와 마리아의 집이 놓여 있습니다. 온갖 요물들은 DNA 이중나선의 계단을 타고 호시탐탐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하며 출몰합니다.
 
◇이중구조 속에 드러나는 인간존재의 모순
 
줄거리보다 재미있는 것은 사실 이 연극 전체를 꿰뚫고 있는 이중구조입니다. 아까 이 공연의 무대가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표방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거대한 무대 장치 외에도 공연에는 짝을 이루는 대칭구조가 대거 등장합니다.
 
먼저 쉽게는 샴쌍둥이를 들 수 있겠네요. 수라와 마리아는 서로 붙어 있는 옷을 입고 있습니다. 신축성 강한 소재로 만든 연결된 옷을 입고 있는데 이 때문에 우리 나라 배우들의 특징인 역동적 움직임이 훼손되지 않은 채 고스란히 무대에 옮겨집니다. 다른 인물들도 제각각 쌍을 이루고 있습니다. 늘상 붙어 다니는 엄마와 아빠가 있겠고요. 또 샴쌍둥이의 비밀을 풀 열쇠를 쥐고 있는 저혈압의 늙은 수학자와 샴쌍둥이를 분리해내려는 고혈압의 의사도 등장하는데요. 이들은 쌍둥이 형제라는 설정 아래 한 배우가 연기합니다. 또 스핑크스, 가브리엘, 머메이드, 유니콘, 하피, 게리온 등의 이름이 붙은 벤젠나라 요물들은 때때로 변신해 인간세계에 끼어들며 현실과 비현실을 오갑니다. 수라와 마리아의 가정교사는 늙은 수학자의 손자인데,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저혈압이라는 설정 아래 픽픽 쓰러지기도 합니다. 항상 쌍으로 등장하는 고모들도 빼놓을 수 없겠네요.
 
(사진제공=명동예술극장)
 
아, 그리고 중요한 설정이 하나 더 있습니다. 공연은 초반부터 샴쌍둥이 이야기로 시작되지 않는데요. 처음에는 관객으로 하여금 <반신> 공연을 준비하는 공연팀의 연습실을 엿보게 하다가 이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끔 유도합니다. 객석 불이 환히 켜져 있는 가운데 연출가가 각각의 배우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대본 연습을 하다가 순식간에 공연으로 들어가는 식인데요. 이처럼 노다 히데키는 작품 전체의 틀마저 극중극이라는 이중구조로 포장하며 일상과 판타지를 마구 뒤섞어 놓았습니다. 샴쌍둥이의 비극적 이야기 속 심각해질 때마다 우리 가요 ‘혼자가 아닌 나’, ‘백만송이 장미’, 드라마 <아내의 유혹> OST 등을 배경음악으로 깔아놓은 것도 관객으로 하여금 극속에 완전히 몰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장치인듯 보입니다.
 
설정이 엄청나게 복잡하지요? 이 정신 없는 상황을 노다 히데키는 굉장히 빠른 흐름과 자유로운 무대운용을 통해 펼쳐 보이는데요.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이해가 안 가다가도 가만히 보다 보면 어떤 패턴이랄까, 이 연극의 무늬랄까 하는 것들이 마치 매직아이처럼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수학자가 샴쌍둥이의 비밀이라며 읊는 기묘한 수학식, 1/2+1/2=2/4 같은 경우도 뜬금 없이 무대 위 인물들이 추는 탱고 춤을 바라보다보면 어느 사이 이해되기 시작한다니까요. 노다 히데키 특유의 언어유희도 극을 이해하는 데 실마리가 되어주는데요. ‘먼 데’, ‘뭔데?’라는 비슷한 말을 반복하는 배우들을 보고 있노라면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수수께끼가 이 세계의 머나먼 끄트머리에 담겨 있다’는 말이 어렴풋이나마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더 자세히 풀어 설명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면 공연을 보실 분들의 재미를 뺏는 격이 되는데다가 이 공연 <반신>의 의도에 반하는 것 같아 여기서 그만하기로 하죠.
 
그래서, 이 공연은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요? 극중 언급되는 늙은 수학자가 마리아와 수라 문제 해결을 위해 풀어내려고 하는 도중 치매에 걸려버렸다는 ‘육각형 욕조를 통해 풀어내는 나선 방정식’의 답은 무엇이었을까요? 요물들이 사는 육각형의 벤젠나라에 비어 있던 꼭짓점 하나는 결국 누가 채웠을까요? 고독의 화신 수라, 타인으로부터의 사랑을 상징하는 마리아 중 누가 인간세상에 남아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두고 노다 히데키는 <반신>이라는 공연제목과 어울리는 선택을 합니다. 살짝만 언급드리면, 아마도 늙은 수학자가 유레카를 외치는 아르키메데스처럼 던진 말, 즉 '욕조 물이 북반구와 남반구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아간다'는 말이 힌트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과 반을 더해도 결국 절반이라는 지혜를 담은 수학식, 1/2+1/2=2/4도 잊지 마시고 계속 기억해주시길. 무대 말미에 마침내 마주하게 되는 수라와 마리아의 한 몸 속 현현은 고독과 사랑 중 그 어떤 것도 포기하지 못하는 불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 모순 덩어리 인간의 모습을 빗대 노다 히데키는 이 공연의 제목을 반신(Half Gods)이라고 붙이지 않았을까요.
 
- 공연명 : <반신(Half Gods)>
- 시간 : 2014년 9월19일~10월5일(매주 화요일 공연 없음)
- 장소 : 명동예술극장
- 원작·극본 : 하기오 모토
- 극본·연출 : 노다 히데키
- 번역 : 이시카와 쥬리, 성기웅
- 제작 : 명동예술극장
- 공동제작 : 도쿄예술극장, 일본국제교류기금
- 출연 : 주인영·전성민·오용·이형훈·서주희·박윤희·김정호·이수미·이주영·양동탁·김병철·정홍섭
- 연주 : 한정림·권나형·진유리·황정은
- 티켓가격 : R석 5만원, S석 3만5000원, A석 2만원
- 문의 : 02-1644-2003
 
 
 
이 뉴스는 2014년 09월 26일 ( 17:8:35 ) 토마토프라임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