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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은 왜 미술품을 좋아할까
2014-09-18 09:51:52 2014-09-18 09:56:21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가 16일 밤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검찰청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구속영장이 발부돼 구치소로 향하고 있다.ⓒNews1
 
[뉴스토마토 이상원기자] 재벌가의 화상(畵商)이 또 법정에 서게 됐다. 동양그룹이 빼돌린 미술품을 대신 팔아준 혐의로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가 지난 16일 구속되면서 재벌과 미술품 간의 상관관계가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홍 대표는 검찰의 재벌비리 수사 때마다 어김 없이 등장하는 인물이다. 재벌들의 입장에선 이제는 얼굴을 마주치지 말았으면 하는 화상(畵像)에 가깝다.
 
홍 대표가 재벌가의 '그림팔이'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2008년 '삼성 비자금 의혹'과 관련한 특검 조사를 받으면서다. 당시 90억원을 호가하는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행복한 눈물'을 낙찰받아 삼성에 넘긴 통로로 지목되면서 재벌가의 미술품 비밀거래 사실이 확인됐다.
 
홍 대표는 2011년 6월에도 그림값을 달라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부인 홍라희 리움미술관장과 삼성문화재단을 상대로 50억원의 물품대금 청구소송을 내면서 또 한 번 주목받았다.
 
같은 해 오리온 그룹이 서울 청담동 고급빌라를 짓는 과정에서 조성한 비자금 40억원을 입금받아 미술품을 거래한 혐의로 구속기소됐으며, 법원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기도 했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의 그림로비 사건에 연루된 고(故) 최욱경 화백의 작품 '학동마을' 역시 홍 대표가 한 전 청장에게 판매한 것으로 확인됐고, 저축은행 비리사건 때에도,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의 증여세 탈루사건 때에도 어김없이 연루돼 검찰조사를 받았다.
 
최근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탈세·횡령 사건의 수사과정에서도 법인세 탈루 혐의로 불구속기소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그야말로 화려한 이력이다.
 
홍 대표 본인의 야욕이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그 화려한 이력 뒤에 숨은 재벌가의 미술품에 대한 집착이 너무 컸다.
 
미술품은 그 값어치가 확정돼 있지 않고 변화할뿐만 아니라 과세당국에 포착되지도 않는 물품 중 하나다. 자연스럽게 재벌가의 비자금 축적 용도로 사용됐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만 보더라도 당시 특검의 삼성 에버랜드 창고 압수수색 과정에서 고가의 미술품 수만점이 나왔다. 특검팀이 "그림이 워낙 많아서 어떤 미술품이 있는지 확인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할 정도였다.
 
삼성 측은 창고의 용도에 대해 삼성화재 시각장애인 안내견학교의 축사라고 했다가 압수수색 이후에는 리움미술관과 호암미술관에서 전시하고 남은 그림을 보관한 곳이라고 해명, 다시 선대 회장인 이병철 회장 때부터 수집해 온 삼성문화재단의 소장품을 보관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미술품들의 정체에 대해 속 시원한 답을 내놓지 못한 것이다.
 
최근 홍 대표가 구속된 동양그룹의 미술품 문제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부인인 이혜경 부회장이 가압류 직전에 고가의 미술품을 급매로 현금화한 사건이다. 언제든지 현금화할 수 있는 고가의 미술품을 대기업 총수일가가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재확인된 셈이다.
 
CJ그룹의 경우 홍 대표에게서만 2001년부터 2008년까지 해외 유명 미술작품 138점을 1422억원에 사들였다. 전시할 목적도 아닌 미술품을 대거 사들여 비자금으로 조성한 것.
 
이런 문제 때문에 정부도 미술품 거래를 투명하게 하기 위한 미술품 양도차익 과세방안을 끊임없이 추진했지만 업계 반발로 차일피일 미뤄져왔다. 최근 들어 시행법안이 국회를 통과해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지만, 그마저도 '작고한 작가'의 '6000만원 이상' 초고가품만 과세대상이다.
 
재벌의 그림로비 및 미술품 세탁을 주제로 삼은 이은 작가의 2011년작 소설 '박회장의 그림창고' 결말부는 재벌들이 사들인 미술품에 대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건 예술이 아니라 탐욕의 물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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