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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상호작용을 멈춘 기계사회
2014-09-05 15:52:57 2014-09-05 15:57:18
디지털은 0과 1의 세계다. 모 아니면 도, 흰거 아니면 검은거, 이쪽 아니면 저쪽 등 '여지'라는 게 없이 결과가 딱 부러지는 세계다.
 
사람은 다르다. 0과 1 사이에 끝없이 많은 숫자가 들어 있는 것처럼 사람이 느끼는 감정도 헤아릴수 없고 사람마다 또 그 감정의 깊이와 무게가 천차만별이다.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세계다.
 
기계는 사람의 직접 조작에 의해서, 또는 사전에 입력된 프로그램에 따라서 움직이며 서로간의 상호작용이란 게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을 하고 그 작용에 의해서 서로가 바뀌어간다. 사람들이 서로 나누는 건 감정과 그 상징이다.
 
사람이 기계같이 행동할 때가 있다. 일상의 별 것 아닌 행동들이 때로는 재앙이 될 때가 있다.
 
'인재'라고 불리우는 대부분의 재난은 사람이 사람의 감정만큼이나 다양한 여러 변수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여태까지 큰 문제 없었으니까, 예전부터 그냥 해오던대로, 이렇게 시간의 흐름이 입력한 0과 1의 개념에 따라 기계적으로 문제를 대할 때 잉태된다.
 
4월16일의 사고는 물론이고 며칠전 특수부대에서 난 사고도 이런 식이었다.
 
사망한 군인들은 죽기 직전까지 5분 이상 고통을 호소하며 훈련중단을 호소했지만 교관들은 훈련이 실전적으로 잘되고 있다고 생각해 어떤 구호조치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군에 새로 도입된 첫 훈련이었고 훈련받는 사람들도 입대한지 오래되지 않아 경험이 부족했고 해외에서도 사망사고가 났던 적이 있지만, 이런 일체의 변수들은 고려되지 않았다.
 
기계는 아무리 주인이라도 현관문의 숫자키를 제대로 입력하지 않으면 문을 열지 않는다.
 
사망한 특수부대원은 사람과 훈련을 한게 아니라 기계와 훈련을 한 것과 다름없었다. 이번의 비극도 '사람'을 다루는 일을 '기계'처럼 한 결과다.
 
냉철함과 차가움이 필요할 때도 있다. 제갈량이 후계자로까지 생각하던 마속을 벨 때나 이순신이 결전을 앞두고 도망병을 참했을 때가 그렇다.
 
그들의 행동은 단호하게 원칙을 지킨 것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냉혈한, 살인마라고 비난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지난 4월16일 이후 우리 사회엔 곧 죽을 것 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
 
높은 분들은 사고 초반에는 이들을 만나주고 다독여주고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몇달이 흐른 지금은 이들과의 상호작용을 일체 거부하고 있다.
 
또 한쪽에서는 이들에게 '이제 그만하라'고 하는 주장도 나온다. 경제가 어려워서 안되겠다는 게 이유다.
 
그렇지만 그 '경제'라는 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 '경제'가 전혀 아니다. 이 상황이 불편한 사람들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내세우는 상징조작일 뿐이다.
 
그만하기만 하면 경제가 나아질 것처럼 몰아가지만 실제론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그 근거다.
 
고통받은 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제갈량과 이순신의 칼이 아니다. 주인을 몰라보는 숫자키도 아니고 실제상황을 훈련으로 생각한 교관은 더욱 아니다.
 
이들에게 지금 무엇이 필요한가. 그 답은 얼마전 우리나라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명쾌하게 알려준 바 있다.
 
교황의 방한으로 많은 감동과 깨달음을 얻었을 당신, 경제를 살려야 하기 때문에 이제 그만하자는 사람들에게 당신은 그런 감동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그 사람들이 헌신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이호석 IT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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