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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어주는기자)장하준의 경제학강의
장하준 지음 | 김희정 옮김
2014-08-31 10:12:30 2014-08-31 10:16:39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책을 덮고 나면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는 점이다. 고등학교 졸업 정도의 수준이면 쉽게 읽어나갈 수 있는 내용들을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참 많이도 속고 살았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되고, 이제 더 이상 바보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각오가 생긴다. 정부 관료들과 주류 경제학자들이 부자감세와 복지축소, 자유무역협정 확대의 정당성 등을 강변할 때마다 뭔가 아닌 거 같으면서도 마땅히 반박할 논리가 없어 주눅이 들었던 게 억울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이게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일관되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경제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욕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어서 화학이나 물리학 같은 과학이 될 수 없음에도 가치 판단을 배제한 과학적 분석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며 대단히 전문적인 척 하는 주류 경제학자들과 관료들, 기업 경영자들. 이들이 이렇게 대다수 시민을 경제(학)에서 멀어지게 해놓고 얻고자 하는 것은 자명하다. 바로 그들만의 더 많은 ‘이득’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재앙이다.
 
저자는 “이제 우리 모두 능동적인 경제 시민이 되어 경제의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그러면서 “경제학은 많은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친해지기 쉬운 분야”라며 “자전거 타기를 배우고, 태블릿 컴퓨터의 사용법을 습득하는 정도의 노력을 기울이면 시간이 갈수록 쉬워진다”고 말한다. 실제 이 책을 차분히 읽어낸다면 저자의 이런 주장이 터무니 없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문성 : 책 제목은 '강의'지만, 특정 경제이론을 어려운 논리를 동원해 설명하는 내용은 아니다. 당연히 다른 경제원론책들에 등장하는 복잡한 수식이나 그래프 같은 것들도 없다. 하지만 그동안 주류 경제학이 소홀히 다뤘던 자본주의 역사나, 각종 경제학 이론들의 실체를 다양한 사례와 함께 매우 실증적으로 그려낸다.
 
▶대중성 :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우리 모두의 삶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제와 경제현상을 규명하고, 그 의미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대중적이지 않을 수 없다. 책 내용도 평이한 일상의 언어로 다양한 사례들과 실제 숫자들을 보여주는 식이어서,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참신성 :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경제학 입문서라고 볼 수 있다. 경제학을 좀 알고, 그것도 주류경제학만 알아온 독자들이라면 눈앞이 확 트이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스스로 경제학에 문외한이라고 생각한다면, 경제에 관한 독특하면서도 강력한 ‘관점’을 하나 가지게 될 것이다.
  
 
■요약
 
프롤로그 : 귀찮게 뭘…?(경제학은 왜 알아야 하는가?)
 
왜 사람들은 경제학에 관심이 없는 걸까? 지난 몇십년 사이에 물리학이나 화학처럼 경제학도 ‘과학’이라고 믿도록 우리가 유도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제학이 물리학이나 화학 같은 의미의 과학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화학에서 다루는 분자나 물리에서 다루는 물체와는 달리 인간은 자유 의지를 가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경제문제에 정답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더 이상 이 문제를 전문가들 손에만 맡겨 둘 수 없다. 책임 있는 시민은 모두 어느 정도 경제학적 지식을 갖춰야 된다.
 
1장 인생, 우주, 그리고 모든 것(경제학이란 무엇인가?)
 
이 시대에 가장 널리 알려진 몇몇 경제학 책들에 따르면 경제학은 인생,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관한 궁극적 질문을 다루는 학문이다. 하지만 경제학자들이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상태에서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졌고, 그들은 지금까지 제대로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자기 분야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마당에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과대망상이다.
 
이런 식의 과장은 현재 경제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소위 신고전학파가 경제학이 합리적 선택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규정하는 태도에서 기인한 것이다. 방법론이나 이론적 접근법이 아닌 다루는 대상으로 경제학의 영역을 규정하고 성격을 정의해야 한다. 돈, 직업, 기술, 국제무역, 세금 등을 비롯해 생산과 분배, 소비와 관계되는 연구를 해야 한다.
 
2장 핀에서 핀 넘버까지(1776년의 자본주의와 2014년의 자본주의)
 
<국부론>이 출간된 1776년의 애덤 스미스 시대의 자본주의와 현대의 자본주의는 닮은 점이 거의없다. 생산 수단의 개인 소유, 이윤 추구, 임금 노동, 시장 교환 등 자본주의의 핵심적 성격이 현실에 적용되는 형태가 엄청나게 달라졌다. 우선 현대의 공장은 대부분 ‘비자연인’, 즉 기업이 소유하고 운영한다. 기업의 구조 자체도 많이 달라졌다. 현대의 기업들은 수만 명, 심지어 전 세계에 걸쳐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을 거느린 거대한 조직인 경우가 많다. 노동자들도 다르고, 시장도 달라졌으며, 돈과 금융 시스템 또한 달라졌다.
 
자본주의는 지난 2세기 반 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어떤 경제 이론이 아무리 위대해도 그것은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만 유효하다. 따라서 경제 이론을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그 이론을 사용해서 분석하려는 특정 시장, 산업, 국가의 성격을 규정하는 기술적, 제도적 요인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3장 우리는 어떻게 여기에 도달했는가?(자본주의의 간단한 역사)
 
(1820~1870년 : 산업혁명) 자본주의는 1820년경부터 비상을 시작했다. 이후 반세기를 산업혁명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기 1인당 소득이 눈부시게 증가했지만,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오히려 떨어지는 현상이 벌어졌다. 19세기에 서유럽 국가들과 서유럽 파생 사회에서 자본주의가 발달한 것은 자유 무역과 자유 시장의 확산 덕분이라고 보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자본주의 발달 초창기에는 정부가 선두에 서서 경제 발달의 지휘자 역할을 했다. 자유 무역은 자유롭지 않은 방법으로 확산됐다.
 
(1870~1913년 : 결정적인 하이눈 시기) 자본주의는 1870년 즈음에 성장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기술 혁신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나와 중화학 공업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대량 생산 시스템의 발명으로 많은 산업 분야에서 생산 과정을 조직하는 방법도 혁명적인 변화를 거쳤다. 기업들의 규모가 커지면서 은행들도 커졌다. 중앙은행이 설립되어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하게 됐다. 자유주의적 황금기라고 일컫는 이 시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자유주의적이 아니었다. 핵심 자본주의 국가들에서는 국내외 정책을 막론하고 자유주의 경향이 줄어들고 있었다. 정작 자유주의는 약소국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그것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식민주의와 불평등 조약 등을 통해 강제된 것이었다.
 
(1914~1945년 : 파란의 시기) 1914년 1차 대전은 이전 절정기의 세계화가 시장의 힘이 아니라 제국주의의 힘으로 진행된 탓에 주요 자본 국가들 사이의 경쟁이 언제라도 무력을 동반한 갈등이 되어 터질 수 있음을 보여줬다. 또 러시아 혁명과 사회주의의 탄생으로 자본주의의 초석이 되는 모든 요소를 뒤엎은 경제 시스템이 모습을 드러냈다. 1929년 대공황은 자본주의 역사에 지워지지 않을 흔적을 남겼다. 자유방임주의 원칙에 대한 거부감이 널리 퍼지고, 자본주의를 개혁하려는 진지한 시도가 고개를 들었다.
 
(1945~1973년 : 자본주의의 황금기)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제1차 오일 쇼크가 오기 전까지 자본주의는 성장과 고용, 안전 모든 면에서 좋은 성과를 냈다. 경제 정책과 제도를 개혁해 ‘혼합 경제 체제’를 탄생시키고 운용했기 때문이다. 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 지출을 늘리고 중앙은행의 통화 공급도 늘리는 반면, 경제가 상향 곡선을 그리는 동안에는 지출과 통화 공급을 줄였다. 이 시기 개발도상국도 마침내 경제 발전의 대열에 끼어들었다. 이 시기는 자본주의의 잠재력이 정부 정책에 의해 제대로 규제되고 자극될 때 극대화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1973~1979년 : 과도기) 1971년 미국이 달러-금의 태환을 중지하면서 황금기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 후 1~2년 사이 다른 나라들도 자국의 화폐를 달러화에 고정 환율로 연동하던 관행을 폐기 하면서 세계 경제는 불안정해졌다. 그리고 1973년 1차 오일 쇼크가 닥치면서 황금기는 종말을 고했다. 이후 1979년 2차 오일쇼크는 높은 물가 상승률과 함께 영국, 미국과 같은 주요 자본주의 국가에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정부들이 들어서는 결과를 낳음으로써 황금기에 진정으로 종지부를 찍었다.
 
(1980년~현재 : 신자유주의의 흥망) 1979년 영국 총리로 선출된 마거릿 대처는 혼합 경제 시스템을 과격하게 허물기 시작했다. 대처 정부의 가장 상징적인 정책은 민영화였다. 또 물가를 잡기 위해 이자율을 올려 경기를 위축시키고 이를 통해 수요를 줄이는 정책을 썼다. 로널드 레이건은 1981년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대처보다 한술 더 뜨는 정책들을 추진했다. 고소득자들에 대한 세율을 공격적으로 깎으면서, 부자들이 더 많은 부를 축적하면 더 많이 소비하고,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이라는 논리를 폈다. ‘낙수 효과 이론’이다. 그러면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보조금을 삭감하고 최소 임금을 동결했다. 이 논리는 공급 경제학이라고 불리며 미국 경제 정책의 기본 신념으로 자리잡았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미국이 유지한 고이자율 정책(볼커 쇼크)은 제3세계 외채 위기를 불러왔다. 1982년 멕시코를 필두로 많은 개발도상국들이 외채 상환을 이행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1989년에는 소련이 와해되기 시작했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990년대 중반에는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로 퍼졌다. 1995년 GATT의 우르과이 라운드가 끝나면서 WTO가 탄생했다. 세계화를 외치는 사람들은 각국이 이 새로운 현실을 받아들여 국제 무역과 투자에 자국을 완전히 개방하고, 국내 경제 또한 자유화하는 것 이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995년 멕시코 금융 위기에 이어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가 터지면서 큰 충격이 들이닥쳤다. 비현실적인 기대감을 타고 현실적인 수준을 훨씬 넘도록 가격이 오른 자산 거품이 붕괴한 탓이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 상당히 급진적인 금융 시장 개방을 감행한 결과였다.
 
그리고 2008년 여름, 베어 스턴스와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진짜 위기가 닥쳐 왔다. 금융 위기에 대한 주요 선진국들의 첫 반응은 대공황 직후와 매우 달랐다. 그들이 취한 거시 경제 정책은 막대한 예산 적자를 낸다는 의미에서 케인스식이었다. 각국의 중앙은행들은 역사상 가장 낮은 수준까지 이자율을 낮췄고, 더 이상 낮추지 못할 수준까지 이르자 양적 완화라고 알려진 조처를 취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자유 시장주의가 맹렬한 기세로 귀환했다. 2010년 5월이 그 회귀점이었다. 영국에서 보수당이 이끄는 연립 정부가 선출되고, 그리스에 대한 유로존의 구제 금융 프로그램이 시작되면서 균형 재정 원칙이 다시 돌아왔다. 2011년 미국에서는 공화당이 오바마 정부를 압박해 막대한 지출 삭감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도록 했고, 주요 유럽 국가들은 2012년 유럽 재정 협정을 맺어서 반적자 편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함으로써 자유 시장주의 쪽으로 상황을 더 몰아갔다.
 
4장 백화제방(경제학을 하는 방법)
 
고전주의 경제학파는 18세기 말에 시작되어 19세기 말까지 경제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경제 주체들이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사회적으로 이익이 되는 국부의 극대화라는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은 경제학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비유가 되었다.
 
신고전주의 학파는 각 개인은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잘 알고 행동하므로, 시장이 오작동할 때를 제외하고는 가만 놔두는 것이 좋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고전주의 학파가 뚜렷이 다른 계급들이 모여 경제를 구성한다고 생각한 데 반해 경제가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개인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또 경제학의 초점을 생산에서 소비와 교환으로 옮겼다.
 
마르크스학파는 자본주의는 경제 발달의 막강한 동력이지만, 사유 재산이 더 이상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면서 저절로 무너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마르크스학파가 예견한 것보다 훨씬 자기 수정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판명됐다. 이렇게 치명적 흠이 있으나 기업, 노동, 기술의 발전에 관한한 여전히 유용한 면이 있다.
 
개발주의 전통은 ‘후진 경제에서는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겨 놓으면 개발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인류 역사상 성공을 거둔 모든 경제 발전은 신고전주의 경제학의 협소한 합리주의나 계급 없는 사회를 꿈꾸는 마르크스의 비전이 아니라, 바로 이 개발주의 전통의 힘을 빌려서 이루어졌다. 오스트리아학파는 ‘모든 것을 충분히 아는 사람은 없으므로, 아무한테도 간섭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 보다 자유 시장을 훨씬 더 열렬히 지지한다.
 
(신)슘페터 학파의 주장은 ‘자본주의는 경제 발달의 막강한 동력이지만, 기업이 대형화하고 관료주의화하면서 쇠락하게 되어 있다’는 문장으로 요약된다. 기업 경영이 관료화되면서 자본주의가 역동성을 잃을 것이라는 얘긴데, 기업가 정신이 기업가뿐 아니라 기업 안과 밖의 수많은 주체가 참여하는 집단적 노력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케인스학파의 주장은 ‘개인에 이로운 것이 전체 경제에는 이롭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19세기 말 이후 예금자와 투자자가 구조적으로 분리되어 저축과 투자가 동량이 되는 것이 힘들어지고, 그에 따라 완전 고용을 달성하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사실을 인식한 데서 출발했고, 완전 고용을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출해 수요 수준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도학파는 ‘개인이 사회적 규칙을 바꿀 수 있다 해도 결국 개인은 사회의 산물이다’고 주장한다. 이 학파가 가장 빛을 발한 것은 뉴딜인데, 많은 제도학파 경제학자들이 뉴딜 정책의 설계와 실행에 참여했다. 행동주의 학파는 ‘인간은 충분히 똑똑하지 않기 때문에 규칙을 통해 의도적으로 선택의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시장이 경제의 작은 부분일 뿐이라고 본다. 경제활동의 대부분이 기업이나 정부의 내부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현대 자본주의 경제를 조직 경제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주장했다.
 
5장 드라마티스 페르소나이(경제의 등장인물)
 
경제에 관한 개인주의적 관점은 우리는 모두 개인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만을 하지만 그 결과 사회의 복지가 극대화된다고 본다. 하지만 일부 경제학자들은 개인주의적 관점이 적어도 19세말 말 이후로는 현실과 괴리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그때부터는 가장 중요한 경제 행위의 주체가 개인이 아니라 기업, 정부, 노동조합, 그리고 국제기구 등 복잡한 내부 의사 결정구조를 가진 큰 조직들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결정은 개인의 결정과는 다른 과정을 거친다. 독일의 폭스바겐의 의사 결정은 주주, 전문 경영진, 노동자, 그리고 국민이 협상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정부는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이다. 정부의 의사 결정 과정은 소유 구조가 가장 복잡한 거대 기업의 의사 결정 과정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다. 어떤 국제기구들은 규칙을 정할 수 있기 때문에 힘이 있다.
 
6장 “몇이길 원하십니까?”(생산량, 소득, 그리고 행복)
 
경제학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생산량 측정법은 국내총생산, 즉 GDP이다. 국내총생산에서 감가상각을 뺀 것을 국내순생산, 즉 NDP라고 부른다. 국내순생산은 국내총생산보다 한 나라의 경제가 생산한 결과를 더 정확하게 알려준다. 한 나라의 국경 안에서 나오는 생산량이 아니라, 한 나라의 국민과 그 나라에 등록된 기업이 생산한 생산량 전체는 국민총생산, 즉 GNP라고 한다. GDP는 생산량의 합이지만, 소득의 합으로도 볼 수 있다. 임금, 이윤, 대출 이자, 간접세 등의 합을 국내총소득, 즉 GDI라고 부른다. 국민총소득, 즉 GNI는 그 나라 시민권자의 소득을 모두 합한 결과이다.
 
경제학에서 어떤 개념을 정의하고 측정하는 것은 물리학이나 화학에서 하는 정의와 측정 작업처럼 객관적일 수 없다. 생산량이나 소득처럼 겉보기에 가장 간단할 것 같은 경제학적 개념도 산출하는 데 각종 어려움이 따른다. 거기에 수많은 가치 판단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7장 세상 모든 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생산의 세계)
 
경제의 생산 능력이 증가하는 것에 바탕을 둔 경제 성장 과정이 경제발전이다. 생산 활동을 조직화하는 능력, 더 중요하게는 그것을 탈바꿈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경제 발전의 핵심이다. 경제발전의 근본은 기술 개발이다. 산업 혁명 초기에는 신기술을 개발하는 주체가 주로 비전을 가진 개인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신기술 개발은 기업 안팎에서 진행되는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노력의 결과이다. 생산 능력의 증가는 많은 부분이 조직 기술, 즉 경영 기술의 향상 덕분에 이뤄졌다. 기업 수준 이상의 생산 능력도 중요하다. 한 경제 체제의 생산 능력에는 정부, 대학, 연구 기관 등 기업 이외의 다른 주체들이 가진 능력도 포함된다. 현재 경제학의 주류인 신고전주의 경제학파에서는 생산 부문을 심각하게 간과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공장에서 만들어졌고, 새로운 사회 또한 공장에서 만들어질 것이다.
 
8장 피델리티 피두시어리 뱅크에 난리가 났어요(금융)
 
은행에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상업 은행, 혹은 예금 은행만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투자 은행이 있다. 투자 은행의 주요한 역할은 주식과 채권을 만들고 거래하는 것을 돕는 일이다. 투자 은행은 1980년대 이후, 특히 1990년대 이후 담보화 부채 상품이나 파생 상품 같은 새로운 금융 상품을 만들고 거래하는 데 점점 주력하기 시작했다. 담보화 부채 상품은 개인 대출을 묶어 합성 채권으로 만든 것이다. 최근 들어 자산 담보 증권을 구조화해서 만든 부채 담보부 증권이라는 상품이 나오면서 금융 상품은 더욱 더 복잡해졌다. 하지만 한데 묶고 구조화하는 것은 위험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떠넘기고 가릴 뿐이다.
 
파생상품은 기본적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것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놓고 벌이는 도박이다. 기업이 환율 변동으로 입는 피해를 막기 위해 특정기간에 미리 정해 놓은 환율로 특정 통화를 환전하겠다는 계약을 투자 은행과 맺는 게 장외 거래 파생 상품이고, 이를 표준화시키면 장내 거래 상품이다. 파생 상품은 위험을 방지하는 기능이 있지만, 투기를 부추기기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선도/선물뿐 아니라 파생 상품도 진화했는데, 새로운 종류의 파생 상품은 크게 둘로 나뉜다. 옵션 계약은 계약자들에게 현재 고정된 가격으로 미래의 특정 일자에 무언가를 살 수 있거나 팔 수 있는 권리를 준다. 스와프는 다수의 선도 계약을 한데 묶은 것으로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련의 사건에 대한 도박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30년 사이 새로운 금융 시스템이 등장했고 금융 혁신을 통해 새롭고 복잡한 금융 도구들이 탄생했는데, 이 과정은 금융 규제 완화로 인해 크게 가속화되었다. 하지만 금융 시스템이 더 복잡해지면서 효율성과 안전성이 떨어졌다. 특히 더 늘어난 상호 연관성으로 인해 금융 시스템의 불안정성이 증가했다. 새로운 금융 시스템의 탄생은 비금융 기업의 운영 방식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 기업의 전문 경영인과 점점 세력이 커져 가는 단기 주주들 사이에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동맹이 맺어졌고, 기업은 장기적 생산성 향상에 고개를 돌릴 여력이 없어졌다. 이제 금융 시스템은 부정적인 힘이 되고 말았다. 금융 기업은 여러 상품을 한데 묶고 구조화하는 등의 각종 기법을 통해, 자산 거품을 지속 가능한 것처럼 속여서 이윤을 높이는 데 아주 능숙해졌고, 거품이 터지면 경제적 힘과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 정부 보조금을 받는다. 그렇게 해서 비어 버린 정부의 금고는 전 국민이 다시 채워야 한다.
 
9장 보리스네 염소가 그냥 고꾸라져 죽어 버렸으면(불평등과 빈곤)
 
지난 30년간 다수의 정부가 낙수 효과를 믿고 부자에게 유리한 정책을 시행하였다. 그 결과 생산, 노동, 금융 시장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어 부자가 돈 벌기 더 쉬운 환경이 조성되었다. 그러나 일부 경제학자들은 불평등이 심해지면 사회 통합을 방해해 정치적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결국 투자가 줄어 성장이 감소한다고 주장해왔다. 세계 인구 5명 중 1명이 아직도 절대적 빈곤 속에 살고 있다. 미국, 일본 같은 상당수 부자 나라에서마저도 6명 중 1명이 상대적 빈곤 속에 산다. 소득의 불평등 정도도 유럽의 몇몇 나라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나라에서 심각한 정도이고, 일부 나라에서는 충격적으로 높다.
 
10장 일을 해 본 사람 몇 명은 알아요(일과 실업)
 
일은 우리 삶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존재이지만, 경제학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비중을 차지한다. 일이 주인공으로 언급되는 때는 신기하게도 오직 일이 부재할 때, 즉 실업에 관해 논의할 때뿐이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부자 나라 사람들보다 훨씬 더 오래 일한다. 그런데 왜 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더 가난한가? 낮은 생산성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에는 대부분의 부자 나라에서 실업률이 상승했다.
 
대부분의 경제학적 논의에서는 사람을 노동자가 아닌 소비자로 규정한다. 일 자체가 갖는 가치는 별 인정을 받지 못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일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노동자에게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영향을 준다. 실업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도 팽배하면서 실업 문제마저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일을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균형 잡힌 경제와 성취감을 주는 사회를 이루어낼 수 없을 것이다.
 
11장 리바이어던 아니면 철인 왕?(정부의 역할)
 
요즈음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개인주의를 신봉한다. 다시 말해 개인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은 없다고 본다. 국가가 시민보다 위에 있지 않다는 선언은 국가의 권력 남용 혹은 국가라는 기계를 관리하는 사람들로부터 개인을 보호하는 중요한 방어 수단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회 계약설은 허구의 역사에 기초를 두고 있다. 사회계약론자들은 사회로부터 개인이 갖는 독립성을 크게 부풀리고, 국가를 비롯한 집단공동체의 정당성을 과소평가했다.
 
시장은 사회적으로 최적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데 실패할 수도 있다. 독점이나 과점 같은 예가 시장 실패이다. 자유 시장 경제학자들은 시장이 실패한다고 해서 꼭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 더 낫다는 뜻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정부의 의도와 능력이 의심스러운 마당에 시장 실패를 수정한다는 명목으로 정부의 개입을 허락하면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제시하는 해결책이 시장에서 정치를 제거하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 국가에서 정치란 국민이 끼치는 영향력에 다름 아니다. 시장은 ‘1원 1표’ 원칙으로 움직이지만, 민주 정치는 ‘1인 1표’ 원칙으로 움직인다. 민주 사회에서 경제를 탈정치화 하자는 것은 결국 돈을 더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사회를 움직이는 힘을 더 많이 주자는 반민주적인 주장이다. 정부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강력한 조직 기술이며, 따라서 정부 없이 커다란 경제적 변화를 꾀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다.
 
12장 지대물박(국제적 차원)
 
국제 무역은 개발도상국에 특히 중요하다. 그러나 국제 무역이 필수적이라는 주장을 국제 무역을 할 때 자유 무역이 최선이라는 주장과 혼동해서는 절대 안 된다. 외국인 직접 투자는 지난 30년 동안 국제 수지에서 가장 역동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했다. 외국인 직접 투자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단순한 금융 흐름에 그치지 않고 투자 대상국의 생산 능력에 직접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외국인 직접 투자의 혜택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조인트 벤처 규정이나 기술 이전 규정, 국산품 사용 규정 등 규제를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지난 30년간 국제 환경은 급속도로 변화하면서 각국의 경제에 다각도로 큰 영향을 미쳤다. 세계화 과정은 이 시대를 규정하는 특징이 되었다. 하지만 초고속 세계화가 진행된 이 기간 경제 성은 둔화되었고, 불평등이 증가했으며, 대부분의 나라가 금융위기를 더 빈번히 겪어야 했다. 그렇다고 해서 국제 경제의 통합이 해롭다는 것은 아니다. 개발도상국의 경우에는 장기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국제 경제와의 상호 작용이 필수적이다. 다만 한 나라가 어디를 얼마나 개방해서 어느 분야에 어느 정도의 국제 통합을 허용할 것인가는 그 나라의 장기적 목표와 역량에 달려 있다.
 
에필로그 : 그래서 이제는?
 
경제학은 정치적 논쟁이다. 과학이 아니고, 앞으로도 과학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경제학적 논쟁을 대할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오래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누가 이득을 보는가?” 가치 판단을 배제한 과학적 분석을 제공한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는 절대 믿어서는 안 된다. 경제학을 하는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며, 다양한 경제학적 접근법은 모두 제각각 장단점이 있다. 요즘의 경제학은 많은 부분을 시장에 할애한다. 하지만, 시장은 경제를 조직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일 뿐이며, 이제는 수많은 경제 활동이 기업 내부 지시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정부가 경제에 광범위한 영향을 끼치고 더 나아가 주도하기도 한다. 생산과 노동 등 시장 너머에 존재하는 거대한 영역을 보지 않는 한 우리는 좋은 경제, 좋은 사회를 건설할 수 없다.
 
누구나 전문 경제학자들의 말에 도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전문 경제학자가 아닌 사람들도 주요 경제학 이론에 관한 약간의 지식과 어떤 문제의 배후에 깔린 정치적, 윤리적 가정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만 있으면 경제 문제에서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는 더 이상 경제를 전문 경제학자와 기술 관료에게 맡겨 둘 수 없다는 사실을 처참하게 깨닫게 해 주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능동적인 경제 시민이 되어 경제의 운영에 참여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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