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공연+)만주국 조선인의 꿈은 지금도 계속되는가
연극 '만주전선'
2014-08-28 07:59:44 2014-08-28 08:04:08
[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올해 상반기 연일 매진 사례를 빚었던 연극 <만주전선>이 앙코르 공연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만주전선>은 대학로의 스타 연출가 박근형의 작품입니다. 우울한 소시민의 일상을 절망스럽게 그리면서도, 태연하게 다시 한 번 희망을 상기시키는 박 연출가 특유의 거친 매력이 이번에도 관객들을 단단히 홀린 듯합니다.
 
연극을 잘 안 보시는 분들을 위해 박근형 연출가에 대한 좀더 자세한 소개를 드려볼게요. 배우 박해일, 윤제문의 이름은 익숙하시죠? 이 배우들이 바로 박 연출가가 이끄는 극단 '골목길' 출신입니다. 골목길은 연극계 스타 산실로 유명하죠. 또 박 연출가는 평단의 사랑도 듬뿍 받고 있습니다. 대표작으로는 <청춘예찬>, <대대손손>, <경숙이, 경숙아버지> 등이 있는데 모두 굵직굵직한 상을 휩쓴 작품들입니다.
 
◇'연극계 스타의 산실' 극단 골목길(제공=극단 골목길)
 
아무튼 <만주전선>으로 다시 돌아가 보겠습니다. <만주전선>은 작가 겸 연출가인 박근형 특유의 고통스러울만큼 적확한 성찰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사회성 짙은 작품으로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박 연출가가 이번에는 어떤 가혹한 이야기로 우리의 양심을 간지럽게 할까요? 연극 안으로 들어가 봅시다.
 
◇관객을 쏙 빠져들게 하는 연극성
 
<만주전선>에는 화자가 등장합니다. 공연 시작부터 2014년 현재의 ‘나’가 무대에 나와 자신의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하죠. 곧 이어 세 명의 여자 배우, 세 명의 남자 배우가 등장하는데요. 공연은 이처럼 관객으로 하여금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누구인가 추리하게끔 유도하는 겉 모양새를 띄고 있습니다.
 
(사진제공=극단 골목길)
 
무대의 배경은 만주사변 이후 일본의 대륙침략 야욕이 계속되던 1940년대 친일국가 만주국입니다.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의 후보군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주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아스카, 슈바이처를 존경하는 의사 기무라, 기무라의 약혼자이자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나오미, 만주 수도인 신경 시청 공무원인 요시에, 시인 가네다, 가수 지망생 게이코 등인데요. 이 ‘절친’들은 조선에서 이곳 만주로 유학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마친 아스카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입니다.
 
모두 조선인들인데 하나같이 일본 이름을 쓰고 있죠.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조선에서의 차별을 견디지 못해 만주로 이주한 이들로, 어떻게든 조선민족의 후진성을 벗어나 일본인처럼 살고 싶어 합니다. 창씨 개명은 기본이고, 불륜을 통해서라도 일본인의 자식을 낳아 진정한 일본 사람이 되고 싶은 인물까지 나오죠.
 
이들의 비뚤어진 욕망을 끝간데까지 밀어붙이는 작가 겸 연출가 박근형의 혹독함은 가히 혀를 내두르게 할 만한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이 공연 속으로 쏙 빠져들게 하는데 그 솜씨의 노련함이 빛납니다. ‘나’의 시점에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시대를 말하는 액자식 구성, 교회 성극이라는 극중극은 계속해서 1940년대 만주국과 현재의 대한민국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부정하기 힘든, 나와 너의 이야기
 
공연은 계속해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합니다. 극 초반부터 ‘간빠이’, ‘이빠이’, ‘비적(조선 독립군을 떼도적에 비유한 단어)’ 등의 일본식 말이 가득 흘러 넘칩니다. ‘왜색’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도 무리가 아닐 정도인데요. 일본인이 되고 싶은 조선인들의 후손 격인 오늘날의 관객은 마음 속이 괜시리 심란해지죠.
 
(사진제공=극단 골목길)
 
나는 친일파의 직접적인 후손이 아니라고요? 그러니 공연히 마음 불편해할 이유가 없다고요? 연극을 보시면 생각이 달라지실 겁니다. 이들의 모습이 이상하리만큼 우리 사회 전반의 모습과 겹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식 서구문화, 사케와 게이샤로 대변되는 일본 문화, 그리고 급기야 전쟁까지. 이들은 선진국의 문물이라면 가리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종교나 특정 국가를 폄하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어 보입니다. 극을 보다 보면 오래지 않아 인물들의 선진문물에 대한 지향은 성공을 위해서라면 맥락 없이도 무엇이든 받아들이고자 하는 우리 모습을 비판하기 위해서 언급된 것임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족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곤 했던 박근형 연출가는 이번에는 가족 같은 친구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어김 없이 이들을 현재의 ‘나’, 관객과 연결하며 큰 의미의 가족사라 할 수 있는 민족의 역사를 상기시키게 합니다. 나 아닌 남의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어딘가 뒷끝이 찜찜합니다. 어쩐지 잔소리 많은, 훈계조의 연극일 것 같나요? 극은 아이러니하게도 시종일관 유쾌하게 흘러갑니다. 아, 박 연출가가 지난해 선보인 연극 <개구리>와 비교하자면 도움이 될 듯하네요. <만주전선>은 문제의식의 일방적인 설파는 줄어든 대신 시선의 날카로움으로 관객 마음을 예리하게 공략하는 작품입니다.
 
- 공연명 : <만주전선>
- 시간 : 2014년 8월 8일~31일
- 장소 : 소극장 시월(구 배우세상 소극장)
- 작.연출 : 박근형
- 제작 : 극단 골목길
- 출연진 : 강지은, 정세라, 권혁, 이봉련, 김은우, 김동원
- 티켓가격 : 일반 3만원, 학생 2만원
- 문의 : 02-6349-2845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