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서울고법 민사13부(재판장 고의영 부장)가 이정희(44) 통합진보당 대표와 남편 심재환(56) 법무법인 정평 대표 변호사를 '종북(從北)'으로 지칭한 미디어워치 대표 변희재(40)씨와 일부 언론사 등에게 수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변씨는 1500만원을, 언론사 기자 등은 4000만원을 이 대표 부부에게 각각 배상해야 합니다.
변씨는 2012년 3월부터 트위터에 올린 22건의 글에서 이 대표 부부를 종북·주사파로 지목헸습니다. 일부 언론사들은 변씨의 글을 그대로 인용해 기사화 했습니다.
이번 판결은 민사판결입니다. 그런데 최근 검찰에서 이 판결에 대한 해석 아닌 해석에 나섰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종북'개념에 대한 강의가 맞겠군요. 검찰이 자청한 것은 아니고요. 아마 해당 언론사가 피고로 배상책임을 하게 되니 개념 정의에 대한 기자들 문의가 많았나 봅니다.
하지만 그것 보다는 똑같은 내용으로 이 대표 부부가 변씨를 형사 고소한 것을 검찰이 무혐의 처분한 것에 대한 '변명' 내지 '해명'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종북'. 우리 검찰은 어떻게 개념을 잡고 있는지 직접 검찰 관계자의 말을 통해 짚어보겠습니다.
▶'종북'이란 무엇?
먼저 '종북'의 사전적 개념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전에 있다면 그 개념과 사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그 개념이 명확히 성립되어 있다는 것일테니까요.
우선 늘 하던대로 인터넷을 찾아보지요. 네이버 포털에 '종북'이라 치니... 네. 나옵니다. 네이버지식백과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집권 정당인 조선노동당과 그 지도자인 김일성, 김정일 등의 외교 방침을 추종하는 경향[네이버 지식백과] 종북 [從北] (시사상식사전, 박문각)"이라고 요약 설명되어 있습니다.
어학사전을 클릭해볼까요? 네. '국어사전' 섹션에 "종북(從北) 주체사상과 같은 북한의 체제를 흠모하고 그에 따름. 또는 그러한 태도."라고 나오네요. 그렇다면 '종북' 개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있는 것 아닐까요?
아닙니다. 네이버 '국어사전' 섹션에서의 '종북'은 '지식in오픈국어'에 나온 겁니다. 이 '오픈국어'라는 게 뭘까요. 네이버는 "표준어 외에도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신조어/사투리/유행어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국어사전에 제정된 의미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라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국어사전에 제정된 의미와는 다를 수 있다"
그러면, 국어사전에 안 나와 있을 수도 있다는 거네요? 국립국어원으로 들어가 표준국어대사전에 '종북'이라고 쳐 봅니다.
나오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국어사전에는 없는 것이고 '종북'에 대한 개념 정리나 사용 여부에 대한 사회적인 명시적 합의는 없는 것이겠지요?
일단 네이버는 '국어사전' 섹션에서 '종북'을 빼는 게 맞겠습니다. '지식in오픈국어'라고 명시는 해놨지만 요즘 누가 이런 것 신경 씁니까? 적어도 아이들은요? 게다가 오른쪽에는 '자료제공 국립국어원'이라고 버젓이 써 있지 않습니까?
◇네이버 국어사전에서의 '종북'(사진=네이버 국어사전 화면 캡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종북'이라는 단어는 없다(사진=국립국어원 홈페이지 화면 캡쳐)
▶검찰 "'종북', 국보법에도 사전에도 없는 개념"
사설이 길었습니다만 검찰 관계자도 같은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을 그대로 옮겨보겠습니다.
"종북이라는 것에 대해서 우리 검찰이 보는 것, 사회 일반이 보는 것, 법원이 보는 것, 법원에서도 재판부마다 보는게 약간씩 다르다. 종북은 법률상 용어가 아니다. 국보법(국가보안법)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국어사전에도 없는 단어로 저희들이 알고 있고, 이 것을 쓰기 시작한 것도 얼마 안 된다. 원래 친북이라는 단어가 있다. 요새는 친북 단어를 안 쓰고 종북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검찰도 종북의 사전적 개념은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종북'의 기원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습니다.
"종북이라는 단어는 보수측이 먼저 쓴 것이 아니라 진보측이 먼저 썼다. 자기들 내에서 NL과 PD가 서로 다투는 과정에서 아마 PD계열 쪽이 NL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북과 연계된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그쪽에서 먼저 쓴 것이 종북으로 저희들은 인식하고 있다"
명시적이고 유권적인 근거를 대지는 않았습니다만, 이 관계자 말에 따르면 진보측(과거 학생운동 노선을 통칭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에서 먼저 '종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설령 사실과 다르더라도 검찰은 이같이 이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보입니다.
그런데, 몇 해 전 법원에서 '종북'의 개념을 판결문에서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검찰 관계자도 이 판결을 소개하며 종북의 개념을 정리했습니다. 법원은 종북을 어떻게 규정했을까요?
▶법원이 보는 '종북'
법원은 판결문에서 "'종북(從北)'이라는 어휘의 통상적인 의미는 '북한을 추종하는 것 또는 그러한 성향'을 의미한다고 할 것인데, '종북'이라는 표현 자체는 누군가의 행동과 발언 등을 토대로 평가한 특정인의 대북관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많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상황에 따라 첫째, 북한과 연관되었다고 인정된 사건들에 있어서 대한민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둘째, 대한민국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는 사람들(예컨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옹호하나, 동시에 북한의 대내외 정책도 어느 정도 용인하는 경우). 셋째,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는 반사회세력을 '종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법원은 다만 "다의적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어, '종북'이라는 표현만으로는 이중 어떠한 범주의 사람 또는 세력을 지칭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판결이 바로 이번 항소심 재판부가 이 대표 부부의 손을 들어준 민사 판결의 1심 판결(서울중앙지법 민사14부. 재판장 배호근 부장)입니다. 이 판결 역시 항소심 판결과 같이 변씨가 이 대표 부부를 '종북'으로 지칭한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변씨의 '종북' 지칭은 명예훼손"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종북과 주사파를 동등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고, '원고들이 종북·주사파 조직인 경기동부연합에 소속되어 있는데, 경기동부연합이 통합진보당을 장악하고 주요 의사결정을 한다'는 내용을 함께 기재해 원고들에 대해 단순히 종북성향이라는 의견 또는 평가를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넘어 원고들이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신념이나 사상을 가진 사람들임을 강하게 인상 지우는 구체적 사실을 적시해 원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결했습니다.
이번 항소심 재판부도 "남북이 대치 중이고 국가보안법이 실존하는 상황에서 '종북'으로 지칭되면 국가와 사회적으로 평판이 손상될 수 있다"며 "구체적인 근거없이 종북이나 주사파로 지칭하면 적대적 세력으로 취급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법원의 개념 정리는 뒤로 갈수록 개념이 좁아지는데 가장 좁은 개념은 ‘주사파(主思派)’와 같은 것으로, 이것을 법원은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모욕'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검찰 역시 법원(민사)의 입장을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검찰 관계자의 말을 직접 들어보시죠.
"변희재씨 판결(민사)에서의 종북은 맨 마지막 개념. (주사파와 같이)굉장히 좁게 해석했다. 거의 종북 이러면 뭐 입에 담을 욕설로 본 것이고 이 대표 부부를 종북이라고 한 것 역시 어마어마한 모욕이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변씨에게 명예훼손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 관계자는 그러면서 "항소심 재판부가 굉장히 좁게 종북을 해석한 것은 조금 아쉬운 점은 있다"고 말했습니다.
▶검찰이 보는 '종북'
그렇다면 검찰은 어떨까요? 검찰은 법원 보다 '종북'의 개념을 넓게 보고 있습니다. 검찰 관계자는 "형사 분야에서는 종북 개념을 넓게 본다. 가급적 처벌이 책임을 덜 지는, 형사책임은 굉장히 엄격하고 까다롭게 다룬다"고 말했습니다.
같은 '종북'이라도 형사상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형사상 책임을 지우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문제는 같은 '종북'의 표현이라도 법원보다 검찰이 넓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똑같은 사안일지라도 가해자는 민사책임은 질 지언정 형사처벌은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형사상의 판결이 아니라 민사 판결일지라도 법원은 '명예훼손'이라고 보지만 검찰은 '명예훼손이 아니다'라는 것이지요.
그 어려운 민사와 형사에 대한 개념이 흐릿한 우리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요상할 따름입니다. 정작 피해 당사자 입장에서는 참으로 통탄할 노릇이지요.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이 대표 부부가 똑같은 사안으로 변씨 등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는데 검찰은 2012년 '무혐의' 처분. 즉 '죄가 없다', '형사상 책임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습니다.
게다가 법원도 검찰과 같은 취지로 판단했습니다. 이 대표 부부가 검찰의 무혐의 처분이 잘못됐다며 재정신청을 냈지만 서울고법에서 이 대표 부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겁니다.
▶"변씨의 '종북' 지칭, 명예훼손 아니다"
아니 검찰은 '종북' 표현이 명예훼손이 아니라고 무혐의 처분했고, 법원도 같은 취지로 판단했는데 또 법원에서 '종북'표현은 명예를 훼손한 것이니 배상할 책임이 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 같은 혼선은 민사판결과 형사판결의 상호 차이에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확정된 형사판결은 민사재판에서 유력한 증거가 됩니다. 그러나 반드시 결론이 같지는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의 차이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대표적인 사건이 미국의 <O.J 심슨 사건>입니다. 미식축구 선수로 영웅으로까지 추앙받던 심슨은 1994년 6월 전처인 니콜 브라운과 그녀의 애인 로널드 골드먼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습니다.
경찰은 심슨의 집에서 피해자들의 혈액이 묻은 장갑과 스키마스크를 찾아냈지만 형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피해자 유가족들이 제기한 민사소송에서는 패소해 3000만달러 넘게 배상하면서 알거지가 됐습니다.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의 상호관계가 어떻든, 보호법익이 무엇이건 간에 '종북'이 개념 정립 없이 방치되면서 발생하는 법적·사회적 공백은 그냥 두어서는 더 이상 안 되겠습니다.
이미 검찰과 법원이, 법원과 법원이 서로 모순된 해석을 내리면서 민·형사를 초월한 인권 침해에 대한 구제영역에 공백이 생겼습니다. 이 대표 부부와 변씨의 이번 판결은 이런 의미에서 주목해야 합니다.
기자들을 상대로 열강을 한 검찰 관계자도 "종북이라는 것이 개념 정리될 필요 있다. 법률적 사회적으로"라며 이 같은 점을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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