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현정기자] 자본시장의 한 축으로 성장한 국내 사모투자펀드(PEF) 시장은 금융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금융당국은 수차례에 걸쳐 사모펀드 관련 규제완화 방침을 내놨고 이에 따라 시장 기대감도 고조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토종 사모펀드가 '외국계 자본의 대항마'로 거듭나기엔 걸림돌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어느덧 도입 10년, 토종 사모펀드의 자생력을 키우기 위한 현실적인 조치가 필요한 시기다.
◇몸집 커진 한국형 사모펀드.."국민연금 수요 밑거름"
◇국내 사모펀드 규모 추이(자료제공=금융감독원)
외형 성장은 고무적이다.
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4년 말 출범한 국내 토종 사모펀드는 2005년 기준 15개, 약정액 4조7000억원이었던 것이 올해 6월 말 기준 257개, 약정액 46조원으로 각각 17배, 10배 급팽창했다.
시장이 커지면서 사모투자회사 역량도 강화됐다. 금융산업이 IMF 위기를 맞으며 기업 구조조정이 활성화되고 대체투자에 보수적이던 기관투자가들이 장기화된 저금리 기조로 대체투자에 눈을 돌리면서 사모펀드 수요를 늘린 결과다.
특히 MBK, KTB, 보고, 미래에셋 등의 사모펀드 운용사(GP)는 시장을 주도해 수준 높은 토종 사모펀드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는 평가다. 신규설립 GP의 경우도 마찬가지.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사모펀드들도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나 블랙스톤에서 커리어를 쌓은 인력을 데려오기 시작했다"며 "경험적 노하우라는 게 있다. GP는 과거 역량도 평가 대상이지만 매니저 개인의 역량으로도 평가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시장의 기본 저변을 높이고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맞서기 위해선 든든한 자금력이 있어야 하는데 세계 4대 연금인 국민연금은 업계의 든든한 무기가 되고 있다.
송홍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국민연금 등 국내 연기금이 시장 조성의 밑거름이 됐다"며 "선진국 대비 큰 덩치를 앞세워 수요기반을 강하고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도록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외국계 자본 대항마 '역부족'.."장기적 성장 토대 만들어야"
전문가들은 사모펀드가 통상 10년 주기로 투자한다는 점에서 "겨우 한 사이클 지났다", "이제 첫 발을 뗀 셈"이라고 말한다.
KKR이나 블랙스톤과 같은 세계적 사모펀드와 자웅을 겨루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평가다.
수십년 업력과 축적된 노하우를 가진 베테랑과 비교해 기본적 역량이 부족한데다 국내의 각종 규제가 그동안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지원사격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규제가 족쇄 역할을 한 측면이 있어서다.
송홍선 연구위원은 "장기적인 성장 여건을 마련하는 것이 당국이 져야 할 과제"라며 "매물 소화 과정이 원활토록 바이사이드(Buy Side)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국내 1호 사모펀드 운용사인 보고펀드가 M&A와 관련해 금융권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해 결국 투자에 실패하면서 업계 전반에 위기감을 키웠다. 가장 큰 요인은 매물 소화 과정에서 기존 투자기업을 팔지 못한 채 '소화불량'에 걸렸다는 점이다.
성공적인 엑시트(자금회수)를 위해선 현행 인프라 제도를 효율적으로 재검검하는 방안이 제시돼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사모펀드 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가 대안투자처로 자리잡으려면 투자회수율이 관건"이라며 "정부가 최근 경영참여형 사모펀드 규제를 대폭 완화한 것도 업계의 이 같은 요구에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재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사모펀드에 대한 각종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규제안에 따르면 투자금 회수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사모펀드가 최대주주인 기업의 상장이 허용되고 상장법인의 합병가액을 기준시가의 30% 내외에서 정할 수 있게 된다.
당국의 이 같은 노력에 업계는 "규제완화로의 전환은 맞는 방향"이라며 일단 긍정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다만 긴 호흡을 갖고 지켜봐줄 것을 당부했다.
사모펀드 관계자는 "안전성 논란은 없을 수 없겠으나 GP의 역량을 믿고 지켜봐 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자금의 파이프라인이 돼 경영을 연계하고 기업가치를 높이는 것이 사모펀드의 역할이고 장기적인 여건 속에서 그런 본연의 기능이 되도록 해줘야 국민경제에서도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지난달 10일 서울 중구 태평로 금융위원회에서 열린 금융규제 개혁방안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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