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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동네문구)③"상생이 소망..제도가 생존권 위협"
2014-07-24 07:00:00 2014-07-24 07:00:00
[뉴스토마토 이지은기자] "학교 앞 상권이 먼저 살아야 합니다."
 
도·소매 문구점과 준비물 제조사 등 현업에 종사하는 관계자들을 비롯해 문구업계 종사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는 목소리다. 지난 2002년 2만4300여개에서 2012년 1만4000여개로 10년 새 절반 가까이 줄어든 학교 앞 문구점 수는 도매업체와 제조사의 연쇄도산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 출산율 감소, 스마트 기기의 활성화, 대형마트의 PB상품과 학용품 판매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가장 직접적이고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학습준비물 지원제도'다. 제도가 되레 자영업자가 주축인 학교 앞 상권을 죽였다. 정부가 외치는 '상생'과는 정반대의 결과다.  
 
업계 관계자들은 "복지를 통해 경제 유발효과가 일어날 수 있도록 학습준비물 지원제도의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며 "학습준비물 지원제도를 위한 관련법을 도입하는 것도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문구점연합회 "준비물 지원제도 쿼터제 도입돼야"
 
방기홍 문구점살리기연합회 회장은 "학습준비물 지원제도 자체를 없애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자칫 현행 제도에 대한 반발로 비쳐질 경우 불어닥칠 후폭풍과 여론의 반감을 의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복지가 늘어야 하는 것이 시대상 흐름이고, 더구나 아이들한테 주는 복지를 줄여서는 안 된다"며 재차 강조한 뒤 "다만 골목상권을 살리고, 경제민주화의 근간이 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근간에는 먹고 살기 힘든 문구점 업주들도 함께 살 방안을 찾자는 '상생'이 있었다.
 
◇방기홍 문구점살리기연합회 회장. (사진=이지은기자)
 
이에 해결 방안의 하나로 우선 예산의 일정 부분에 대해 쿼터제(할당제)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이는 학교가 일정 금액에 대해서는 인근 문구점에서 구입하는 방법이다.
 
방 회장은 "서울시는 100만원 이하 금액에 대해서는 인근 소매점에서 구입하라는 지침을 내렸다"며 "하지만 소매점들이 직접적 효과를 보려면 전체 예산에서 30%가량은 인근 문방구에서 수시로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의 발길이 학교 앞 문구점으로 향해야만 문구점이 살아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나라장터나 학교장터의 입찰시스템 이용 시 비문구 업체나 대기업들의 입찰 참여를 제한할 수 있는 시스템의 마련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게임의 룰 자체가 공정성을 잃으면서 왜소한 체구의 이들이 설 자리는 잃었다.
 
특히 현재의 입찰 시스템은 업종에 '문구'만 포함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고, 어렵사리 납품을 따내도 결국 최저가로 인한 제 살 깍아먹기 경쟁으로 이득을 볼 수 없는 구조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출혈 경쟁은 자본력이 딸리는 이들에게는 생존과도 직결된다.
 
더불어 현재 학습준비물 지원 예산으로 학생에게 필요한 모든 물품을 구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가급적 개인 학용품과 비소모성 제품에 대해서는 개인이 구비하도록 하고, 학교에서는 준비물 위주로 구입하는 것을 제안했다.
 
방 회장은 "교과서 분석을 해보니 한 학년당 제대로 된 실습교재를 받으려면 1년에 평균 20~30만원 정도가 필요하다"며 "현재 연간 3만원 수준의 지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교육의 질과도 직접적 연관이 있다.  
 
◇KC마크 의무화·문구상품권제도 도입 필요
 
학습준비물 지원제도와 도·소매점, 제조업자들이 상생을 이루기 위해서는 KC마크가 확인된 제품이 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과 문구상품권 제도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신건식 한국문구공업협동조합 전무는 "최저입찰제, 제한적 최저가 등이 입찰 시 적용되다 보니 중국산 저가 제품이 들어가고 있다"며 "국가통합인증마크(Korea Certification·KC)가 확인된 제품이 학교에 들어가 학습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소매상들과 제조업자들은 문구상품권 제도의 도입을 주장했다.
 
제조업 관계자는 "입찰을 통해 물건을 공급받아서 나눠주는 것보다 문구상품권 제도를 도입해 동네 상권도 살리고 학생들도 사고 싶은 것을 선택해 살 수 있도록 복지의 개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 소매점 관계자는 "나도 복지를 누리고 있고, 이것 때문에 내가 장사가 안 되니 하지 말라 할 수도 없다"며 "다만 복지가 서민을 위한 복지가 근간인 만큼 문구상품권 제도의 도입 등을 통해 소상공인이 있는 골목상권도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이어지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가장 큰 문제 "명확한 기준이 없다"
 
학습준비물 지원제도는 지난 2001년부터 시행되고 있지만, 명확한 기준 없이 시·도 교육청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운영 중이다. 때문에 학교에 나눠주는 기본 운영비에서 학생 1인당 연간 2~3만원씩 지출하도록 권고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또 교육부에서 예산을 분배해 시·도 교육청에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시·도 교육청에 지침만 내리다 보니 지자체별로 교육의 불균형 현상도 초래되고 있다. 1인당 평균 지원 금액은 3만2000원이지만, 광역시·도별로 금액을 살펴보면 전북이 5만4000원인 것에 반해 대전은 2만2000원으로 편차도 크다.
 
이에 지난달 16일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지자체 예산을 통해 학습준비물을 지원토록 하는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은 정부와 지자체가 학습준비물 구입 비용을 예산의 범위 내에서 지원하고, 교육부 장관은 학습준비물의 효율적인 지원을 위해 운용에 관한 기본 지침을 작성해 시·도 교육감과 각 학교장에게 통보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유은혜 의원은 "교육복지를 위해 실시한 제도가 골목상권을 위협하고 있고, 교육의 질을 하락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다"며 "법률 개정을 추진해 이 문제를 협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창신동 문구·완구거리에서 있는 한 상점. (사진=이지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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