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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동네문구)②준비물 제조사, 판매처 줄어 연쇄도산
2014-07-23 08:00:00 2014-07-23 08:00:00
[뉴스토마토 이지은기자] 사라지는 동네 문구점 이면에는 고통받는 제조사들이 존재한다. 학습준비물 지원제도로 도·소매 업체들이 문을 닫자 판매처를 잃었다. 줄도산 우려는 현실이 됐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학교장터의 입찰 경쟁이 심해지면서 낮은 단가를 맞추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중국산 저가 제품에 대항하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특히 약 5000억원 규모의  문구시장에서 10분의 1도 차지하지 못하는 영세 준비물 제조사들의 현실은 악몽 그 자체다. 전국에 있던 100여개 업체 중 상당수가 도산하고, 현재 10여개 업체만이 근근히 생존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문구 제조사들의 현실도 만만찮다. 바른손(018700)은 3년째 적자 행진이고, 대부분 업체가 실적 정체를 보이고 있다. 국내 제조업체들은 학용품 비중을 줄이고,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준비물 제조사의 현주소..'만들면 산업쓰레기'
 
"학습준비물 지원제도로 학생들에게 준비물이 제대로 지원된다면 생산자들은 어렵지 않아야 합니다. 기존 학생 수 대비 물건이 팔리면 되니까요. 그런데 전국에 한 학년당 40만명의 학생이 있는데 1년에 물건이 1000개도 안 팔립니다. 남은 2만9000여개는 산업쓰레기로 폐기했습니다."
 
◇A교재사의 학습준비물 상품들이 재고로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사진=A교재사)
 
30년째 초등학교용 실험·실습 교육재료를 생산해 온 A교재사 조모 사장의 말이다.
 
학교에서 한정된 예산으로 문구, 생활용품, 실습용 재료 등을 구매하다 보니 실습용 재료로 책정되는 예산이 빈약한 상황이다. 실습 대신 시청각 자료로 대신하거나 조별 수업을 통해 비용을 줄이고 있다. 그 결과 기존에는 3만개를 생산해도 팔렸을 제품이지만 이제는 채 1000개도 안 팔리는 상황까지 직면했다.
 
A사의 30명 안팎의 직원들은 모두 일터를 잃었다. 조모씨와 다른 직원 총 2명이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준비물만으로는 이익이 나지 않자 생산 기반을 바탕으로 캐릭터 상품 출시에도 나섰지만, 규모의 경쟁에 밀려 이마저도 접었다.
 
조씨는 "1개 팔면 2000원 정도 남는데, 여기서 운송비가 발생하니 결국 손에 쥐는 것은 없었다"며 "대량 생산을 해야 하는데, 준비물을 만들던 공장에서는 한계가 있어 다른 산업으로의 전이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2대째 대구지역에서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B교재사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권모 사장은 큰 돈은 못 벌어도 열심히 제품을 생산하고 납품을 위해 발품을 팔면 노력한 만큼 돈을 벌 수 있어 아버지로부터 가업을 이어받았지만, 매출은 10년 전보다 10분의 1로 줄었다. 
 
20~30명 정도였던 직원을 경영 악화의 이유로 내보내고, 현재는 본인 외 다른 1명의 직원과 제품 생산부터 도매시장 판매까지 도맡고 있다. 인원이 필요할 때는 아르바이트 인력을 구해 메꾸고 있는 실정이다. 아버지가 운영하던 때와 달리 공장 규모가 줄어든 것도 당연지사.
 
권씨는 "과거에는 품질을 좋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지금은 싸게 만들기 위한 업계 내 경쟁이 심해지고 있다"며 "예전에는 업체별로 특화된 품목이 있었지만, 돈이 된다 싶으면 모두 달려들고 있어 재고 문제도 상당하다"고 토로했다. 
 
◇가동을 멈춘 B교재사의 공장 내부. (사진=B교재사)
 
저가 상품의 난립과 소규모 공장에서 다품종을 생산해야 하는 문제로 국내 공장을 접고, 중국에서 직접 납품을 하는 업체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에서 직원을 써서 공장을 돌리는 것보다 중국에 발주를 줘서 만들어오는 게 더 싸다"며 "국내 10여개 업체 가운데 국내 공장이 없는 곳도 있다"고 설명했다. 
 
최저가 입찰을 통한 유통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준비물 제조사 관계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권씨는 "준비물 제조사들은 가내 수공업에서 출발해 생산자, 도매, 소매로 이어지면서 일자리를 창출한 소상공인을 위한 시장이었지만 이런 부분들이 사그라졌다"며 "가업을 살리기 위해 열심히 하겠지만, 아버지께 물려받은 사업을 자식들에게는 물려줄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장 가동을 알리는 빨간불이 꺼져있다. (사진=A교재사)
 
◇바른손 '적자 행진'..모나미·모닝글로리 '명맥 유지'
 
대형 문구 제조사들의 현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학습준비물 지원제도 시행으로 급한 물건이 아니면 문구점 이용률이 떨어지다 보니 수요 자체가 줄고 있기 때문이다. 
 
바른손은 3년 연속 적자를 보이고 있다. 매출액도 2011년 771억원, 2012년 641억원, 2013년 498억원으로 내리막길이다. 지난해 기준 매출의 73%가량은 영화, 외식사업 등 이종사업 분야에서 올렸다.  
 
모나미(005360)와 모닝글로리도 명맥 유지만 할 뿐 신통치 않다. 모나미는 지난해 매출액이 1675억원으로 1999년 이후 최저 수준이었고, 영업손실은 11억원을 기록했다. 다행히 올 1분기는 매출액 431억원, 영업이익 43억원을 달성하며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났다.  
 
모닝글로리는 10년 넘게 500억원 매출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의 경우 2011년 각각 456억원, 6억원, 2012년 각각 451억원, 7억6000만원에 불과했으며, 영업이익률은 2011년 1.29%, 2012년 1.68%에 그쳤다. 
 
한 관계자는 "도·소매업체가 사라지는 것은 결국 국내 제조업체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는 것을 의미한다"며 "제조업체조차 뛰어들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학교장터의 입찰 가격이 낮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문구 제조업계, 기존 타깃층 대상 사업 다각화
 
부진 탈출을 위해 문구업계가 택한 것은 사업 다각화다. 물적분할을 통해 신사업 강화에 나서는가 하면, 기존 타깃층을 대상으로 상품 확대에 나서는 업체도 있다.  
 
바른손은 지난해 12월23일 기존 사업부문 중 팬시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했으며, 올 3월18일 '팬시앤아트'를 설립했다. 업계에서는 바른손이 지난 2010년 롸이즈온과 합병 후 출범한 베니건스 등을 통해 외식사업과 영화사업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모나미는 자체 프랜차이즈 브랜드 '모나미스테이션' 가맹점 추가 오픈 외에 올해부터 상품공급점을 늘리는 등 유통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모닝글로리는 생활용품 아이템을 탈출구로 꼽고 있다. 문구와 비슷한 타깃층을 대상으로 매출 다변화에 나서겠다는 전략이다. 우산, 양말, 슬리퍼, 텀블러 등의 다양한 생활용품 등을 내놓고 있으며, 10% 초반인 비중을 2~3년 이내에 전체 매출의 20%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는 "문구만으로 국한해 기업을 이끌어 가기에는 사회, 유통 환경 등의 변화로 타깃층 수요가 줄고 있고, 기업의 백년대계를 위해 한계점이 있었다"며 "현 상황에서 문구 제조업체들이 사업 다각화에 나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처사"라고 말했다.
 
◇국내 문구제조업체들의 학용품이 빼곡히 진열돼 있다. (사진=뉴스토마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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