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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역 20년' 정상헌, 초특급 농구선수의 몰락
2014-07-22 14:04:29 2014-07-22 14:09:00
◇울산 모비스 시절의 정상헌. (사진=KBL)
 
[뉴스토마토 임정혁기자] "중국 2m 넘는 선수들 앞에서 더블클러치를 했다. 몸으로 부딪힌 다음에 골밑슛도 하고 그랬다. 아마 그대로 컸으면 틀림없이 국가대표가 됐을 것이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졌던 농구 선수가 비참하게 몰락했다.
 
처형을 살해하고 암매장까지 한 전 농구선수 정상헌(32)에 대해 징역 20년형이 확정됐다. 대법원 2부는 정상헌에 대해 징역 2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지난 21일 밝혔다.
 
◇누구도 거론하기를 피하는 이름
 
지난해 7월3일 경기 화성동부경찰서는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아내의 쌍둥이 언니를 목 졸라 살해한 뒤 인근 야산에 사체를 암매장한 혐의(살인 및 사체유기)로 정상헌을 긴급 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정상헌은 시신을 여행용 가방에 담아 이틀 동안 자신의 승용차에 싣고 다니다 집 근처 야산에 암매장하는 충격적인 행각을 벌였다.
 
이후 농구계에서는 정상헌을 거론하는 것을 꺼리고 있다.
 
과거 그를 지켜본 한 지도자는 대법원 판결 다음날인 22일 "별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법의 심판까지 받게 된 선수와 엮이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또 다른 관계자 또한 "여기저기 (정상헌에 대해) 물어봐도 누가 좋아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중국 격파의 선봉에 섰던 재능
 
정상헌은 농구 골수팬들이라면 누구나 아는 선수였다. 흔히 그는 '방성윤(은퇴)의 라이벌', '타고난 재능'으로 불렸다.
 
193cm에 탄탄한 체격을 갖춘 정상헌은 포지션이 따로 없었다. 공식적으로는 3번(스몰포워드)이었지만 국제대회에서 그는 1번(포인트가드)과 2번(슈팅가드)을 오가며 다재다능함을 뽐냈다.
 
정상헌은 경복고 재학 시절 휘문고의 방성윤과 함께 고교랭킹 1~2위를 다퉜다. 장신(192cm)에 스피드와 패싱력을 지닌 선수로 평가받았다. 일부에선 그를 국가대표 장신 가드로 클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정상헌은 2000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린 18세 이하(U18) 아시아청소년대회에서 방성윤과 함께 뛰며 우승을 차지했다. 중국을 뛰어넘은 성과였다.
 
당시 정상헌을 지켜본 한 농구 관계자는 "경기 운영을 주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득점까지 넘나들었다. 센터를 앞에 두고 덩크슛을 하기도 했다"면서 "외곽슛도 좋았고 운동 능력에 점프력까지 갖춘 선수였다. 정말 다 잘했다"고 회상했다.
 
◇몸이 불어도 기대할 수밖에 없었던 선수
 
그는 고려대 진학 후 단체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숙소를 무단으로 이탈하는 경우가 잦았다. 소위 운동선수들 사이에서 말하는 '소풍'을 자주 다녔다. 결국은 학교를 중퇴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정상헌은 재능만으로 코트를 뒤흔들었다.
 
한 관계자는 "정상헌은 번뜩이는 재치가 있었다. 그건 도저히 가르칠 수 없는 부분이다. 사실 그 친구는 대학 때도 한 2년 정도만 자기 실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매일 놀러 다녔다. 그 이후로 제대로 운동한 적도 없는데 프로에 지명도 됐다"면서 "중요한 경기에 정상헌은 꼭 나왔다. 당시에 일부 학부모들이 연습도 제대로 안 하는 선수를 왜 자꾸 쓰느냐고 항의를 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그래도 이기기 위해선 그가 필요했다"고 회상했다.
 
숙소 이탈과 복귀를 반복하는 사이 정상헌의 체중은 불어갔다. 날렵하면서도 탄탄했던 몸은 온데 간데 없었다. 그럼에도 농구계는 그의 재능을 버릴 수 없었다.
 
정상헌의 재능을 안타까워한 김진 감독(현 LG)은 지난 2005년 일반인 드래프트에서 정상헌을 자신이 이끌던 대구 오리온스(현 고양 오리온스)에 1라운드로 지명했다.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그가 불어난 몸집으로 일반인 드래프트에 나섰지만, 관리만 한다면 프로무대에서도 통할 것이란 평가를 받았다.
 
◇계속된 방황의 끝은..
 
하지만 정상헌의 방황은 계속됐다.
 
그는 오리온스에서도 팀 부적응을 이유로 임의 탈퇴했다. 이후 가까스로 울산 모비스에 재입단해 잠시나마 선수생활의 의지를 다지기도 했지만 2007년 결혼 이후 곧장 상무에 입대했다. 상무에서도 생활이 원만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2009년 군 제대 후 정상헌은 은퇴를 택하며 조용히 농구계를 떠났다.
 
반면 그의 라이벌이었던 방성윤은 소속팀과 대표팀을 오가며 활약했다. 자연히 농구팬들 사이에서는 정상헌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때마다 정상헌이 경기도 수원에서 폐차알선업을 하며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곤 했다.
 
하지만 은퇴 후 4년 만인 지난해 그는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전세자금과 생활고 등에 시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졌지만 용서받을 수 없는 선을 넘고 말았다.
 
한 농구계 고위 관계자는 "재능만 믿고 노력을 정말 안했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가는 팀마다 적응을 못 했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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