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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토크)①디지털 음향시대 30년, 진보하지 않는 오디오
기업의 유통·마케팅 논리에 희생된 음향산업..“아직 갈길 멀어”
2014-07-18 16:55:04 2014-07-18 16:59:16
[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최첨단 IT 기술에 대해서는 늘 긍정적 해석이 붙기 마련이지만 면밀히 관찰해보면 불필요하거나 위험한, 심지어 퇴보에 가까운 트렌드도 많다. 전기전자업계 기술 진보가 소수 글로벌 기업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데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부작용일 수도 있다. 스마트 혁명 이후의 길을 모색하기 시작한 현 시점에서는 마땅히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첨단', '차세대', '미래' 등의 미사여구로 포장해 내놓는 경우도 늘고 있다. 기술 진보가 소비자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과 점차 무관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첨단 기술의 효용성을 평가하는 맥락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더 행복해졌는가, 더 건강해졌는가, 더 자유로워졌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기술의 효용성을 평가하는 문법이 보다 소비자 가치에 기반해야 한다는 얘기다. <뉴스토마토>는 앞으로 총 5회에 걸쳐 전기전자, IT업계의 기술 동향과 소비자에 미치는 영향 등을 점검해보기로 했다. (편집자)
 
지난 30여 년간 음향은 전자·IT업계 기술 진보의 ‘사각지대’나 다름없었다. TV 화질이 울트라HD(UHD)급으로 발전하면서 유명 배우들의 모공까지 관찰할 수 있을 만큼 진화를 거듭했고, 통신·네트워크 환경은 1초에 기가비트급 파일이 전송될 정도로 발달했지만 음질은 오히려 30년 전만도 못한 수준의 콘텐츠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음향업계에서는 아직도 우스갯소리로 소니와 필립스의 '원죄'를 얘기한다. 음향 산업이 다른 IT 기술과 달리 끊임없이 퇴보의 역사를 걸어온 것의 시초는 두 회사가 개발한 CD의 등장과 함께였다는 얘기다. 당시 LP를 뛰어넘는 음질이라고 포장된 CD 시대는 현대 소비자들이 기업의 비즈니스 논리와 허위광고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내는 상품이기도 하다.
 
소니와 필립스가 1982년 상용화한 지름 12㎝의 반짝이는 작은 원반은 LP보다 유통 측면에서 유리했다. 또 휴대용 플레이어 시장이라는 신시장의 개화를 주도했다. 당시 소니와 필립스는 '깨끗하고 선명한 디지털 음악'이라는 선전 문구를 사용했었다. 실상을 들여다보면 CD는 아날로그 음향을 디지털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본연의 정보량을 50% 이상 축소시키는 대신 생산단가를 획기적으로 낮춘 상업주의적 결과물에 불과했다.
 
이후 애플의 아이팟이 등장하면서 음악의 가치는 음질보다는 유통 쪽에 더 무게중심이 실리게 됐다. 아이팟을 출시하며 애플이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는 '1만곡을 주머니에'였다. 작은 크기의 휴대용 플레이어에 수천 곡의 음악을 담을 수 있다는 마케팅 포인트를 위해 음원 파일의 크기는 축소를 거듭했다. '사람이 듣지 못한다'는 대역의 소리를 배제하고 들을 수 있는 소리만 남겨둔 음악은 3~4메가바이트에 불과한 복제파일의 홍수로 이어졌다.
 
◇애플 아이팟 클래식.(사진=애플)
 
◇엄두 못낼 가격 아니면 음질 향상 없이 과대광고
 
최근에는 아스텔앤컨 등의 고가의 하이파이(Hi-Fi) 음원재생기가 보급되고 있다. 성공할 가능성이 요원해 보이는 수준의 높은 가격대에도 불구하고 마니아층에서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좀 더 좋은 소리를 듣고자 하는 수요가 항상 존재했던 것이다. 뒤늦게 소니, 코원, 디지털앤아날로그 등이 고음질 플레이어 시장에 뛰어들고 있지만 일반 소비자가 접근하기엔 여전히 가격대가 높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아이리버 AK100 2세대 모델의 소비자 가격은 109만원이고 코원의 플레뉴 원은 125만원이다. 고가의 MP3 플레이어와 비교해도 몇 배 더 비싸다. 음원도 마찬가지. MP3 음원 한 곡당 300~500원 정도라면 고음질 음원은 1800~2200원에 달한다. 고음질 플레이어와 짝을 이루는 리시버 가격대도 높다. 원음 재생의 강점을 있는 그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최소 50만원대 이상의 헤드셋이나 이어폰이 필요하다.
 
반면 해당 제품들이 그만한 값어치를 하는지에 대해서도 평가가 엇갈린다. 배터리 소모, 발열, 호환성 등 기기 자체의 성능에 대한 부분뿐만 아니라 단순히 음원을 재생하는 단일기기치고는 가격대가 지나치게 높게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음향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부 기기들은 프리미엄급 제품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된 부품 대비 폭리에 가까운 수준의 가격대를 설정한 사례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005930), LG전자(066570)도 자사 프리미엄급 스마트폰에 원음재생이 가능하다는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삼고 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과대광고다. 단순히 24비트 신호의 음원파일을 재생한다는 것만으로 고음질 플레이어로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부품 하나 바꾸는 수준으로 고음질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안이한 자세는 오디오의 중요성에 대해 주요 업체들이 갖고 있는 시각을 여실히 드러낸다.
 
소니의 한 관계자는 "스마트폰이 24비트 고음질 음원재생이 가능한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현재 내장된 DAC(디지털 아날로그 컨버터)로는 구현 불가능하다"며 "따라서 현재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주장하는 원음재생은 기기 성능 자체의 향상이 아니라 기존의 열악한 MP3가 좀 더 많은 정보량을 가진 파일로 대체된 것에서 발생하는 효과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삼성전자 갤럭시S5와 LG전자의 G3. 두 제품 모두 무손실 원음재생 기능을 제공한다.(사진=각사)
 
◇'명기'가 사라진 음향업계, '트렌디 제품'만 봇물
 
"요즘 마니아들 사이에서 30년 된 빈티지 오디오 가격이 더 비싸게 거래되고 있습니다. 80~90년대 이후 음향기기 기업들이 발표한 제품 중 소위 '명기'라고 할 만한 제품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죠. 비즈니스 구조상 오디오 회사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평생 쓸 수 있는 명품을 만들 수 없고 단기성 트렌드 제품만 쏟아내고 있습니다."
 
아날로그 오디오 마니아인 이재학씨(36세)의 지적이다.
 
음향기기 산업은 전기전자 업계 내에서는 가장 폭리 구도가 심한 영역이기도 하다. 기술적 발전 속도가 더딘데 비해 가격 인플레이션이 심하다는 설명이다. 통상 스마트폰,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다른 영역의 산업의 경우 시간이 지나갈수록 부품 단가가 떨어지면서 가격대가 낮아진다. 하지만 음향산업은 부품 성능에는 변화가 없거나 심지어 퇴보한 경우에도 단가가 올라가는 특이산업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쪽은 역시 소비자다. 음향산업 내 이 같은 폭리구조가 성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음질의 기준을 판단할 객관적인 잣대가 부재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음악의 해상도나 대역폭, 임피던스 등을 명확하게 계량화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에 개개인의 주관적 취향에 따라 평가가 갈리는 경우도 많다. 일부 제조사들의 경우 성능의 변화를 '발전'으로 눈속임해 가격 인상의 여지를 확보하는 사례도 있다.
 
반대로 최근 국내 일부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빈티지 오디오'라는 30여 년 전 제품이 각광받고 있다. 영국의 KEF, 일본의 산수이 등 음향전문기업들이 1970~1980년대 생산한 제품이다. 당시 음악다방에서 주로 사용되던 이 기기들은 여전히 높은 퀼리티의 소리를 자랑한다. 이재학씨는 "저음이나 고음을 과장하는 방식으로 이퀄라이징된 요즘 오디오 기기들은 MSG를 첨가한 화학물질 같다"며 " "THX나 돌비 등 수백만 원에 이르는 오디오 시스템보다 오히려 30년 전 제품들이 더 사실적이고 감성적인 소리가 난다"고 말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대립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난 1981년 디지털 녹음과 재생 기법이 탄생한 이후 수많은 기업들이 디지털을 선언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질보다 유통성을 강조하며 음향 콘텐츠의 질적 저하를 초래해왔다. 그리고 90년대 이후 CD, 휴대용 플레이어로 전성기를 구가한 미국, 일본의 전자업체, 레코드회사들이 MP3의 등장과 함께 몰락의 길에 접어든 것 역시 소비자 가치보다는 유통성을 강조한 결과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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