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민성기자] 카드사 정보유출사건이 발생한 지 한달도 채 지나지 않아 또다시 금융권에 대형 폭풍이 불었다. 5개월이 지난 지금 수사당국의 추산으로 사기 대출규모가 1조8000억원인 대형 사기대출사건이 터진 것이다.
정보유출 사고 수습으로 정신이 없던 금융당국은 연이은 금융사고 때문에 금융권 전체를 '아수라장'이라는 비유를 들기도 했다.
◇KT ENS와 협력업체, 은행 등 총체적 관리 부실의 합작품
금융권의 부실한 여신 관리와 KT ENS의 허술한 인감 관리, 관계자들의 도덕적 해이 등이 빚어낸 총체적 부실이 원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엄청난 규모의 대출사기가 가능했던 근본적인 이유는 KT 자회사라는 보기좋은 '허울' 때문이라는 게 금융권 안팎의 분석이다.
엔에스쏘울과 KT ENS 직원이 짜고 가공의 매출채권들 만들어 특수목적법인(SPC)에 넘기고 SPC는 이를 담보고 금융사에서 대출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KT ENS가 매출채권을 SPC로 넘겨도 좋다는 법인인감까지 찍혀 있었다.
하지만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사기였다. 법인인감은 실제 인감과 달랐던 것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2008년 5월부터 무려 6년간 사기대출이 계속 돼온 사실조차 몰랐다는 점이다. 경찰 조사 결과 KT ENS는 정직원이 아닌 아르바이트생에게 인가 관리를 맡기는가 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허술하게 관리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금융 시스템의 총체적 난국 속에서 빛을 발한 것은 금감원의 '저축은행 여신상시감시시스템` 뿐이다.
금감원은 BS저축은행 검사 과정에서 수상한 대출거래 내역을 확인했다. 2개 차주에 대한 대출이 동일차주 한도초과 혐의가 있는 것으로 적발됐다. 대출자의 이름은 다르지만 연락처가 비슷한 건을 발견한 것이다.
당시 금감원은 "이번 사기대출은 여신상시감시시스템이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며 기뻐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금감원 자체 감사와 경찰 조사결과 자본시장조사국 김모 팀장이 사건의 주범인 전 모씨 등과 어울려 다니며 해외 골프 접대 등 수억원에 이르는 이권을 받아 챙긴 사실이 밝혀졌다.
지난 1월 금감원이 이번 대출 사기 사건을 조사하자 김 팀장은 KT ENS의 협력업체인 NS쏘울의 전씨 등에게 알려 해외로 도피할 수 있도록 도와줬다.
현재 김 팀장은 공직자의 재산등록 사항은 공직자윤리위원회 등의 허가 없이 열람할 수 없는데도 감찰실이 금감원장의 지시를 받고 재산등록 사항을 무단 열람했다며 최수현 금감원장을 고소한 상태다.
◇수천억원대 KT ENS 협력업체 사기대출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수사대 수사관들이 지난 2월1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협력업체 엔에스(NS)쏘울, 중앙티엔씨 등 사무실 압수수색을 마친 후 압수품을 담은 박스를 옮기고 있다. ⓒNews1
◇은행권 여신심사시스템 '빨간불'..KT ENS 법정관리行 '후폭풍'
사기범의 수법을 탓하기 전 문제 시작은 사실 은행권의 여신심사 체계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금융당국이 검사에 돌입하기 전 금융사에서는 사실 확인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여신심사 체계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일부 은행은 직접 KT ENS를 방문해 서류를 받는 등 현장조사를 진행했었다고 강하게 반박했지만 하지만 추가대출시 별도의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 등의 허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초대형 사건인 만큼 후폭풍도 만만찮다. KT ENS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KT ENS가 보증한 특정금전신탁 지급이 유예되면서 투자자들이 1000억원가량 손실을 볼 위기에 처했다.
금감원은 지난 3월13일 특정금전신탁을 지급 유예한 사실을 인지하고 상품을 판매한 금융회사에 자체 점검을 요청한 결과 불완전 판매 정황을 발견했다. 상품 판매 계약서나 투자정보 확인서에 투자자 서명이 누락됐거나 투자자 운용 지시서의 운용 대상에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이다.
◇5개월 후..여전히 '미궁'이지만 독자신용등급 도입 발판 마련
사건이 발생한지 5개월이 지났지만 핵심 피의자인 전주엽 엔에스쏘울 대표의 행방은 묘연하다. 경찰은 전 대표에 대해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했다.
1조8000억원 중 회수되지 않은 2800억원의 향방도 논란거리다. 당국에서는 2800억원의 사용처가 대부분 돌려 막기를 위한 대출상환과 운영자금 등으로 쓰인 것으로 보고 있지만 2800억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의 용도로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정금전신탁 불완전판매까지 이어지면서 많은 피해자를 낳았지만 한가지 의외의 성과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 독자신용등급 도입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용평가시 모기업이나 정부로부터 '후광'을 받는 기업에 상대적으로 높은 등급을 주는 게 관행이었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한 전문가는 "기업의 펀더멘털 지표를 반영한 독자신용등급도입을 서둘러야 한다"며 "투자자들도 기업의 경쟁력과 수익성, 재무안정성, 현금흐름과 같은 기본적 평가요소에 충실해야 할 때가 됐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