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방글아기자] 정부가 산업재해 예방 대책을 아얘 내 놓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정부 대책들은 기업에 대한 지원중심이었고, 지나치게 기업들의 자율에 맡겨져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자율을 통해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제재할 수단은 없는 상황이다.
지난 2009년 고용노동부는 한해 9만5806명의 산재피해자가 발생해 연간 17조원의 '경제적 손실'을 유발한다는 내용의 산재예방 홍보동영상을 제작하면서 연봉 2000만원대 근로자 85만명을 추가로 고용할 수 있는 액수라고도 덧붙였다.
◇"산업재해 예방이 기업경쟁력입니다"라는 제목이 붙은 고용부의 산재예방 홍보동영상.(사진=고용부 홍보영상에서 갈무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기에 죄악시 돼야 하는 산재를 다분히 고용주측 '비용편익'의 논리로 접근한 것이다.
'산재 예방'이 곧 '기업의 경쟁력'이라는 정부의 시각은 자연스럽게 기업중심의 대책으로 이어졌다. 특히 노동부를 고용노동부로 명칭을 바꾼 2010년부터는 기업에 대한 정책비중이 더 커졌다.
당장 올해 고용부에 편성된 정책사업예산(행정예산 등 제외) 1조6677억4200만원의 73%가 노동이 아닌 고용정책에 집중돼 있다. 고용부가 기업지원부라는 비난을 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산재와 관련한 고용부의 입법활동이나 행정에도 이러한 무게중심은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고용부가 올해 들어 공고한 산재예방 관련 입법·행정예고만 보더라도 총 7개중 6개가 산재를 줄이기 위해 노력한 기업에 '당근'을 주는 방식에 쏠려 있다.
▲산업재해예방시설자금 융자 및 보조지원사업 운영규정 ▲사업장 위험성평가에 관한 지침 ▲안전보건관리대행 및 재해예방전문지도기관 관리규정 ▲건설업체의 산업재해예방활동 실적 평가기준 ▲안전검사 절차에 관한 고시 ▲공정안전보고서의 제출 심사 확인 및 이행상태평가 등에 관한 규정이 모두 기업을 기준으로 하는 당근책이다.
특히 재해예방에 기업투자를 유도하는 산재예방시설자금 융자지원사업은 사업장당 3억원 한도 내에서 소요비용의 100%를 지원하는 것인데 이번 개정으로 융자금 한도가 5억원으로 상향됐다.
사업장 위험성평가는 기업들이 사업장 위험요소를 분석해 개선책을 내 놓으면 산재보험요율을 할인 해주는 대책이고, 안전보건관리대행 관련 규정은 사업주가 사업장 안전점검 등을 맡기는 안전보건지원자를 고용부가 어떻게 관리할지 정한 것이다.
고용부는 최근 10~50인 미만 중소기업이 안전·보건 전문 인력을 새롭게 채용하면 1년에 1인당 1080만원씩 2년에 걸쳐 채용지원금을 지원한다고 밝힌 바 있다. 우선 규모가 작은 사업장부터 시작해 단계적으로 확대해 적용한다는 것. 올해 개정은 대행기관을 전문기관으로, 대행업무를 위탁업무로 바꾸는 등 용어만을 변경했다.
◇17일 울산 석유화확공단 한화케미칼 울산공장을 방문해 실태점검중인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오른쪽 세번째).ⓒNews1
산업재해예방활동 실적 평가는 개별실적요율제와 연계해 위험성평가와 마찬가지로 기업의 자율적 산재예방을 유도해 산재보험요율을 낮춰 주기 위한 제도다. 과거 3년 간 사고 기록 등을 보고, 사고 유무에 따라 산재보험요율을 할인 또는 할증한다.
금번 개정은 평가대상·기간 등과 세부 평가항목 및 배점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정했다. 실적 관련 부정행위자에 대한 조치도 포함됐다.
그러나 기업중심의 산재정책들이 기업들로 하여금 산재를 더 은폐하도록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은수미 의원은 지난해 "상위 20대 기업의 산재보험료 감면액이3460억원(30.4%)에 달한다"며 "대기업들이 산재를 은폐하거나 위험업무를 외주화해 산재율을 낮추는 등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할인 인정을 취소할 수도 있다"며 "산재은폐로 공표된 사업장이 요율 할인 취소 대상에 포함된다"고 설명했다.
2009년에 도입된 안전검사제도 역시 사용중인 기계 및 기구를 기업 '스스로'가 점검하는 이른바 '자율검사프로그램'을 허용한 제도다.
노사가 자체 안전검사를 실시하면 고용부의 정기검사를 면제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골자인데, 본래는 정기검사(고용부)와 자체검사(기업) 등 둘로 나뉘어져 있었지만 안전점검이 중복돼 사업주에 높은 부담을 초래한다는 이유로 일원화됐다.
더구나 올해 개정된 안은 안전보건공단이 자율검사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기업을 직접 방문해 확인해야 한다는 조항에 예외를 두는 조항까지 추가해 우려가 제기된다.
공정안전보고서는 중대재해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화학 사업장(PSM 대상 사업장)에 제출토록 한 보고서다.
그런데 실태점검에서 우수(P)등급을 받은 사업장에 대해서는 각종 지도와 점검 등을 아예 손을 떼 문제시 된다.
올초 개정작업에서는 기업측 보고서 작성자에 대한 요건을 더 완화했다. 보고서 작성자중에는 안전보건공단이 실시하는 관련 교육 28시간 이상 이수자 1명 이상이 포함돼 있어야 하는데, 이들의 경력 기준을 기사 기준 7년에서 5년으로, 산업 기사 기준 9년에서 7년으로 완화한 것이다.
기업에 대한 당근책은 늘어나는 반면 고용부가 산재를 일으킨 기업에 법·행정적 절차를 도입해 제재하는 정책은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안전투자를 소홀히 해 사실상 산재를 유발한 기업에는 과징금을 물리는 등 보다 높은 처벌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용부 관계자는 "기업측이 (안전 비용을 낮춰) 얻은 이익을 환수하는 것은 고용노동부의 소관이 아니다"고 밝혔다.
고용부는 기업측 최고결정권자인 CEO를 검찰에 고발조치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고의성 등 여러 가지가 고려돼야 하다 보니 복잡한 사정이 많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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