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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삼성·하이닉스 헐뜯기.."도둑질로 성장"
정치권에 이어 산업계도 '우경화'..日 정부 개입 강화 조짐
2014-04-22 16:44:01 2014-04-22 16:48:23
[뉴스토마토 황민규기자] 일본 정치권의 '우경화' 바람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산업부문에서도 한국 기업에 대한 노골적 반감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가전, 모바일, 반도체 등 한때 일본이 자랑하던 주력 산업 부문에서 선전하고 있는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000660) 등이 주된 공격 대상으로 떠올랐다.
 
현재 일본 산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는 '산업 스파이'다.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20년'에 빠져있는 동안 상당수 기술 기업들이 뼈아픈 구조조정을 겪었고, 이 과정에서 해고된 기술자들이 한국으로 넘어가 성장을 주도했다는 논리. 이는 주요 경제지를 중심으로 퍼져나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성공을 '도둑질'로 평가절하하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사업장 전경.(사진=각사)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달 도시바와 SK하이닉스의 소송건이다. 지난달 도시바는 자사의 낸드플래시 기술이 SK하이닉스로 유출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보도가 나간 지 하루도 채 되지 않아 일본 경찰은 2011년 SK하이닉스를 퇴사한 것으로 알려진 스기타 요시타카(52세)씨를 전격 체포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일련의 과정이 비정상적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도시바가 제기한 일방적 주장에 대한 검토 없이 곧바로 공권력이 투입돼 조사가 진행됐다는 게 극히 이례적이라는 지적이다. 한 관계자는 "국가 간 특허 침해 문제로 분쟁이 일어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산업 스파이'라는 명목으로 공권력을 발동해 즉시 체포하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정부와 산업계가 이처럼 기술 유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최근 업계에서 제기되는 몇몇 주장들을 통해 그 배경을 파악할 수 있다. 일본 내 주요 경제매체들은 최근 "한국 기업들의 단기적 성공은 대부분이 일본 기술자들을 스카우트하는 방식으로 실현됐다"며 일본 기업의 기술을 보호하기 위해 더 강력한 지적재산기본법, 부정경쟁방지법 등 규제 강화를 요구하고 있다.
 
현지에서는 일본이 자랑하던 종신고용제도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기술자들이 한국으로 유출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대량의 기술 유출이 발생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한 일본계 기업 관계자는 "최근 일본에서는 고액의 연봉과 함께 한국으로 스카우트된 인력들이 한국 기업들에게 기술을 빼앗긴 뒤 버림 받는다는 식의 주장이 빈번히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는 한때 세계 시장을 호령했던 일본 반도체, 디스플레이 산업에서의 패권을 한국과 중국에 내주게 된 '상실감'이 배경으로 보인다. 첨단 기술력을 바탕으로 D램 시장을 선도했던 엘피다는 미국의 마이크론에 흡수 합병됐고, 액정표시장치(LCD) 산업도 줄줄이 한국, 중국 기업에게 밀려 몰락의 길을 걸었다. 기술 개발에 가장 큰 기여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시장은 한국에 뺏기게 됐다.
 
지난달 일본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전문지 중 하나인 '다이아몬드'는 각 산업부문별 기술 유출 정도를 파악해 순위를 매긴 자료를 공개했다. 가장 많은 기술 인력 유출이 발생한 기업은 산요(Sanyo)였으며, 기술 분야 중에서 유기형발광이오드(OLED), 디지털카메라, LCD 관련 유출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분야는 모두 삼성, LG가 근 10년간 가장 큰 성장을 기록한 분야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기업들은 정부 주도의 기술 유출 방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주요 매체들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 대표기업들을 평가절하하는 식의 특집기사를 잇달아 게재하며 화답하고 있다. 실제 비즈니스저널, 산케이신문 등은 연일 "한국으로 스카우트된 기술자들이 '도둑질'이 끝난 뒤 빈손으로 돌아오고 있다"며 일본 내 기술 인력들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국내 제조업계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출범 초기부터 산요전기와 합작법인 형태였다는 점에 미뤄 볼 때 삼성과 일본 기업들과의 협력 수준이 높았다는 점은 사실이지만 특정 기술의 국적성을 따지는 건 무의미한 논쟁"이라며 "다국적 기업의 인력이 자유롭게 이동되는 과정에서 기술력이 공유되는 과정은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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