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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블록전쟁)②美TPP VS. 中RCEP..G2, 경제패권 전쟁
오바마, 日 방문해 TPP 협상 이어갈 예정
中 4차 RCEP 협상까지 순조로운 진행
아시아 각국 대책 마련으로 '분주'..다방면 FTA 구사
2014-04-16 10:00:00 2014-04-16 10:00:00
[뉴스토마토 윤석진기자] '팍스아메리카나'를 연장하려는 미국과 '중화 시대'를 꿈꾸는 중국이 아시아에서 맞부딪쳤다. 아시아를 차지하는 쪽이 세계 경제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기회의 땅' 아시아에 입성하기 위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 TPP)' 카드를 꺼냈다. 중국은 근거리란 이점을 살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 RCEP)'을 제시했다.
 
아시아를 사이에 둔 G2의 샅바 싸움이 이어지는 동안 한국과 일본, 싱가포르, 인도 등은 나름의 대비책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美 TPP로 中 '봉쇄'..패권국 지위 이어간다
 
미국이 TTP 협상에 공을 들이고 있다.
 
TPP로 미국과 아시아 경제를 하나로 잇기 위함이다. 아태경제협력체(APEC) 회원국과 일본, 캐나다, 멕시코 등이 함께하는 이 협상이 성공하면 세계 경제의 40%, 총 무역량의 20%를 차지하는 거대 시장이 형성된다. 미국이 주도하는 이 TPP로 무서운 성장세로 턱밑까지 올라온 중국을 견제하는 동시에 경제적 실익도 거둘 수 있다.
 
'자유무역협정(free trade agreement ; FTA)'보다 개방 수위가 높은 TPP가 성사되면 회원국 간의 관세와 비관세 장벽이 철폐된다. 서비스, 투자, 지적 재산권 등의 규정은 통일된다. 경제 자유도가 높은 미국에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는 셈이다.
 
셰일가스 붐으로 얻어진 넘쳐나는 미국 원유를 손쉽게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생긴다. 이는 아시아에도 득이다. 금융 자문사 허버트 스미스 프리힐스에 따르면 북미의 LNG 가격은 아시아보다 8배 더 싸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대량의 LNG를 수출하는 일본이 반색할 만한 정보다.
 
미국 정부는 올해 연말까지 모든 협상을 마무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미국 무역 당국은 일본과의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다.
 
마이클 프로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아마리 아키라 일본 경제재생담당상을 지난 11일 도쿄에서 만나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방일도 잡혀있다. 오바마는 오는 24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나 관련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미국이 이처럼 유독 TPP에 열을 올리는 또 다른 이유는 아시아의 무서운 성장세 때문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동아시아가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2년 23.7%에서 2011년 28.4%로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유럽연합(EU)과 북미는 각각 33.7%, 30.1%에서 25.1%, 25.8%로 크게 하락했다. 또 동아시아 국가들의 세계 수출 비중이 크게 올랐지만, EU와 북미는 감소하는 추세다. 앞으로 아시아를 지배하는 국가 세계 경제를 다스린다는 말이 과장이 아닌 셈이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오바마는 지난 2012년 재선에 성공하는 즉시 핵심 대외정책으로 '아시아 중시 정책(Pivot to Asia)'을 천명했다.
 
이를 위해 오바마가 넘어야 할 관문은 한둘이 아니다. 중국의 견제는 배제하고서라도 일본 같은 아시아 핵심 국가를 잡는 것부터가 녹녹지 않다.
 
◇아마리 아키라 일본 경제재생담당상(왼쪽)과 마이클 프로먼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가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실제로 지난 11일 일본을 방문했던 마이클 프로먼 USTR 대표는 빈손으로 돌아왔다.
 
모든 상품 관세 철폐를 주장하는 미국과 달리 일본은 쌀, 밀, 설탕, 육류, 유제품 등 5가지 품목의 관세를 현행 38.5%에서 20%대로 조정하길 희망한다. 파이낸셜타임즈(FT)는 자국 낙농업을 보호하려는 아베 총리의 노력이 이번 TTP 협상에 반영됐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이는 미국이 받아들이기 곤란한 요구다. 경제 대국 일본에 조건부 관세를 적용하면 다른 나라와의 TPP 협상에서도 민감한 분야의 관세를 지키려는 ‘보호주의’가 일반화될 수 있다. 이러면 높은 통상 자유도와 낮은 규제로 이득을 극대화한다는 TPP만의 특성이 사라진다.
 
일본의 과도한 농업 보조금 또한 미국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조사에 따르면 일본 농업 소득의 50%는 정부의 보조금 혜택에서 나온다. 유럽은 20%, 미국은 10%에 불과하다.
 
◇中, RCEP 5차 협상 앞두고..지역 네트워크 창출 '의지'
 
중국은 미·일 무역협상이 삐걱거리는 것을 보면서도 방심하지 않고 RCEP 협상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지금까지 총 4차례의 RCEP 협상을 진행했다. 지난 4일 중국 난닝에서 개최된 4차 협상에서는 상품, 서비스, 투자 분야와 경제협력 전반에 관한 논의를 이어갔다. 5차 회의는 오는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릴 예정이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10개국과 중국, 한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등 총 16개국이 참여하는 RCEP는 관세장벽 철폐를 목표로 한다. 중국과 그 이웃국들은 내년까지 모든 협상을 종료하기로 합의했다. 이 협정이 성사되면 세계 GDP의 32.5%에 달하는 시장이 탄생한다.
 
중국이 아시아 시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잠재 가치가 높은데다 국가 간 네트워크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국 끼리 거래하면 지리적으로 가까워 아웃소싱 비용이 낮아진다. 자원이 많은 회원국의 원자재와 그것으로 중간재를 만든 국가의 기술력, 최종재조립과 유통을 담당하는 국가가 연결되면 부를 창출하는 네트워크가 형성될 수 있다.
 
중국은 한 발 더 나아가 자국 중심의 RCEP 협상을 추진하는 한편, 최근 들어 눈에 가시 같은 TPP 또한 전략적으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리커창 중국 총리(왼쪽에서 5번째)가 보아오 아시아 포럼장에서 다른 국가 대표들과 나란히 서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지난 10일 리커창 중국 총리는 하이난성 보아오에서 개최된 아시아 포럼에서 "RCEP와 TPP는 서로 모순되지 않기에 상호 추진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필요시 미국이 주도하는 TPP에도 참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국제무역연구원은 TPP를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봉쇄정책으로 인식하던 중국 지도부가 최근 TPP에 개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시아에만 집중하다 다른 권역과의 공조 관계가 느슨해지면 국제사회에서 고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 출범한 시진핑 지도부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국가와의 경제 공조를 강화하는 한편 아시아 외 국가들과도 FTA 협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처럼 중국도 파트너 국가들과 무역 협정을 체결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 3일 타이완에서는 학생 200명이 국회 청사를 점거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학생들이 타이완 정부가 중국과 추진하고 있는 경제협정에 제동을 건 것이다. 학생들은 "협정문대로 투자이민이 허용되고 노동시장이 자유화되면 자국 내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또 TPP 협상 타결을 목표로 매진하고 있는 미국의 견제 또한 RCEP 협상을 지연시키는 요인이다. 최근 FT는 "TPP의 암묵적인 목표는 중국만을 배제한 세계 자유무역협정체결"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G2에 대응하는 아시아, 문어발식 경제협정 '진행'
 
아시아를 상대로 한 미·중의 구애가 이어지는 가운데 각 국은 나름의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 각국은 동시 다발적인 경제 협정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
 
한국은 한·중 FTA 협상에 매진하면서 한·중·일 FTA와 RCEP까지 바라보고 있다. 더불어 미국 주도의 TPP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각 협정의 경제효과를 저울질하면서 협상 속도를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한·중 FTA와 RCEP, TPP에 들어가면 세계 GDP의 81%에 해당하는 시장을 누리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TPP에 참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최근 호주와 FTA 협상을 타결한 일본은 이제 유럽연합(EU)과의 FTA 논의를 이어가면서 한·중·일 FTA, RCEP등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은 또 미국, 중국과도 FTA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아세안(ASEAN)국들은 현재 RCEP 협상을 진행하면서 해당 회원국들 모두와 FTA를 발효하는 전략을 세웠다. 모든 무역 장벽을 제거하는 FTA로 이득을 챙기고 RCEP를 통해 역내 경제협력과 우대조치를 강화할 심산이다. 이로써 동아시아 경제통합에 합류하면서 낮은 규제의 이점도 살릴 수 있다.
 
타이완은 TPP와 RCEP 양쪽 모두에 발을 걸치고 있다. 지난 2월 마잉주 총통은 "미국 주도의 TPP와 중국이 이끄는 RCEP에 동시에 가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 그룹 중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여론이 타이완 내부에 자리하고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둔 가운데 협상력을 길러야 한다고 촉구한다. 포커스타이완의 보도에 따르면 콴밍청 국가발전 위원회 대표는 "경제 부흥을 위해 경제 공조는 필수"라며 "협상의 레버리지를 높이면서 광범위한 시장에 편입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베트남과 말레이시아도 RCEP와 TPP를 동시에 추진하면서 개별 국들과의 FTA 협상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인도는 RCEP 참여에 만족하지 않고 한국과 일본, 아세안국 들과 연이어 FTA를 체결했다. 1991년에 세운 '동방정책'에 맞게 아시아 지역과의 경제 관계를 강화하고 FTA로 이득을 극대화할 방침이다.
 
싱가포르는 일찍부터 FTA 체결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아시아권 뿐 아니라, 남미, EU, GCC 등 다양한 경제권과의 FTA를 통해 전 세계를 아우르는 FTA 네트워크망을 보유하고 있다.
 
◇TPP·RCEP 내년까지 타결 가능할까?..협정 내용에도 관심 '집중'  
 
G2의 틈에서 실익을 챙기려는 아시아는 나름의 생존 전략을 펼치면서 TPP와 RCEP 협상 과정을 잠잠히 지켜보고 있다.
 
과연 미국과 중국이 공언한 대로 각 협정이 내년까지 타결될 수 있을지, 어떠한 내용이 협상안에 들어갈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다자간 협상이므로 개별 국가와 미·중이 맺은 경제협정은 미·중과 다른 나라가 맺을 협상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미국은 일본과의 TPP 협상을 진행하면서 이 같은 고민에 빠졌다. 미국이 꿈꾸는 자유시장을 형성하려면 회원국 간 관세를 없애야 하는데, 일본이 자국 산업의 특성을 이유로 높은 관세를 고집하고 있다. 여기서 물러나면 안 좋은 전례를 남기는 것이다.  
 
최근 호주와의 자유무역협정인 '(Economic Partnership Agreement ; EPA)' 협상에 성공하면서 일본은 더 큰 자신감을 가지고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협상을 통해 양국은 호주산 쇠고기에 부과되던 관세율을 현행 38.5%에서 20%대로 단계적으로 낮추기로 했다. 미국이 거부한 사안을 호주는 받아들인 것이다. 일본은 이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설득하는 카드로 활용할 계획이다.  
 
◇박근혜 대통령,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동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그러나 오바마 쪽에도 일본의 공세에 대항할 만한 카드가 충분하다. 양국 TPP 협상이 평행선을 그릴 확률이 높은 이유다.
 
호주를 가리키는 일본에 맞서 미국은 베트남을 지목한다. 베트남은 최근 미국과 벌인 협상에서 농업 부문의 규제 수위를 더 낮추기로 합의했다. 미국은 베트남처럼 농업에 의존하는 국가도 열린 태도로 임하는데 일본 같은 선진국이 협상에 너무 인색한 태도로 일관한다고 질책한다. FT의 조사에 따르면 농업이 일본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에 불과하다. 노동 인력의 4%만이 농업 분야에 종사한다. 베트남 GDP의 22%는 농업 부문에서 나온다.
 
이 때문에 양측 고위 관료들은 오는 24일에 열리는 미·일 TPP 협상에서도 별다른 진전이 없을 것으로 내다본다. 이는 곧 TPP 협상 종료 시점이 내년 이후로 밀릴 수 있다는 뜻이다.
 
아키라 아마리 장관 일본 경제재생담당상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그동안 충분히 치열하게 협상을 해왔으나 격차를 좁히지 못했다"며 "오바마 대통령의 방문으로 어떤 성과가 있을지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중국의 RCEP 협상 과정 또한 만만치 않게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아시아 회원국 간 경제격차가 매우 큰데다 주력 수출 상품은 겹치고 있다.
 
무엇보다 미국의 방해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TPP가 협상에 난항을 겪고 있는 마당에 미국이 RCEP에 가입하려는 국가들을 가만히 놔둘 리 없다. RCEP 참여 자체를 막을 수는 없어도 TPP에도 동참하라고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문가들은 RCEP가 16개국 정상들이 목표한대로 내년에 타결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진단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TPP와 RCEP가 서로 경쟁하는 양상에서 벗어나 병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TPP와 RCEP가 경쟁하는 양상으로 진행될 경우 아태평양 국가들은 원산지 규정 등의 상이한 협정 적용에서 유발되는 상당한 비용을 감수해야 할 것"이라며 "TPP와 RECP를 장기적으로 병합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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