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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끝 소공인)'네모'로 새 도약 꿈꾸는 인쇄조합
(르포)④-2. 인쇄거리에서 만난 사람들
2013-06-10 16:27:14 2013-06-10 16:30:23
[뉴스토마토 이보라기자] "우리는 일어나서 눈 뜨고 잠잘때까지 인쇄를 접하지 않고 살 수 없는 현실 속에 살고 있습니다. 21세기를 맞이하는 지금 인쇄업계의 위기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지식산업의 미래는 기약하기 힘듭니다."
 
이소현 서울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 상무가 말했다. 그는 인쇄산업이 모든 경제활동과 밀접하게 연관된 전방위산업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장기적인 발전전략 수립과 지원의 부재로 영세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쇄업이 영세업종, 3D업종 취급을 받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정보통신산업(IT)의 발전으로 e-book이 등장하고,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의 사용 증가로 종이 사용이 줄어들면서 출판과 인쇄물을 통한 홍보물 제작이 줄어들고 있다. 그러면서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졌고, 인쇄 단가도 낮아 업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비현실적인 소음·진동 관리법, 바뀌어야"
 
특히 최근에는 중구청이 소음·진동 관리법에 근거해 필동 일대의 인쇄업체에 대해 단속과 행정처분을 실시해 업계에서는 억울해하며 반발하고 있다. 현재의 소음 진동관리법은 1970년대의 규정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어, 인쇄 현장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관련법에는 50마력 이상의 인쇄기계를 소음배출시설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1980년대부터 인쇄기가 급격하게 다색화, 자동화, 첨단화되면서 동력은 높아졌다. 게다가 동력량 증가와 소음진동 발생량은 상관관계가 없다고 업계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필동에 소재한 한 인쇄업체 대표는 "인쇄는 도심형 사업으로, 70년대 기준인 50마력을 적용한 법 때문에 대부분의 인쇄업계가 단속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시인쇄정보협동조합 관계자 역시 "현행법이 지금의 현실과 맞지 않아 고쳐달라고 수없이 요구했지만 개정이 지연되는 바람에 영세인쇄업체들이 생업에 위협을 받고 있다"면서 "이런 문제가 바로 영세인쇄업체들의 성장을 가로 막는 손톱 밑 가시아니겠냐"고 말했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서울 중구의 인쇄업체들은 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서울인쇄정보산업협동조합은 지난 1962년에 설립된 단체로, 현재 1500여개의 업체들이 가입돼 있다. 중소기업의 권익을 보호하는 단체로, 중소기업중앙회가 출범했던 같은 해에 설립됐을 정도로 오랜기간 입쇄업종의 권익보호를 위해 활동한 조직이다.
 
◇'네모' 통해 합판업체 견제·일자리 창출
 
서울인쇄정보협동조합은 변화하는 경영환경에 따른 인쇄업체들을 보호를 위해 지난해 인쇄전공 학생들과 생산자, 소비자 등 1인당 20만원씩 출자해 인쇄전문협동조합형 기업 '인쇄를사랑하는사람들 네모'를 설립했다. 인터넷을 통해 명함과 전단지 등의 주문을 받아 서울시 인쇄센터의 공동장비를 이용해 물건을 생산한다. 이익금은 장애인과 사회적 최약자 등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쓰인다.
 
현재는 영업과 광고활동을 통해 인지도를 쌓아가는 중이다. 기존 회원업체들의 거래처인 공공기관이나 관공서가 아닌 대기업 등을 위주로 영업활동을 개시하고 있다. 3불(불공정·불합리·불균형) 근절과 중소기업 중심의 정책기조를 펼친 현 정부의 분위기 때문에 대기업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고 조합 관계자는 설명했다.
 
◇인쇄조합 네모의 광고(사진제공= 인쇄조합네모)
 
특히 네모는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아 대량인쇄하는 방식의 합판업체가 기존 시장의 가격질서를 무너뜨린다고 판단해, 합판업체 수준의 가격을 책정했다. 개별업체만으로 대항하기 힘든 합판업체에 조합 전체가 맞서 인쇄가격 질서 확립과 유통구조 합리화에 나선 것이다.
 
이밖에도 조합은 지난 5월 중소기업청의 '소공인 특화지원센터' 사업에 선정됐다. 이달부터 기술전수와 소공인 경영대학, 공동이용장비 지원과 공동마케팅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 사업 운영을 위해 인쇄조합은 현물을 포함해 1억5000만원을 투입했다. 중구청과 중소기업청은 각각 1억원, 3억원을 지원한다.
 
인쇄인들이 급변하는 경영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데는 우리나라가 '인쇄종주국' 이라는 자부심도 깔려 있다. 또 인쇄업이 제조업의 의미를 넘어서 인류발전에 공헌한 지식·정보 가공산업이라는 점을  깊이 새기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 최초 금속활자인 '직지'를 만들어낸 인쇄종주국입니다. 게다가 지금의 인쇄거리는 산업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라 이미 600여년 전 '주자소 터'를 중심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문화적·산업적인 측면에서 마땅히 보존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주자소란 조선시대 활자를 주조하고 책을 찍어내는 업무를 담당하던 관청이다. 지금의 인쇄타운이 형성된 것은 단순히 산업화 과정에서 생선된 것이 아니라 600여년 전부터 이어져 온 유물이자 산업현장이라는 설명이다. 인근의 필동과 묵정동이라는 지명 역시 인쇄거리의 흔적을 보여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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