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명정선기자] '파격'은 한국은행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그런데 요즘 파격이란 말이 한은과 함꼐 등장하는 경우가 잦아졌다.다름 아닌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단행한 인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김 총재는 2010년 취임 이후 줄곧 한은의 개혁과 변화를 강조해왔고,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함께 직급과 서열을 뛰어넘는 인사도 단행했다. 하지만 최근 이뤄진 부총재와 고위 집행간부 인사는 '도'가 지나쳐 파행이라는 비난이 한은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박 부총재 내정자는 주요 핵심 부서를 거치지 않고, 부총재보에서 부총재로 1년만에 초고속 승진했다. 김준일 부총재보 내정자는 김 총재의 학교 후배로 한국개발연구원 후배다.
반면, 지금껏 임원으로 가는 핵심 부서 출신 인사들음 모두 배제했다. 관련 담당 국장들은 모두 새로 신설된 경제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자리를 옮기거나 인사 직전 퇴사했다.
특히 조사국장, 거시건전성분석국장, 유국제국장 내정자는 모두 2급이지만 국장으로 발탁됐다.
김 총재로선 취임 이후 줄곧 강조해온 한은 순혈주의 타파를 실행한 셈이다. 물론 내부에서 이번 인사가 한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 넣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없진 않다.
상대적으로 소외됐던 부서 출신 직원들도 핵심 업무를 맡을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는 얘기다.
그러나 후배를 상사로 모시고 핵심 부서가 후방으로 밀리는 어이없는 사태를 겪어야 하는 대부분의 직원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을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한은 직원의 가장 큰 걱정은 조직의 근간이 무너지고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인사와 관련해 한은 일부 부서의 요직 독식은 타파해야하는 문제라는데 한은도 인식을 같이하지만, 기준도 불분명한 파격 인사를 단행하는 김중수 총재를 수장으로 믿고 따르기엔 불신의 골이 너무 깊어져 버렸다.
취임 이후 청와대에 VIP보고서를 올려 한은의 독립성을 스스로 훼손했던 김 총재다. 그 뿐인가 금통위원 공석을 2년 째 방치해 놓고 임명권은 청와대에 있다며 몸을 사리는 데 급급했다.
무엇보다 물가를 책임져야 하는 한은 총재가 청와대 입맛에 맞춘 나머지 시장에서 리더십을 잃었다. 한은 금통위는 잊혀진 지 오래고, 서민들은 물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총재에 대한 자부심보다 부끄러움이 앞선다"는 한은 직원들의 심경고백이 현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겉잡을 수 없이 고공행진 하고 있는 물가, 정상화 시기를 놓쳐 버린 기준금리, 존재감이 사라진 금통위, 청와대 코드에 맞추느라 훼손된 독립성.
과연 '한국은행'에 남은 게 뭔지 김 총재 스스로 한번 돌아보길 바란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