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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태의 경제편편)어린 시절을 존중하라
2022-08-10 06:00:00 2022-08-10 06:00:00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1년 앞당기는 문제가 엄청난 평지풍파를 일으키고는 잦아들었다. 파문은 일으킨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29일 교육부의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만 5세 입학' 추진방침을 갑자기 던지면서 시작됐다. 마치 교육계와 국민들을 시험해 보려는 듯 말이다. 결국 교육 관련 전문가와 단체 및 일반 국민의 일치된 반대 여론에 부딪혀 제동이 걸렸고, 파문의 ‘주인공’ 박순애 부총리는 자리를 내놓고 말았다. 파문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지자 그녀가 버틸 자리는 더 이상 없었다.
 
이번 사태 진행 과정에서 두드러진 것은 ‘국민통합’이 뜻하지 않게 성취됐다는 것이다. 교육부의 보고내용이 전해지자 전국의 학부모와 교육단체가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 유치원 단체를 비롯해 여러 교사단체나 학부모단체 등 교육 관련 단체가 그야말로 한목소리를 냈다. 특히 보수적이라고 일컬어지는 한국교총과 진보 교육단체라 불리는 전교조도 나란히 반대 의견을 내놨다. 이처럼 진영 논리와 상관없이 한결같은 목소리가 나온 것은 참으로 오랜만에 본 진풍경이었다.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도 명저 <에밀>에서 “어린 시절을 존중하라”면서 “각종 가르침은 알아야 할 적절한 시기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 연령에 이르기 전에는 아이들이 잘 뛰어놀면서 명랑하게 자라날 수 있도록 지켜주고 도와주면 된다.
 
이는 인간이 자연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이러한 자연의 이법을 억지로 뒤집거나 거역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교육부는 자연을 향해 그 이법을 거역하겠다고 선전포고했다가 된서리를 맞은 셈이다.
 
사실 한국 교육의 문제는 초등학교 입학 연령과 그다지 관계가 없다. 공교육 불신과 과도한 사교육비, 그리고 지나친 입시경쟁 등의 문제는 주로 중고등학교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그리고 이런 난해한 교육 현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주거비와 맞물려 젊은이들에게 앞날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하게 만든다. 그 결과가 오늘날 저출산과 인구감소라고 할 수 있다.
 
지난 4월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미국 CNN방송은 한국이 세계에서 양육비 부담이 가장 큰 나라라고 보도했다. 미국 투자은행의 연구소 자료를 활용해 분석한 결과였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에서 아이를 낳아 18세까지 기르는 데 드는 비용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7.79배에 달했다. 그것도 2013년을 기준으로 한 것인데, 2019년 기준 1인당 GDP의 약 6.9배로 계산된 중국보다도 높다. 4배를 조금 넘는 미국과 일본에 비하면 2배에 가깝다. 따라서 지금 한국 교육의 핵심과제는 이렇게 과도한 양육비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각급학교 급식비가 무상으로 전환되고, 고등학교 무상교육이 실현되는 등 많은 진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과도한 입시경쟁과 사교육비로 인한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은 여전하다.
 
이런 문제를 제쳐두고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1년 앞당긴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중고등학생들이 과도한 입시경쟁에 내몰리고 학부모들이 무거운 사교육비를 짊어지는 현실은 그대로 지속되는 것이다. 오히려 일부 단체가 지적하듯이 사교육비 부담은 더욱 커지기 쉽다.
 
그렇기에 이번 교육부 업무보고 내용 가운데 외국어고등학교를 폐지하겠다는 방침에 눈길이 간다. 한국의 고질적인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는데 진일보한 정책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자립형사립고는 여전히 존치하는데 무게를 두고 있어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외국어고나 자사고에 진학하기 위해 학부모들이 무거운 학비를 감당해야 하거니와, 중학생들에게도 과도한 학습 부담을 안겨준다. 아직 한참 즐겁게 놀면서 배워야 하고 추억도 많이 쌓아야 할 시기인데 말이다.
 
윤석열정부 들어선 후 반도체 산업 인력양성을 촉진하기 위한 방안을 내놓았다. 최근 산업 동향에 비춰볼 때 필요한 일이다. 반도체뿐만 아니라 미래 차나 인공지능, 바이오 등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산업 분야에 진출해서 큰 인물이 되고 싶은 학생들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학생들이 과도한 학비 부담 때문에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도와줘야 한다. 현 단계 한국 교육 정책의 가장 중요한 책무이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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