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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헤어질 결심’ 박찬욱 감독 “무조건 ‘탕웨이’이였어야 했다”
“폭력적·선정적 장면 없지만, 전반적 스타일·분위기 예전과 그대로”
“내 영화 속 사랑 어려운 이유… 어렵고 힘든 상황 인간 본성 들춰”
2022-07-05 01:00:03 2022-07-05 01:00:03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한국인 감독으로선 두 번째 기록이다. 하지만 그 두 번째가 박찬욱이란 이름이라면 얘기는 좀 달라질 듯하다. ‘박찬욱이란 감독에게 두 번째란 타이틀이 가당하단 말인가란 지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충분히 그럴만하다. 그것도 칸 영화제에서 말이다. 박 감독은 이미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올드보이)과 심사위원상(박쥐)을 수상한 바 있다. 지난 6 29일 개봉한 헤어질 결심은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후보작 가운데 황금종려상에 가장 근접한 작품이었단 평이 현지에서 나오기도 했었다. 평가도 그만큼 좋았다. 그리고 결과는 우리가 아는 데로 헤어질 결심감독상을 수상했다. 후보작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연출력을 선보인 감독에게 주는 상. 그만큼 헤어질 결심은 이른바 씨네필들에게 최고의 상찬과도 같은 미장센의 향연으로 다가왔다. 박해일과 탕웨이가 만들어 내는 헤어질 결심감정은 박찬욱이란 연출자와 만나면서 다시 없을 최고의 이미지와 스토리를 만들어 냈다. 참고로 박찬욱 감독은 헤어질 결심이 어렵게 비춰지는 것을 너무 걱정했다. 박 감독은 쉽고 편안하게 즐길 만한 영화라고 마지막에 웃으며 소개했다.
 
박찬욱 감독. 사진=CJ ENM
 
박찬욱 감독은 칸 영화제 감독상수상 직후 국내 언론과의 만남에서 칸 영화제 트로피보다 국내 흥행 성적이 더 내겐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전작 아가씨에서도 흥행에 대한 얘기를 언급한 바 있다. 놀랍게도 박찬욱이란 이름값과 달리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최고 흥행작이 428만 관객을 동원한 아가씨. 여름 시즌에 개봉을 하면서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흥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전히 매번 생각하는 지점이에요. 처음에는 작품을 공개할 때 감독 이름을 지워버리고 배우들만 내세워서 영화 홍보를 하면 어떨까 생각도 했었어요. 내가 연출하지만 작품을 공개할 때마다 다른 이름을 써볼까도 싶었고. 근데 뭐 체념한 상태이고, 상업 영화 연출자로서 당연히 흥행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에 앞으로 다가올 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에요.”
 
헤어질 결심은 크게 박찬욱이란 연출자에겐 두 가지의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 의미는 대중들이 그의 이름에서 기대하는 두 가지의 변화를 의미한다. 첫 번째는 박찬욱의 영화에 항상 등장했던 폭력적인 장면과 노출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영화가 멜로란 점이다. 박찬욱의 필모그래피에선 사실 너무 밀접하면서도 또 전혀 등장하지 않았던 지점이다.
 
박찬욱 감독. 사진=CJ ENM
 
폭력적이고 선정적인 장면이 없는 건 맞는데, 전반적인 스타일이나 분위기는 그대로일 듯해요. 저 개인적으론 항상 우아하고 고전적인 느낌의 영화를 만들고 싶어 했는데 이번에도 됐는지는 관객분들이 평가해 주시겠죠. 아마 보시면 박해일과 탕웨이란 배우의 다른 면을 보실 수 있을 듯해요. 영화는 오롯이 배우 얼굴로 표현이 되기에 배우가 잘했다면 저에 대한 칭찬일 수도 있으니 기대하고 있는 거죠.”
 
헤어질 결심에선 안개가 주요 코드로 등장한다. 극중 주요 소재로 가수 정훈희의 안개란 곡이 등장한다. ‘안개는 가수 정훈희의 1967년 데뷔곡이다. 3040세대는 물론 5060세대에게도 낯선 곡일 수 있다. 그리고 헤어질 결심은 소설가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많이 떠올리게 한다.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영화화한 김수용 감독의 영화 안개속 주제곡이 바로 정훈희의 안개. ‘헤어질 결심중반 이후 공간적 배경인 가상의 도시 이포는 안개가 지배하는 시골 마을이다.
 
제가 어릴 때부터 굉장히 좋아했던 곡이에요. 가사 자체는 어린아이가 이해하긴 당연히 힘들죠(웃음). 그런데 음악적으론 굉장히 훌륭한 곡인지는 좀 더 크고 나서 알게 됐어요. 이 곡을 작곡한 고 이봉조 선생은 제가 초등학생 때 이미 스타셨어요. 요즘 말하는 작곡가와는 전혀 다른 재즈 뮤지션이라고 하는 게 맞을 듯해요. 그런 분이 만든 곡을 제 영화에 쓸 수 있었으니 영화 감독으로서 너무 영광이었죠. 제가 생각한 얘기와 가장 어울리는 곡이라 생각했어요.”
 
박찬욱 감독. 사진=CJ ENM
 
그래서일까. ‘안개가 지배하는 헤어질 결심속 해준(박해일)과 서래(탕웨이)의 사랑은 어렵고 힘들다.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을 누군가는 어른의 사랑이라고 얘기한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 보인다. 문제는 박찬욱 감독이 그리는 사랑의 흐름이다. 왜 박찬욱 감독은 항상 자신의 영화에서 어렵고 힘든 사랑만을 그리고 있는 걸까. 그가 생각하는 자신의 영화 속 사랑은 이랬다.
 
장르를 불문하고 영화를 만드는 건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를 들여다 보기 위함일 겁니다. 어렵고 힘든 상황에 놓이면 인간 본성이 드러나기 마련이거든요. 어려운 일을 겪고 그것을 극복하거나 그 앞에서 처절하게 좌절할 때 그때 진짜 성격이 드러나잖아요. 그것은 개인의 성격이기도 하지만 인간 속성이기도 하고. 그걸 다 모아놓으면 인간 속성을 알 수 있는 재료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그리는 영화 속 사랑은 어렵고 힘이 좀 들어요(웃음)”
 
헤어질 결심또 다른 핵심은 바로 문어체 말투일 것이다. 이른바 말맛이 보통이 아닌 영화로 벌써부터 입소문이 퍼지고 있다. 일반적인 구어체에선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여러 문어체 단어들이 헤어질 결심에선 해준과 서래의 대화 속에서 구어체처럼 사용된다. 이런 점이 헤어질 결심의 깊이와 색채를 더욱 더 단단하게 만들어 가는 지점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또한 극중 번역 앱을 쓰는 장면도 특이했다.
 
박찬욱 감독. 사진=CJ ENM
 
소리가 가진 의미를 음미해 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한국 사람에겐 그냥 지나가는 말이나 단어도 서래처럼 어눌한 외국인의 말투로 들으니 쏙쏙 들어오잖아요. 상대방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선 문장도 이해하고 표정이나 손짓 눈빛 억양 등 고려해야 할 게 많죠. 근데 극중에서 번역앱을 쓴 건 그 단계를 굉장히 무미 건조하게 만들죠. 해준이 느낄 그 순간의 무미건조함을 관객들도 느꼈으면 싶었죠.”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박찬욱 감독은 이번 얘기를 만들어 내면서 첫 번째 전제조건으로 여주인공을 외국인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함께 하고 싶었던 탕웨이를 캐스팅 0순위로 놓고 작업을 진행했다. 참고로 탕웨이가 출연을 거절했다면 진짜로 헤어질 결심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것이다. 박 감독은 박해일에게 시나리오를 건내면서 여배우가 출연을 거절하면 제작이 불가능하다고 미리 말을 했었다고.
 
“서래는 무조건 탕웨이였어요. 탕웨이하고 작업하고 싶었고, 시나리오를 함께 작업한 정서경 작가에게도 여주인공은 탕웨이라고 했었죠. 남자 주인공은 소설 마르틴 베크시리즈를 읽으면서 이지미를 생각했기에 어느 정도 잡혀 있었는데 여자 주인공은 사실 탕웨이란 배우 외에는 백지였어요. 결과적으로 여자가 무조건 외국인이어야 하는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게 됐었죠. 결국 남녀 의사소통의 방식이라던가 대화 등의 문제를 담을 수 있는 얘기가 나온 것 같아요.”
 
박찬욱 감독. 사진=CJ ENM
 
헤어질 결심을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지점은 미장센이다. ‘미장센은 박찬욱이란 연출자를 얘기할 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영화적 표현이다. ‘헤어질 결심에선 각각의 미장센이 너무도 돋보였다. 특히 형사 해준의 사무실 풍경이 기존 우리 상업 영화에서 등장하는 공간이 아닌 전혀 다른 지점에서 탄생한 또 다른 인물처럼 다가왔다. 그 안에서 그려지는 해준이란 형사의 이미지도 너무 이질적이었다.
 
리얼리티가 영화에서 그렇게 중요한가 싶어요. 2022년 대한민국에서 형사들은 이렇게 입고 다녀야 하고 형사들이 일하는 공간은 이래야 한다. 이런 건 너무 지엽적이라고 생각해요. 영화나 드라마에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정확한 시각적 요소가 무언지, 그게 더 중요한 것이라 생각해요. 뭐가 더 스토리와 어울리는 건지 그 고민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헤어질 결심이 공개된 뒤 국내 기자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일 것이다. 극중 중반 이후 등장하는 주요 캐릭터 중 한 명이 개그우먼 김신영이다. 누군가는 김신영의 캐스팅을 신의 한수라고 평가하고 또 누군가는 신의 악수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박찬욱 감독은 김신영의 출연을 자신의 강력한 팬심에서 시작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그의 존재감에 무한한 애정을 전했다.
 
박찬욱 감독. 사진=CJ ENM
 
정확하게 행님아때부터 팬이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우정출연 같은 느낌이 나지 않도록 김신영을 배려하는 거였죠. 개인적으로 김신영에게 개그우먼이 아닌 대학로에서 10년 간 연극을 한 배우란 설정을 줬어요. 본인이 부담을 안 느꼈으면 했죠. 그리고 결과적으로 너무 잘해줬어요. 개그우먼이란 생각이 전혀 안 들게. 영화 10편은 한 배우처럼 하던데요. 그렇게 보이지 않던가요(웃음). 김신영에 대한 만족은 최고였습니다.”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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