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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현국사 화재 후 3년…통신 재난 대응, 무엇이 바뀌었나
정부·국회도 대책 쏟아냈으나…효과적 대응 찾기 힘들어
통신 로밍 시스템은 적용 불가·배상 제도 개선은 오십보백보
관련 정보 고지 의무 강화·현실적 보상 제도 등 종합 대책 필요
2021-10-27 06:23:44 2021-10-27 06:23:44
[뉴스토마토 배한님 기자] 지난 2018년 11월 아현국사 화재 이후 두 번째 대규모 통신 재난이 발생했다. 사태 당사자인 KT(030200)뿐만 아니라 정부와 정치권까지 두 팔 걷어붙이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4차산업혁명시대에 디지털 서비스의 근간인 통신 서비스가 중단됐을 때 어떤 피해가 생기는지 목도했기 때문이다. 이후 △통신 장애 고지 의무 △통신 로밍제 △사후 보상 제도 등 다양한 정책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3년이 지나 다시 발생한 통신 재난에서 기대했던 효과적인 대응은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사진/뉴시스
 
홈페이지에 통신 장애 고지했지만…고객에겐 문자 한 통 없었다
 
정부는 지난 2019년 통신장애로 서비스가 중단되면 사업자가 이용자에게 이를 고지할 의무를 강화하는 법을 마련했다. 
 
통신장애로 인한 역무제공 중단 관련 이용자 고지사항. 자료/방송통신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는 지난 2019년 6월 개정된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에 따라 기간통신사업자는 △역무제공 중단사실 및 원인 △대응조치 현황 △상담접수 연락처 등을 알려야 한다. 중요통신설비에 장애는 발생 즉시, 기타 설비 장애는 2시간 이상 지속할 경우 고시 의무가 발생한다. 
 
고지 방식은 전자우편(이메일)·문자메시지·홈페이지 또는 이동통신 애플리케이션(앱) 등의 접속화면 게시 중 1개 이상이어야 한다. 통신장애로 설비사용이 어려우면 언론에 중단사실을 지체없이 알린 후, 이용자 고지가 가능해지는 즉시 위 방법을 통해 고지해야 한다. 통신역무 제공 재개일 또는 장애 해소일로 30일 이내에 손해배상 기준과 대상자, 방법 등도 알려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지난 25일 오전 11시20분께 통신 장애가 발생하자 KT는 12시께 최초로 언론에 네트워크 장애 사실을 알렸다. 약 40분에서 85분간 통신 장애는 지속됐다. KT가 홈페이지에 장애 사실을 고지한 것은 오후 4시께였다. 개별고객에 문자메시지나 이메일은 보내지 않았다. 
 
구체적인 사고 경위와 대응조치 현황 등은 여전히 공유되지 않고 있다. 보안업계 관계자는 "클라우드플레어 등 민간 CDN 업체들조차 고객 신뢰를 위해 사후진단보고서를 공개한다"며 "KT는 시간대별로 어떤 확인이 이뤄졌는지 자세히 발표해 신뢰성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방통위는 KT가 장애 고지 의무를 준수했는지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소라 방통위 이용자보호과장은 "정확한 장애 원인 등 상황을 파악해야 법 적용 가능 여부나 범위 등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어망 오류엔 속수무책 '통신 로밍 시스템'…관련법 시행도 "아직…"
 
통신 로밍 시스템 구조도. 자료/과학기술정보통신부
 
통신 문제가 발생해도 서비스를 끊김없이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통신 로밍(공동이용)제'는 무용지물이었다. 지난해 6월 도입된 '통신 로밍 시스템'은 통신망 끝단인 '액세스 네트워크'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다른 통신사의 네트워크를 자사 '코어 네트워크'에 연결해 서비스를 재개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통신망의 중추인 '코어 네트워크'에서 문제가 발생해 통신 로밍 시스템으로도 해결할 수 없었다. 최성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네트워크정책과장은 "로밍을 신청해도 의미가 없어 KT가 (통신 로밍을) 신청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사고 다음날인 지난 26일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과 경기도 과천시 KT 네트워크 관제센터를 방문한 홍진배 과기정통부 정보보호네트워크정책관(국장)은 "재난로밍(통신 로밍 시스템)은 액세스단 대책으로 코어까지 고려하려면 더 큰 대책이 될 것"이라며 "연구가 필요해 종합 대책으로 시간을 갖고 고민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엑세스 네트워크'에 문제가 발생했더라도 통신 로밍 시스템을 적용할 법은 아직 효력이 발휘되지 않았다. 통신재난 예방·대응을 위해 마련한 '방송통신발전 기본법 개정안'은 지난 6월8일 신설돼 오는 12월9일부터 시행된다. 해당 법에 따르면 과기정통부 장관은 통신 재난 시 로밍 시스템 적용을 '명령'할 수 있다. 이번 통신 재난이 통신 로밍 시스템으로 보완할 수 있었다 하더라도, 이를 의무화하거나 강제할 법적 근거가 아직 없는 것이다. 20대 국회 당시 발의된 관련 법에 '민간 데이터센터(IDC)'가 포함되면서 중복 규제 논란에 휩싸여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고, 21대 국회로 처리가 미뤄졌다. 
 
5분만 끊겨도 난린데…비현실적인 손해배상 약관 
 
25일 서울 노원구에 위치한 한 식당에 KT 접속장애로 인한 현금결제 안내문이 붙어 있다. 사진/뉴시스
 
통신 재난 피해 보상 제도도 크게 바뀐 것이 없다. 특히 개인 사용자의 경우 배상금을 받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손해배상과 관련된 KT 이용자 약관에 따르면 '연속 3시간 이상' 혹은 '1개월 누적시간이 6시간을 초과'해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할 경우 월정액 요금과 부가사용료의 8배를 보상받을 수 있다. 이는 KT 유무선 통신 서비스 전반에 적용되는 기준이다.
 
과기정통부에 보고된 통신 장애 시간은 오전 11시20분께부터 낮 12시45분께까지다. 85분가량으로 약관상 손해배상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 지난 아현국사 화재 당시 KT는 소상공인과 고객에 약 70억원 규모의 피해 보상금을 지급했다. 그러나 당시 장애 발생 기간이 하루에서 일주일 이상으로 길었기 때문에 약관 적용을 받을 수 있었다. 아현국사 화재 당시 KT는 방통위와 협의 후 배상 금액을 6배에서 8배로 상향 조정했지만, 기준 시간까지 확대하지는 않았다. 
 
단 몇 분만 통신 서비스가 끊겨도 사회 곳곳에서 피해가 발생하는 만큼 손해배상 관련 약관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주호 참여연대 사회경제1팀장은 "약관이 워낙 소비자들에게 불리하게 돼 있어서 배상도 쉽지 않지만, 만약 받는다 하더라도 일할로 계산하기 때문에 배상금은 몇백원에서 몇천원 정도 수준이다"며 "손해배상 기준을 실효성 있게 고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26일 경기도 과천시 KT 네트워크 관제센터를 방문해 대책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과학기술정보통신부
 
다만 구현모 KT 대표가 조속히 보상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만큼 약관 이상의 손해배상과 피해 보상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김준선 KB증권 연구원은 "알뜰폰까지 포함하면 지난달 기준 KT의 무선 가입자는 2277만명, 유선 가입자는 916만명"이라며 "3시간 이상 서비스를 못 했을 때 손해배상 기준을 적용하면 73억 정도"라고 분석했다. 
 
정부도 KT가 내놓을 피해 보상안에 집중하고 있다. 임혜숙 과기정통부 장관은 "구체적인 보상 기준 등은 KT가 대책을 마련해 오면 정부와 협의할 것"이라며 "구체적인 내용을 아직 논의하지 않았지만 신속하게 해달라고 촉구했다"고 말했다. 홍진배 국장도 "장관께서 다양한 계층에 피해가 있으니 전체 보상안 마련에 시간을 끌지 말고 계층별로라도 신속한 보상 방안을 내놓아 달라고 주문했다"고 전했다. 
 
배한님 기자 bh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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