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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기적’ 박정민 “거절하려 만나서 설득 당했죠”
34세, 17세 고교 1학년 남학생 배역 제안…“관객이 용서할까”
꿈 이룬 영화 속 ‘준경’ vs 건강하고 꾸준히 나아가는 힘 ‘현실’
2021-09-15 00:50:00 2021-09-15 00:5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제목 그대로 기적이다. 우선 첫 번째 기적이다. 올해 34세 배우 박정민. 충무로에서 연기를 기준으로 논할 때 그는 평균 이상 정도가 아니다. 평균 이상보다 한 참 위다. 또래 배우에겐 없는 묘한 아우라를 갖고 있다. 그런 박정민이 출연을 결정했다. 그게 첫 번째 기적이다. 그런데 박정민은 고교생을 연기해야 했다. 극중 그가 연기한 배역은 올해 17세 고교 1학년 정준경’. 이건 말이 안 된다. 지금보다 딱 절반의 삶을 표현해야 한다. 물론 지나왔으니 할 순 있다. 그런데 그걸 관객이 용납하느냐의 문제가 남았다. 그리고 두 번째 기적이다. 사실 박정민은 연출을 맡은 이장훈 감독과의 첫 미팅에 출연 거절의사를 밝히러 나갔다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 거절할 생각이었다. 앞선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그날 반은 설득을 당해왔다고. 그리고 지금은 유명한 사실 중 하나. 박정민은 펭수의 열혈팬이다. 이장훈 감독은 첫 미팅 이후 만난 자리에서 정준경명찰이 달린 펭수 인형과 펭수 우산 등 관련 상품을 잔뜩 선물해줬다고. 박정민은 사르르 녹았단다. ‘기적처럼. 그렇게 만난 기적은 감동도 있고, 웃음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까지 넘쳤단다. 박정민이 만난 기적같은 얘기다.
 
배우 박정민.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기적은 제목부터 강하게 직설적이다. 뭔가 생각지도 못할 특별한 사건이 일어날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들여다 본 기적은 감동이 강하고 또 그만큼의 웃음과 재미도 강하다. 묘한 밸런스가 돋보인다. 하지만 진짜 가장 강한 점은 이 영화만의 사람 냄새다. 그래서 박정민은 그걸 기적의 최고 포인트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지금도 기적촬영을 소풍이라고 표현한다고.
 
이런 현장도 정말 드물었던 것 같아요. 저 뿐만 아니라 성민 선배님이나 윤아 그리고 모든 배우 스태프들이 전부 애착이 강했어요. 시나리오가 가진 힘이 따뜻하고 강했어요. 그냥 마음을 울리는 지점이 너무 자연스럽게 펼쳐져 있었어요. 글쎄요 제가 이 영화에 출연한 배우고, 이 영화가 좋아서 그런지 마냥 좋아요. 긴 소풍 다녀온 기분이 아직도 들어요.”
 
이런 좋은 느낌의 기적이지만 사실 박정민은 거절 의사가 확고했었다고. 1987년생인 박정민은 올해 34세다. 하지만 극중 그가 연기할 정준경 17세에 불과하다. 현재 나이의 딱 절반이다. 이건 도저히 연기로 커버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최첨단 컴퓨터 그래픽을 동원해 박정민을 고교생으로 만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냥 아쉽지만 포기가 답이었다고. 정말 그러고 싶진 않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었단다.
 
배우 박정민.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처음 시나리오 받아 읽었을 때는 진짜 너무 하고 싶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제가 고1은 불가능이죠(웃음). 진짜 백 번 양보해서 그냥 제가 한다고 치고, 그걸 관객 분들이 용서해 주실까요. 그래서 감독님에게 너무 좋은 데 할 순 없을 것 같다라고 말씀 드렸어요. 근데 감독님 만나보니 그냥 기적영화 같은 분이셨어요. 너무 좋으신 분이더라고요. 특히 감독님이 주신 펭수선물이 결정적이었죠(웃음)”
 
출연을 결정했다. 하지만 문제는 남아있다. 박정민과 이장훈 감독 그리고 모든 스태프들이 머리를 맞대고 묘수를 짜내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의 준경이후 10대 시절을 30대인 지금의 박정민이 연기를 직접 해야 하는지.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을지. 기상천외한 방법이 모두 쏟아졌다. 박정민은 박장대소를 하면서 당시 나온 특별했던 방법을 모두 공개했다. 물론 결국 선택은 시나리오 그대로였다고. 그는 이장훈 감독 말을 빌어 준경을 흰쌀밥이라고 불렀다.
 
진짜 별의 별 방법이 다 논의가 됐어요. 기억 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감독님이 30대 준경부터 시작해서 플래시백으로 꺼꾸로 가보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도 하셨어요. 감독님도 절 선택해 주셨지만 같은 고민을 하고 계셨던 거죠. 결국 결정은 시나리오대로 였죠. 감독님이 준경흰쌀밥같은 인물이라고 표현해 주셨어요. 내가 드러나지 않아도 관객 분들이 주인공 심리를 따라갈 것이다. 감독님의 그 말씀에 큰 용기를 얻었죠.”
 
배우 박정민.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기적에서 가장 빼놓을 수 없는 점 하나만 꼽자면 바로 사투리다. 경상북도 봉화군이 배경인 기적에서 경상도 사투리는 영화 자체의 맛을 끌어 올리는 가장 중요한 장치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 귀를 의심하게 된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듣고 알고 있던 경상도 사투리와는 상당히 다르다. 사투리도 초반에는 박정민과 배우들 그리고 감독과 스태프들 모두가 논의를 했다고.
 
정말 사투리가 진짜 어려웠어요(웃음). 사투리가 영화가 가진 하나의 요소인 작품은 기적이 처음인 것 같았어요. 경북 봉화 사투리가 많이 다르더라고요. 처음에는 듣기 익숙한 대구나 경북 사투리로 바꾸자는 의견도 실제로 있었는데. 배경 자체가 경북 봉화인데 그 지역 사투리가 아니면 말이 안되잖아요. 결국 최대한 해보자 싶어서 다들 도전했죠. 현장에 사투리 선생님이 항상 상주하시면서 검수를 해주셨어요(웃음)”
 
박정민은 기적을 통해 자신이 바라만 보던 스타들과 모조리 함께 했다. 그의 원픽 걸그룹 소녀시대의 센터 임윤아와 커플로 등장했다. 독립영화 시절부터 가장 좋아하는 배우로 주저 없이 꼽았던 이수경은 이번 영화에선 누나로 함께 하게 됐다. 이성민은 충무로에서 30대 남자 배우들이 꼽는 가장 따르고 싶은 선배 0순위에 항상 꼽히는 배우다. 박정민에게도 이성민은 그랬다. 이성민은 박정민의 아버지로 등장한다.
 
배우 박정민.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성민 선배는 제가 과거 극단 차이무에서 막내 스태프로 일할 때 먼 발치에서 뵀었죠. 그땐 선배님 연기 보면서 감탄만 했는데, 이번에 제가 같이 연기를 했어요. 진짜 신기했죠. 윤아는 제 마음의 스타였어요. ‘내가 소녀시대랑?’이란 생각에 너무 가슴 떨렸죠. 정말 짧은 시간 만에 가까워졌어요. 이수경은 이게 어울릴 단어인지는 모르지만, 겁 없고 당돌한 연기가 너무 좋았어요. 촬영에선 서로 애드리브도 가장 많이 나온 장면이 수경이와의 장면에서였어요.”
 
기적은 경북 봉화의 한 작은 마을에 사는 4차원 수학 천재 소년이 평생의 소원인 간이역하나 만드는 과정을 그린다. 이 영화는 해당 지역에 존재하는 양원역을 모티브로 한다. 모티브처럼 준경의 꿈은 이뤄진다. 박정민 역시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어릴 적 막연하게 동경하던 배우의 꿈을 이뤘다. 배우의 꿈을 이룬 지금 박정민의 꿈이 궁금하다.
 
배우 박정민.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배우가 꿈이었는데 그 꿈을 이뤘고, 이젠 훌륭한 배우가 되는 게 꿈이에요. 그리고 제가 몸담은 한국영화계에서 크게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어요. 여전히 카메라 앞에 서는 게 겁이 나요. 그리고 만족스럽지 않을 연기가 나오면 여전히 공부를 더해야겠구나란 생각이 들고요. 유연함과 건강함 그리고 꾸준히 나아가는 힘을 길러가는 게 지금은 꿈이라면 꿈이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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