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45년생 윤영자
입력 : 2021-02-22 06:00:00 수정 : 2021-02-22 06:00:00
1945년생 영자씨의 하루는 폐지줍기로 시작한다. 5시30분쯤 일어나 파스를 붙이고, 오래된 슈퍼마켓이 문을열기 기다리다가 유리병을 주워온다. 운이 좋으면 출근길 직장인이 내다놓은 폐지를 챙길수도 있다. 그녀는 이른아침 폐지줍기를 끝내면 공용주차장으로 가 정부 일자리사업인 주차장 청소를 시작한다. 반지하방에 혼자사는 그녀는 아픈 남편을 막내딸에게 맡기고, 정부 노인일자리와 폐지줍기로 생활비를 열심히 모은다. 도시사회학 연구자 소준철의 <가난의 문법>이야기다.
 
영자씨도 한때 번듯한 집이 있었고, 옷가게로 돈을 제법 벌던 '잘나간더 때'도 있었다. 하지만 3남3녀의 사업자금을 대주기 시작하고, 남편의 투병생활이 시작하면서 열심히 벌었던 돈을 잃고, 또 잃었다. 그녀는 부양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생계급여를 받지 못했다. 남편 몫까지의 기초금연금과 노인일자리사업 참여비, 재활용품을 팔아 번 돈까지 70~80만원 내외의 돈을 매달 쥐었다. 이 돈은 따로사는 남편과 나눠써야 했고, 그녀가 혼자쓰는 돈은 20~30만원 사이였다. 그녀에게 폐지줍기는 생계수단의 큰 역할로 작용한다.
 
노인들, 특히 여성 노인까지 폐지줍기에 달려드는 이유는 '돈'이 필요하지만 그에맞는 '일자리'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가 노인일자리 사업 등을 통해 단기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지만 최근 코로나19 여파로 이 일자리마저 찾기 어렵게됐다. 실제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월 취업자수가 1년전보다 무려 100만명 가까이 급감했는데 이는 1998년 12월 이후 22년 1개월만에 최악의 감소폭이다. 예년보다 잦은 폭설, 추위에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강화'로 60세이상 노인 취업자가 11년만에 처음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 결정적이었던 것이다.
 
노인들이 모이는 일자리 사업이 대외환경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고 줄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한 것이다. 이는 고스란히 취약계층 소득으로 옮겨갔다. 작년 4분기 소득 하위 20% 가구의 근로소득이 13.2%나 감소하며 4분기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무엇보다 1분위에 노인가구가 상당히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45년생 윤영자들은 길거리를 더 헤메며 폐지줍기에 열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셈이다. 특히 1분위 근로소득이 작년 4분기 내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점은, 코로나19가 노인 등 취약계층에 더 가혹했던 것이다.
 
국내 소득불균형은 더 커졌다. 국민 소득의 분배 상태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 중 하나인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4.72배였다. 1년 전 4분기 4.64배보다 0.08배 포인트 악화한 것이다. 5분위의 소득이 1분위보다 몇 배 많은지를 뜻하는 이 지표는 수치가 클수록 소득 불평등의 정도가 심화됐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정부 지원금 효과를 제거한 ‘시장소득 5분위 배율’은 7.82배로, 1년 전(6.89배)보다 약 1배나 벌어졌다. 재난지원금 등 공공의 역할이 없었으면 격차는 더 클 뻔했다는 뜻이다.
 
결국 재난지원금 등 정책효과가 방어하지 않았더라면 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을 테다. 노인일자리 사업에 대해 일각에서 부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정부의 공공일자리사업은 더 탄탄하게 제공돼야 한다. 아직도 일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노인'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그들을 언제까지 위험한 폐지줍기에 내몰리게 할 수는 없어서다. 45년생 윤영자 할머니들의 안전한 일자리를 마련해주는 것도 정부의 역할이다.
 
김하늬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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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하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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