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범죄자 보호해준 '아청법'
입력 : 2020-11-19 06:00:00 수정 : 2020-11-19 06:00:00
[뉴스토마토 이범종 기자] 늦어도 너무 늦었다. 어른들이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 제작·배포에 가담하는 동안 법은 가만히 있었다. 그 덕에 'n번방' 사건 가담자의 형량은 상식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서부지법은 'n번방' 운영자 ‘켈리’ 신모 씨에게서 아동·청소년 음란물 2254개를 받아낸 문모 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범행을 자백하면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점, 음란물을 구입하여 이를 다시 유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을 유리한 정상으로 봤다.
 
현행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11조는 관련 음란물임을 알면서 소지한 자를 1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했다. 해당 조항은 올해 6월 개정됐다. '켈리'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의 법은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명시했다. 여기에 자백과 반성을 더한 결과가 집행유예였다.
 
문씨는 피해자에게 무심했던 법 덕분에 신상공개도 피해갔다. 현행법대로라면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에 해당돼 그의 신상이 공개되어야 한다. 문씨를 이름 모를 'n번방' 가담자로 만들어준 것 역시 신상 공개 기준을 ‘성폭력 범죄’에 한정한 옛 법이었다.
 
단 돈 5만원. 문씨가 '켈리'에게 건넨 아동·청소년의 영혼 값이다. 피해자의 얼굴 수천개가 '참고서 값'에 유통되는 동안, 법은 가해자의 맨얼굴을 가려주고 있었다. 이번 선고는 아동·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법이 외려 '가해자 보호법'으로 기능해왔다는 증거로 남게 됐다. 국회가 법의 사각지대에서 신음하고 있는 약자를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일각에선 항소심이 열릴 경우 법원의 판단이 실형으로 기울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성범죄 사건은 심급이 오를수록 진보적인 판결이 나온다는 것이 법조계 분석이다.
 
항소심이 열리려면 선고일부터 일주일 안에 검찰이나 피고인이 법원으로 항소장을 제출해야 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18일은 항소장 접수 마감일이다. 서울서부지법 관계자는 “아직까지 접수된 항소장은 없다”고 말했다. 검찰의 항소 여부는 19일 밝혀진다.
 
이범종 법조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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