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50시간 라이브, 헤드폰 두른 숲'…코로나 시대의 음악 페스티벌
잔다리페스타의 실험적 비대면 공연…화상으로 해외 음악 관계자들 열띤 토론도
올해 첫 대면 '서울숲재즈페스티벌'…방역지침 준수, 블루투스 헤드폰 투입
입력 : 2020-10-30 00:00:00 수정 : 2020-10-30 07:24:17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범 내려 온다/범이 내려온다/장림 깊은 골로 대한 짐승이 내려온다.'
 
지난 25일 저녁 8시 반(한국시간) 경, 서울 홍대 라이즈 호텔. 80년대 뉴 웨이브 리듬 위 구수한 한국적 전래가 태평양과 대서양, 인도양을 동시에 건너 지구 한바퀴를 돌았다. 턱 빠진 별주부가 ‘토생원’을 ‘호생원’으로 잘못 부르는 바람에 난데없이 호랑이가 내려온다는 ‘수궁가’ 일부 내용. 
 
독특한 개성의 국악 요소를 현대적인 밴드 사운드에 비벼낸 이 묘한 음악이 신명난 광대처럼 외줄을 타자, 네모난 화면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던 해외 음악 산업 관계자들이 뒤로 나자빠졌다.
 
"보컬, 목소리 대박...(Her voice is a killer...)"
 
지난달 17~19일 서울 노들섬라이브하우스에서 '잔다리 언리얼' 행사를 위해 미리 찍어둔 사전 녹화영상. 이 시간대엔 이날치를 필두로 위댄스, 불고기디스코, 코토바, 죠지 등의 국내 뮤지션들의 라이브가 이어졌다. 호텔에서는 잔다리 주최사 스탭들을 포함해 뮤지션, 국내 음악 관계자 등이 해외 음악 관계자들과 소통하며 의견을 주고 받았다. 일본 후지록 페스티벌 프로그래머 제이슨 마얄, 스페인 프리마베라 사운드 프로그래머 파우 크리스토풀, 앤더슨 팍 에이전트 베키 서그덴 등이 참여했다. 이날 자신들의 공연 영상을 모니터링하러 온 코토바 멤버들은 "프랑스 델리게이트로부터 내년 축제에 함께 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며 서로 맥주잔을 부딪혔다.
 
24일 밤 홍대 라이즈호텔에 차려진 잔다리페스타 모니터링 본부. 해외 음악관계자들이 밴드 '불고기디스코'의 영상을 보며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세계서 "가장 부상하는 음악", 50시간 논스톱으로
 
홍대 축제 '잔다리페스타'는 전 세계 각지에서 "가장 부상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음악 행사로 꼽힌다. 올해는 코로나19 여파에 전면 화상으로 진행됐지만, 파격적인 방식으로 난관을 돌파했다. 23일 밤 10시부터 25일 자정까지, 국내 30팀의 라이브 영상과 해외 28팀의 영상이 50시간 논스톱으로 상영됐다. 세계적으로 음악 페스티벌 '종말'인 시대에, '현실에 없을 법한(Unreal) 축제'였던 셈.
 
각 해외 관계자들은 자신의 방이나 사무실에서 화상 카메라에 고개를 내밀고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국내 팀 사이 사이에는 해외 각지에서 보내온 11개국 23개팀의 라이브 클립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24일 낮 10시부터 세계 각국의 뮤지션들을 감상하기 위해 직접 페이지에 접속해본 결과, 놀라웠다. 세계 각국 수십개 희귀 공연들이 손에 쥔 직사각 화면에 흐르는 기분. 매년 물리적 거리를 이동해야 볼 수 있던 잔다리 '전매특허' 각국 스페셜 스테이지들이 클릭 한 번이면 한 페이지에서 몽땅 감상이 가능했다.
 
북유럽 메탈 밴드 'CITIES OF MARS'. 사진/잔다리 언리얼 캡처
 
몽글몽글한 기타 사운드에 겹쳐내는 안개 같은 목소리('LISA WANLOO')에 아연하다, 두대의 전자기타와 드럼으로 질주하는 북유럽 메탈 사운드에 맞춰 헤드뱅잉을 하고('CITIES OF MARS'),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처럼 카랑카랑한 라투아니아 서프록에 몸을 흔드는 것이('Shishi') 한 공간 안에서 가능했다.
 
캐나다 스페셜 때 백앤워시('BackXWash')의 무대는 무시무시했다. 데칼코마니처럼 이분할된 흑백 영상에 힙합과 헤비메탈, 포스트락을 황금비율로 뒤섞은 음악이 전차처럼 기어나오자, 그를 지지하는 댓글들이 '신도'들처럼 즐비했다. 잠비아 출신의 캐나다 랩퍼인 그는 실제 자신의 음악에 블랙 사바스 샘플링, 갓스피드유! 블랙 엠파이어의 막간 곡 등을 뒤섞기로도 유명하다. 올해 캐나다의 권위있는 음악시상식 '폴라리스 뮤직 프라이즈' 수상자로 선정됐다.
 
다른 시간대에는 하트시그널에 삽입되며 화제를 모은 벨기에 출신의 옐로우스트랩스, 태국 이싼 지방의 전통음악인 몰람과 전자음악을 융합한 톤트라쿨 등의 이색적인 무대들도 이어졌다.
 
캐나다 스페셜 무대에 선 잠비아 출신 캐나다인 백앤워시. 사진/잔다리 언리얼 영상 캡처
 
코로나 시대 비대면 공연 "유료 모델 '2단계'로 가야"
 
"온라인 비대면 공연은 오프라인 공연과 원칙적으로 아예 비교가 성립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온라인 상에서는 공연을 선택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창작자가 이미 강조해둔 부분을 수동적으로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공윤영 잔다리페스타 대표)
 
24일 오후 3시반경, 라이즈호텔에서는 '무료 스트리밍 공연 시대, 뭐라도 해야 할까?'를 주제로 음악평론가와 공연 기획자, 음악 레이블 관계자 등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비대면 공연의 현주소를 바로 보고 미래를 계획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행사다. 
 
이날 공 대표는 "온라인 공연 상 화면에 채워주는 정보는 그걸 주고 싶어하는 사람의 일방적인 선택"이라며 "코로나19가 종료되도 온라인 비대면 공연은 계속해서 존재할 것 같지만, 대면으로서의 공연을 대신 해줄 수 있냐에 대해선 아니라고 보고 있다"고 의견을 전했다.
 
함께 대담자로 나선 윤동환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 부회장 역시 "아직까지 공연 생중계라기보단 또 다른 음악 방송 프로그램에 가까운 콘텐츠들도 많다"며 "공연에 대한 관점을 재정립하는 것이 비대면 공연의 시작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정용 벨로주 대표는 "온라인 비대면 생중계 방식이 코로나19 종료 후에도 계속될 것이란 점에 동의한다"면서도 "다만 아직까지 유료 모델로서 제대로 성립되고 있지 않은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박 대표는 "(라이브 공연 신에서는) 정부 산하 단체의 후원이나 스탭들의 헌신으로 꾸려지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생중계가 판매도 되고 유통도 되는 '2단계'로 넘어가야한다고 본다"고도 제언했다.
 
잔다리 토크 행사 '무료 스트리밍 공연 시대, 뭐라도 해야 할까?'. 사진/잔다리 언리얼 영상 캡처
 
'거리두기 돗자리, 헤드폰 두른 숲'…올해 첫 대면 페스티벌
 
"말할 수 없는 질병 때문에 다들 마음 앓이 중이실 겁니다."
 
24일 오후 4시 경, 서울숲 인근에서 열린 '서울숲재즈페스티벌'. 국내 대표 집시풍 재즈 밴드 '더스키80' 멤버 정용도(기타·보컬)가 막간 멘트를 하자 사람들이 함박 웃음을 터뜨리며 와인잔을 기울였다. 스탭들은 자를 들고 현장 곳곳을 누비며 돗자리 간 거리체크를 하느라 분주했다. 
 
"다음에 할 곡은 프랑스를 가지 않은 상태에서 상상만으로 쓴 노래입니다. 여행도 가지 못하는 지금, 상상이라도 해보면 어떨까 싶어 선곡했어요. 다음 곡 '미드 나잇 인 파리' 들려드릴게요."
 
뚱땅거리는 콘트라베이스와 노트르담의 어느 거리 연주자를 연상시키는 아코디언 세례가 금세 파리의 어딘가로 관객들을 데려갔다. 두 대의 기타와 바이올린의 차분한 현악 울림이 코로나를 걷어낸 뒤 위로와 안정의 잔잔한 파도를 들썩였다. 
 
비록 드넓은 잔디밭 위에서 진행되진 못했으나, 이 올해의 첫 대면 페스티벌은 아주 소박한 규모로 철저한 통제 아래 진행됐다. 지난달까지도 코로나 이슈 때문에 정상 개최가 불투명했던 행사는 본래 서브무대로 예정했던 장소를 메인무대로 삼고, 출연진도 하루 최대 2명 정도로 간소화해 진행했다. 
 
더스키80의 무대. 블루투스 헤드폰과 음악페스티벌을 결합시킨 '서울숲재즈페스티벌'.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야외행사기에 실내보다 위험은 적지만 주최 측은 방역에 철저하게 신경썼다. 사전 문진표 작성, 화상 열 감지, 모바일 QR 코드 확인, 실시간 돗자리 간격 체크 등을 마친 후 입장이 가능했다. 또 주최 측은 멀리 떨어져 보더라도 관객들의 음향적인 면의 아쉬움이 없도록 블루투스 헤드폰도 별도로 준비했다. 헤드폰을 쓰면 무대 위 라이브가 흡사 스튜디오에서 듣는 것처럼 입체적인 공간감 가득한 사운드로 다가왔다.
 
두 번째로 무대에 오른 고상지트리오는 관객들의 소매를 아르헨티나로 잡아 당겼다. 아르헨티나 탱고 작곡가이자 반도네온연주자 피아졸라 음악을 근간 삼아, 푸가와 아일랜드 컨트리 음악까지 거닐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겨울', 바이올린의 아이리시 컨트리 솔로, '아디오스'…. 피아노와 반도네온, 바이올린 '삼합'이 가을밤의 추위를 녹일 정도로 관객들을 뜨겁게 데웠다. 
 
"물질은 떨어져 있지만 사실 연결돼 있다는 과학적 원리가 있죠. 코로나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마음은 연결돼 있다는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더스키80은 공연 마지막 즈음, 자작곡 '양자역학'을 선곡했다.
 
코로나 시대를 위무하는 인스트루멘탈 재즈, 탱고의 울림들. 오늘을 살아내는 우리에게 음악페스티벌은 조금은 조심스럽고 천천히 말을 걸어왔다.
 
고상지트리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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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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