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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익도

국내 연주음악의 대중화, 그날을 꿈꾸며

2020-08-07 17:11

조회수 : 2,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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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션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미국 보스턴 소재 버클리 음악 대학은 '꿈의 통로'에 가까울 것이다.
 
세계적인 음악 학도들 사이에서 자신의 기량을 테스트할 수 있는 꿈의 무대... 허나 억대에 가까운 비용을 들여 4년간 학교를 다닌다는 것이 일반인들에게는 쉽진 않을 것이다.
 
CJ문화재단에서 해마다 진행하는 위의 프로그램은 따라서 뮤지션을 꿈꾸는 이들이라면 아주 좋은 기회다. 한유진씨처럼 4년간 3억원 상당의 학비 전액, 기숙사비, 장비 구입비 등을 지원하는 파격 혜택이 주어지니 말이다. 
 
(버클리음대에서는 세계에서 7~8명에게만 주어지는 ‘프레지덴셜 스칼라십(총장전액장학금)’중 1명 정도의 비율을 CJ문화재단 측에 할당한다. 하지만 마땅한 인재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 해에는 뽑지 않기도 한다.)
 
그런데 뮤지션을 희망하는 이들 중에는 상당 부분 이 프로그램을 잘 알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한유진씨 역시 지난해 먼저 장학생으로 선발된 친구를 통해 건너 듣고 이번에 지원한 케이스였다. CJ 음악장학금에 대한 입학 설명회가 해마다 열린다고 하니, 뮤지션을 희망하는 이들이라면 참석해볼 것도 권한다.
 
1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한유진씨의 수면 깊이 잠긴 노력의 세월이 읽혔다. 클래식이 싫었던 어린 시절부터 재즈와 팝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 그로부터 좌충 우돌하며 꿈을 지킨 이야기들이 "어릴 때부터 난 음악 천재였어요" 하는 뻔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좋았다. 
 
유진씨는 재즈 음악에 굉장한 관심을 갖고 있음과 동시에 팝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다. 향후 재즈를 기반으로 다양한 음악장르를 결합시켜 국내 연주음악의 대중화를 이끌고 싶다 할 때 더 없이 멋져보였다. 
 
한국에서 연주음악은 여전히 홀대 받는다. TV는 연일 트로트고, 아이돌이다. 그나마 설 수 있던 무대마저 코로나가 앗아가고 있다. 유진씨 같은 이들이 국내의 음악 풍토를 바꿔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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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기사
 
(인터뷰)“내가 꿈꾸는 음악적 지향, 연주 음악의 대중화”
미 버클리음대 ‘프레지덴셜 스칼라십’ 선발된 한유진씨
“‘프리 재즈’ 시대와 같은 뮤지션 되고 싶어”
http://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988245
 
그랜드 피아노 앞에 앉아 바흐 책을 매직펜으로 새카맣게 칠하던 초등 시절을 그는 아직 기억한다.
 
“악보대로 똑같이 쳐야만 하는 것, 그게 너무 지루하고 싫었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싫은 건 싫었던 거죠. 아직도 그때 ‘검정 책’을 다시 보면 깜짝 깜짝 놀라요...하하.”
 
유년시절 기계적인 메트로놈 소리에 맞춰 ‘가짜’ 동그라미표 좀 칠해본 이들이라면 한유진씨(25)의 이 말에 무릎을 탁 칠지 모를 일이다. 다만 유진씨의 경우는 어릴 적부터 일반인보다 자신과 음악에 관한 한, 조금 더 투명하고 진실한 태도를 유지했다. 오죽 솔직했으면 매직펜으로 콩나물들을 벅벅 그어 댔을까.
 
동덕여대 실용음악과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그는 올해 미국 보스턴 버클리음대 장학생으로 선정됐다. 그것도 세계에서 단 7~8명만 뽑는 ‘프레지덴셜 스칼라십(총장전액장학금)’이다. 4년간 3억원 상당의 학비 전액, 기숙사비, 장비 구입비 등을 지원하는 ‘통 큰’ 혜택이다. 이 프로그램은 국내에선 CJ문화재단이 버클리음대와 손잡고 진행 중이다.
 
평범한 가정환경에서 자라 연습실비를 레슨비로 충당하며 음악 공부를 해온 그에게 장학생 선발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지난달 24일 서울 마포구 CJ아지트 광흥창에서 만난 한유진씨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과감하게 클래식을 그만두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며 “이후 교회 밴드, 대학가요제를 계기로 새로운 음악에 눈을 뜨게 된 게 지금의 길을 개척한 계기가 됐다”고 했다.
 
팝과 재즈부터 라틴계열의 브라질리언 리듬, 현악편곡까지 확장된 그의 음악적 관심은 결국 올해 싱가포르에서 열린 오디션에서 팀 리 입학처장 등 심사위원단들의 ‘매의 눈’에 꽂혔다.
 
“오디션을 앞두고는 하루에 6시간씩 재즈곡 위주로 연습하면서 솔로잉을 제 작곡에 접목시켜갔던 것 같아요. 행크 존스의 피아노 솔로로 비밥을 공부했고 매코이 타이너의 주법을 보며 펜타토닉 솔로를 익혔어요.”
 
사실 초등학교 때 클래식을 그만 둔 후로 다시 음악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중학교 시절에는 잠깐 ‘국제 관계’ 분야의 일도 꿈꿨다. 그러던 어느 날 실용음악을 배우며 다시 인생이 뒤바꼈다. 유튜브로 마룬5와 비욘세 영상을 쫓아다니고 호주 밴드 하이에이터스 카이요테이의 음악을 즐겨 들었다. “하이에이터스 카이요테는 자신의 음악 지향을 바꿔준 팀”이라며 즉석에서 곡 ‘Swamp Thing’을 틀어준다. 복잡한 구조의 재즈적 화성에 일렉트로닉적 실험들을 겹쳐낸 ‘무경계 장르 음악’이 저음질의 핸드폰 스피커를 박차고 귓가로 돌진한다.
 
“어릴 때부터 저는 ‘한국에서 음악 하려면 돈 되는 음악 해야해’란 말을 많이 듣고 자랐지만 그걸 깨보고 싶어요. 모두가 다 아는 기승전결식의 가요가 아니라, 이 팀처럼 실험적인 도전을 해보고 싶어요.”
 
빌 에반스와 키스 자렛, 에스팔란자…. 자유와 실험에 나섰던 그의 ‘뮤지션’들은 대체로 재즈를 뿌리삼아 다양한 음악적 도전을 향해 날개를 폈다. 심규민, 이영훈, 김지훈트리오, 이선지, 전진희 등의 국내 뮤지션을 존경한다는 그는 “궁극적으로는 1950년대 후반, 비밥을 넘어서던 ‘프리 재즈’ 시대와 같은 뮤지션이 되고 싶다”며 “트럼펫에 다른 장치를 대 답답한 소리를 내거나 듣기 싫은 화성으로 곡을 쓰는 식의 실험, 연주 음악들이 대중화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싶다”며 다부진 표정을 지어보였다.
 
예정대로라면 올 가을 입학이지만 보스턴도 코로나19로 여전히 신음 중이다. 버클리 역시 올 하반기 모든 수업을 화상으로 진행하겠다고 공개적으로 확정한 상태. 그는 “직접 가서 배우지 못해 아쉽지만 현 상황은 음악하는 모든 이들이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고충이라 생각한다”며 “코로나 이후 음악의 역할에 대한 생각, 고민들을 학교에서 이어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또 향후 버클리 장학생 프로그램에 지원할 이들을 위해서는 “자신의 음악적 지향점을 계속 점검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버클리 입학도 전에 자기 이름을 새긴 앨범을 낸다. 오는 8월 말 친구들과 결성한 5인조 밴드 ‘The Blowers’로 ‘C’라는 싱글 앨범을 준비 중이다. “앞으로 정말 장르 안 가리고 다양한 시도를 해볼겁니다. 수록곡 ‘Dive’는 일단 음악 시장에 뛰어 들어본다는 의미를 빗댄 거예요.”
 
인터뷰 말미 그의 제안에 콜드플레이와 브루노 마스, 비욘세가 어우러지는 ‘수퍼볼 무대’ 영상을 함께 봤다. ‘국제 관계’ 일을 꿈꾸던 한 소녀는 이제 꿈의 음악으로 세계를 이을 준비 중이다. 손에 잡힐 듯한 한유진씨의 맑은 꿈이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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